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혈단신 한국 건너와 42년간 40만명에 인술

posted Jul 2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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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문화 확산, 이 사람] ③ 파란 눈의 여의사 배현정 원장

“나눔은 마음…누구나 마음만 있다면 봉사할 수 있어”

 

자신이 갖고 있는 무언가를 나누는 것. 말만큼 쉽지는 않다. 그러나 이 나눔운동의 확산이 사회통합으로 연결될 수 있고 사회분열을 치유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제언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도 나눔문화 확산 대책을 올 한해 동안 중점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정책브리핑은 어떻게 나눔에 쉽게 동참할 수 있는지 각 나눔 분야별로 대표사례자를 발굴, 나눔의 의미와 방법을 살펴본다.(편집자 주)

 

똑똑똑. 낡은 진료실 문을 두드리니 안에서 유창한 한국어가 들려온다. 문을 열자 눈 앞에 파란 눈의 푸근한 할머니 의사가 웃으며 서 있다. 바로 벨기엔인 배현정(69) 전진상(全眞常) 의원 원장이다.

 

1972년 10월, 봉사단체인 국제가톨릭형제회 단원으로 혈혈단신 한국에 건너 온 그녀가 올해로 전진상 의원을 세우고 의술을 펼친 지 42년째가 됐다. 그동안 그녀의 손을 거친 환자만 40여만명이다.

배현정 전진상의원 원장. 사람들은 그를 시흥동의 슈바이처라고 부른다.
배현정 전진상의원 원장. 사람들은 그녀를 시흥동의 슈바이처라고 부른다.
“그때 한국은 가난한 나라였었죠. 특히나 급속한 산업화로 도시로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은 대도시 변두리에 판잣집 한 채를 이삼일만에 뚝딱 짓고 살았어요. 그 안에서 환경이 어땠을지는 보나마나 아니겠어요?”

배현정 원장이 김수환 추기경의 조언으로 서울 시흥동에 ‘전진상 가정복지센터’를 설립한 것은 그래서였다. 열악한 환경 속에 뛰어든 것이다.

지금이야 웃으며 얘기하지만 수돗물도 나오지 않는 곳에서 7년을 물을 길어가며 환자를 돌보고 급한 환자는 리어카로, 배 원장의 등을 내어주며 이송했다.

그 세월을 고스란히 보낸 곳이 지금의 전진상 의원이 있는 그 자리다.

“당시만 해도 결핵으로 죽는 사람, 홍역·폐렴으로 죽는 아이들이 정말 많았어요. 단순히 이들의 병만 치료해서 될 문제가 아니었죠” 때문에 배 원장은 환자의 병을 치료하려면 환자의 주변환경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며 의료사회사업을 여러차례 강조했다.

 

스물여섯 벨기에 처녀, 혈혈단신 한국 건너와 42년째 의술 베풀고 있어  

 

의료사회사업에 대한 배 원장의 확고한 의지는 지금의 전진상 의원에서도 엿볼 수 있다. 가정집 같은 빨간 벽돌의 전진상 의원 건물 지하1층에는 지역아동센터가 있다. 이 곳에서는 환자 자녀나 생활이 어려운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이 방과 후 공부를 한다. 2,3층에는 진료실과 호스피스 병동이 있다. 여느 병원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진료시스템도 특이하다. 전진상 의원에서는 진료를 받으러 오는 환자에게 일단 사회사업가와의 상담을 통해 주변환경부터 파악하도록 한다. 가족구성원에 대한 가계도도 그리고 가족생활사도 작성한다. 진료비도 환자의 형편에 따라 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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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원장이 왕진가방을 들고 직접 찾아가는 환자들은 병원까지 오기 힘든 독거노인들이 대부분이다.(사진=배현정 원장 제공)

배 원장은 병원에 못 오는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매주 목요일이면 왕진가방을 들고 병원문을 나선다. 왕진비? 당연히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병원 운영비의 절반 정도는 후원회에 의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호스피스 병상이 늘어나면서 배 원장을 포함, 의료진들이 살고 있는 방도 환자들에게 내줬다. 그래도 괜찮다며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 그녀다.

 

왕진가방 들고 환자 찾아가는 의사…가정형편따라 진료비도 받지 않아

 

“다른 누군가를 돕는 일은 제 운명이자 삶이었어요” 어린시절 탄광촌에서 약국을 운영하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배현정 원장에게 남을 돕는 일은 자연스러웠다. 거기에 국제가톨릭형제회의 종교적 신념이 더해진 나눔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낯선 나라에서 4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 오랜기간 동안 그녀가 해낸 일들은 그 어떤 한국인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동료들과 판자촌을 찾아가 의술을 펼쳤던 과거.
동료들과 함께 판자촌 집집마다 일일이 찾아가며 의술을 펼쳤던 과거의 모습.(사진=배현정 원장 제공)

이런 배현정 원장의 나눔의 삶은 2009년 아산상, 2013년 성천상, 올해는 법무부가 처음으로 제정한 ‘올해의 이민자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수상으로 받은 상금 역시 고스란히 의원 운영을 위해 내놓았다.

스물여섯의 처녀는 어느새 은발이 성성한 할머니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나이가 됐다. 그녀 자신에게도 마리 헬렌 브라쇠르(Marie-Helene Brasseur)라는 본명보다 한국에 도착한 첫 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배현정이 더 익숙할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나눔은 마음…쉽진 않지만 함께하면 못하는 일도 없어”

 

“왜 힘이 안들었겠어요? 봉사라는 것이 쉽지 않고 혼자서는 불가능합니다. 함께해야 플러스 효과를 낼 수 있지요. 함께하면 못하는 일도 없어요.” 배 원장은 자신이 오랜기간 의술을 베풀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 뜻을 같이한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얘기했다.

 

실제 그녀의 곁에는 75년 판자촌에서부터 의료사회사업에 함께 뛰어든 최소희 약사와 유송자 사회복지사가 있다. 셋은 40여년의 세월 동안 시흥동을 떠나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전진상 복지관을 지키고 있다.

 

배현정 원장이 1990년 새로 지어진 지금의 전진상 의원 입구에 서 있다.
배현정 원장이 1990년 새로 지어진 지금의 전진상 의원 입구에 서 있다. 3층 건물의 전진상 복지관은 의원과 약국, 지역아동센터, 호스피스 병동까지 갖춰져 있어 배 원장이 강조하는 의료사회사업이 펼쳐지는 곳이기도 하다.

돈만 생각하면 봉사를 못한다며 있는 만큼 하다보면 계속 하게 되는 게 봉사라는
배현정 원장은 자신도 거의 빈손으로 한국을 찾았으나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봉사할 수 있었다고 겸손해 했다. 

 

“건강 허락하는 한이 아니라 허락하지 않아도 봉사 계속하겠다”

 

“나눔은 마음입니다. 아픈 사람도 마음만 있다면 봉사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봉사고 외로운 어르신들을 위해 전화통화로 말벗이 되어주는 것도 봉사예요. 쉽잖아요? 누구나 할 수 있다니까요”

배 원장은 언제, 어디서나, 각자가 갖고 있는 능력을 내 놓는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나눌 수 있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이 아니라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도 봉사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파란 눈의 할머니 의사 배현정 원장이 평생을 한국인과 나누고 있는 것은 의술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 나눔은 참여자가 전달하는 ‘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자원의 종류‘에 따라 기부(물적), 자원봉사(인적), 생명나눔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인적나눔은 말벗·청소봉사와 같은 단순자원봉사와 법률·의료봉사 등 전문성을 활용한 전문자원봉사를 포함한다.  (문체부 - 정책브리핑 - 인터뷰)  

 

 

 www.newssports25.com
전재표 기자 su1359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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