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검찰의 국가정보원의 정치·대선 개입 의혹 수사가 17일로 개시 한 달을 맞았다.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제18대 대선 사범의 기소 시한인 6월19일인 점을 감안하면 이제 딱 반환점을 돈 셈이다.
경찰에서 '국정원 댓글' 사건을 송치받자마자 특별수사팀을 꾸린 검찰은 한 달 동안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소환조사에 이어 국정원 압수수색까지 벌이며 빠른 속도로 수사를 해왔다.
포털사이트를 포함해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댓글·게시글 확인 작업도 광범위하게 진행하며 의혹의 핵심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번 수사 목표가 국정원 직원들이 정치·대선 개입 목적으로 댓글 활동을 했는지, 그 배후에 원 전 원장의 지시가 있었는지를 밝히는 것인 만큼 검찰은 앞으로 치열한 혐의 입증과 법리 검토 작업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국민적 의혹이 지대한 상황에서 검찰이 한 달 뒤 속시원한 결론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원세훈 소환에 국정원 압수수색…'LTE'급 수사 = 검찰은 지난달 18일 경찰로부터 '국정원 댓글' 사건을 송치받자마자 곧바로 윤석열 여주지청장을 팀장으로 하는 특별수사팀을 꾸려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공소시효가 두 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시간을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수사팀은 착수 일주일 만에 민모 국정원 전 심리정보국장을, 그 이틀 뒤엔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을 각 피고발인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29일엔 원 전 원장이 전격 소환됐다. 사건 송치 11일 만이었다.
원 전 원장의 조기 소환은 누구도 예측 못 한 일이었다. 통상 아랫사람부터 조사하는 수사 패턴과 달리 처음부터 윗선을 노리고 들어간 것이다. 원 전 원장 등의 소명을 먼저 듣고 이후 증거 자료를 토대로 초기 진술을 깨트려 나간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실제 검찰은 원 전 원장을 조사한 바로 다음날인 30일 국정원을 사상 두 번째로 전격 압수수색해 '원장님 지시·강조말씀'과 관련한 내부 증거자료 등을 확보했다.
이달 초엔 국정원 여직원 김모씨와 일반인 이모씨 등을 조사했다. 국정원 심리정보국의 실무진들도 줄줄이 소환하고 있다.
강행군을 이어온 수사팀이 일부 성과를 찾기도 했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인터넷 사이트 등에 정치 관련 글과 댓글을 올린 것으로 의심되는 다수의 국정원 심리정보국 직원이 추가로 확인된 것이다.
이들이 댓글 작업을 벌인 것으로 추정되는 사이트도 모두 15개로 늘었다.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적발되는 심리정보국 직원 수는 더 늘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번 수사의 지류인 국정원 기밀 유출, 경찰의 수사 축소 의혹, 국정원 여직원 감금 사건에 대한 수사도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검찰은 이달 초 국정원 기밀을 외부에 유출한 혐의로 고발당한 전직 직원 2명과 이들 사이에서 매개 역할을 한 일반인 등 3명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최근엔 이들 전직 직원 2명을 불러 조사했다.
서울경찰청의 외압 의혹을 폭로한 권은희 전 수서서 수사과장, 대선 전 급박하게 기자회견을 열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던 이광석 전 수서서장도 한 차례씩 조사를 받았다.
핵심 인물들에 대한 1차 조사를 마무리 지은 검찰은 그간의 조사 내용과 압수물 및 인터넷 사이트 분석 결과를 중간 정리하고 있다. 수사 2라운드에 들어가기 전 수사력을 재정비하는 것이다.
◇마무리까지 한 달…원세훈 겨냥하나 = 수사팀에 남은 기간은 한 달이다.
검찰은 우선 이 댓글 작업에 얼마나 많은 심리정보국 직원이 동원됐고 어떤 댓글들을 남겼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검찰은 현재 사이트 15곳을 대상으로 댓글·게시글 분석 작업을 하고 있다. 분석 초반에 이미 국정원 직원 다수가 댓글 작업을 한 사실이 드러났고 앞으로 이 숫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들 행위가 처벌 대상인지에 대한 법리 검토를 마무리 짓는 일도 숙제다.
이번 수사는 국가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불법 활동에 가담한 의혹을 받는다는 점에서 여타 사안에 비해 한층 더 치밀한 법리적 검토가 필요하다.
국정원 직원들의 댓글 활동이 국정원법상 정치개입 금지 규정을 위반한 것인지, 더 나아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활동이었는지를 규명해야 한다.
앞서 경찰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여직원 김씨가 사이트에 대선 관련 게시글을 올린 행위를 국정원법상 정치중립 의무 위반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주요 혐의로 거론됐던 공직선거법 위반은 해당 글들에서 선거에 영향을 주기 위한 적극적인 의사 표시를 발견하지 못해 선거 운동이라 보기 어렵다며 적용하지 않았다.
검찰은 두 법리를 놓고 국정원측과 치열하게 줄다리기를 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 조사를 받은 원 전 원장 등 수뇌부 3명은 직원들의 댓글 활동이 대북 심리전의 일환이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개입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어느 선까지를 처벌해야 하는지도 정해야 한다.
검찰은 이미 원 전 원장에서 이종명 전 3차장, 민모 전 국장으로 이어지는 수뇌부 3명이 직원들의 댓글 작업을 지시했거나 보고받은 사실을 상당 부분 확인했다. 댓글 작업이 위법이라면 이 지휘라인 3명 중 사법처리 대상자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검찰은 사이트 분석 과정에서 추가로 드러난 국정원 직원들의 경우 일일이 불러 조사할 필요가 없다고 밝혀 이들 개개인이 모두 사법처리 대상은 아님을 암시했다.
검찰은 조만간 국정원 수뇌부 3명을 다시 불러 그간 확보한 증거와 국정원 직원들의 진술 내용을 토대로 위법 행위 지시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원 전 원장이 위법 행위를 지시했다면 과연 그 배경은 무엇인지, 특히 청와대나 정치권과 연결된 것은 아닌지도 밝혀야 한다.
경찰 수뇌부의 수사 축소·은폐 의혹, 국정원 기밀 유출 사건, 국정원 여직원 감금 사건도 함께 마무리해야 한다.
검찰은 이르면 다음 주께 김용판 전 서울청장을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국정원이 '박원순 시장의 정치적 영향력을 제압해야 한다'는 문건을 작성했다는 의혹도 야당이나 박 시장 측의 고발이 들어오면 처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신속하면서도 철저히 수사해 국민적 의혹을 말끔히 씻어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검찰이 앞으로 어떤 승부수를 띄워 의혹 해소에 나설지 주목된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5/17 16:05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