'扶土' '弓土' 등 글자 확인..성벽 축조 때 넣은 듯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백제 마지막 수도 사비(부여)의 왕궁을 호위하는 외곽 담장인 부여나성(羅城)에서 성벽을 처음 쌓을 때 글자를 새겨 성벽에 넣은 각자성석(刻字城石)이 발견됐다.
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원장 박종만)는 충남 부여군이 실시하는 사적 58호 부여나성 정비사업 일환으로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 15-1번지 일대 나성(羅城) 구간 약 600m를 조사한 결과 이런 각자성석 3점을 확인했다고 22일 말했다.
이번 발굴조사는 부여나성 중에서도 동쪽 나성 일부 구간으로 유명한 능산리 절터 서쪽 편 약 600m 구간에 대해 바깥쪽 성벽을 노출하는 데 중점으로 실시했다.
그 결과 각자성석 3점이 산의 급경사 중간 부분 성벽에서 확인됐다. 명문은 '부소(扶土)'와 '궁토(弓土)'는 확실하지만 나머지 1점에서는 '白(?)虎(?)虎'(?는 불확실한 글자) 정도의 글자가 파악됐다고 조사단은 말했다.
이 중에서도 '부토(扶土)라는 글자가 적힌 각석(刻石)은 2단 돌에서 확인되며 화강암이다. 성돌 크기는 50×30(가로×세로)㎝이며, 명문은 음각에 아래위로 새겼다.
나머지 두 각석은 같은 곳에 위치하며 '扶土' 각석과는 65m 떨어져 있다.
84×26㎝ 크기인 '弓土' 각석은 4단석에서 확인되며 화강암 재질이다. 명문은 음각으로 상-하 방향으로 새겼다.
'白(?)虎□虎' 각석(46×26㎝)은 2단석에서 확인되며 변성암 석재라는 점에서 다른 두 점과 다르다. 글자는 상-하, 우-좌 방향으로 새겼다. 하지만 좌측 상단 글씨는 마모돼 알 수 없지만 하단에 남은 글자와 견주어 볼 때 같은 글자를 새겨 넣었던 것을 알 수 있다고 조사단은 말했다.
弓土 白虎 각석 |
조사단은 이번에 조사한 성벽 구간이 총 600m에 달하지만 이런 성돌이 3점만 확인되고 현재 산신령을 모시는 제단 주변에서 확인됐다는 점에서 이 글자를 새긴 시대에 의구심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체나 나성이 기능을 잃은 시기 등을 고려하면 지금으로서는 부여나성을 만들 때 같이 넣은 각석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 의미는 현재로서는 파악이 쉽지 않다. 조사단은 부여나성 축성과 관련한 기록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이번 조사에서는 성벽 안 혹은 성벽 바닥 부분에서 사비시대보다 앞선 시대 유물로 판단되는 그릇 받침(기대·器臺) 조각과 굽다리 접시 조각, 그리고 목 부분에 톱니바퀴 모양 무늬를 넣은 옹(甕) 조각을 수습했다.
폭 8.2m인 동쪽 나성 2문지(門址·문이 있던 자리)에서는 비교적 많은 기와가 출토됨으로써 문 위에는 누각형 목조건축물인 문루(門樓)가 있었음을 뒷받침했다.
성벽 바깥쪽 퇴적토에서는 '상부을와'(上部乙瓦)라고 새긴 도장 무늬 새김 기와와 새 발 모양 무늬를 넣은 평기와 조각, 철제 마름쇠(가시 달린 쇠못)가 출토됐다.
扶土 각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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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5/22 10:4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