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깊이 이해하려면 한자 교육 필요"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중앙아시아나 러시아에 사는 고려인 동포 가운데는 '김가이'나 '최가이'와 같은 성(姓)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러시아어와 결합한 것이 아닐까 싶지만 사실은 이주 초기 성을 묻는 말에 "김가(哥)입니다"나 "최가입니다"하는 식으로 대답하던 것이 잘못 알려져 그렇게 굳어졌단다.
우즈베키스탄에서 고려인 학생들을 가르친 이한우(58) 교수는 20일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성마저 잊고 사는 고려인을 보면 안타깝다"면서 "정체성 교육이 중요하며 그를 위해서는 한글뿐 아니라 한자까지 가르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수도 타슈켄트에 있는 니자미 사범대에 6년간 재직하고 최근 귀국한 이 교수는 올해 초 고려인을 비롯한 외국인 학생들이 쉽게 한자를 배울 수 있도록 교재 '외국인을 위한 기초 한자'를 펴냈다.
재단법인 '고려인의 꿈'의 지원으로 출간된 이 책에는 230여 자의 기초한자가 숫자, 자연, 가족, 신체 등 주제별로 분류돼 수록됐다. 주요 사자성어와 한국인의 성씨 한자도 담겼다.
어느 정도 한글을 익힌 외국인이 대상이어서 예문은 한국어로 담았고 러시아어와 영어로 의미를 표기했다.
"학생들에게 한자를 가르쳐주면 아주 즐거워합니다. '가정'이나 '가축'과 같은 단어를 개별적으로 배웠다가 그 '가(家)'가 집이라는 뜻이라고 알려주면 손뼉을 치며 신기해하죠. 한국어를 좀더 깊이 이해하고 스스로 단어의 의미를 확장해나가기 위해서는 한자의 맛을 알아야 합니다."
이 교수가 실제 한자 수업 경험을 토대로 만든 이 책은 3천 부가 제작돼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각국과 러시아의 한국어 교육기관에 배포됐으며 국내 고려인 지원단체에도 전달됐다.
국문학을 전공한 그는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고려인과 만나기 위해 2007년 선교를 겸해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많은 고려인 후손을 접하며 정체성 함양이 시급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됐다.
"니자미대 한국어과 학생들은 대부분 미리 한국어를 공부하고 오는데도 한자로 자신의 성을 써보라고 하면 100명 중에 한 명도 못 씁니다. 자신의 이름을 아는 것이 정체성의 기본인데도 말이죠. 고려인 차세대로 갈수록 의식은 대체로 러시아화했습니다."
한국어 교수가 부족한 연해주 우수리스크로 가서 다시 한번 고려인 학생들을 가르치려고 준비하고 있는 이 교수는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아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기 때문에 정체성 교육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5/20 10:54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