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 "광석이에게 미안해..이 노래 듣고 있니"

posted May 1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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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출신..13년 만에 2집 '내 머리 속의 가시' 발표

"외면당할까 두려워한 날 반성하며 용기를 냈죠"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그룹 동물원 출신 싱어송라이터 김창기(50)는 지난해 9월 25일 자신의 블로그 '김창기의 악보에 쓴 일기'에 이렇게 고백했다.

"마지막 음반을 낸 것이 벌써 12년 전이니 나는 그동안 '스티브 블래스(Steve blass) 증후군' 혹은 비슷한 질환을 앓고 있는 것이다. 블래스는 잘 던지던 투수지만 이제 포수에게만은 던지지 못하는, 난 노래를 만들 수 있지만 타인에게 들려줄 수 있는 노래를 만들 수 없는…."

 

그는 1988년 동물원으로 데뷔했지만 본업이 소아 정신과 의사다.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생각과마음 의원-김창기 소아 청소년 발달센터' 원장이다.

 

그 대신 음악 활동은 10여 년간 동면 상태였다. 과거 그는 꽤 화려했다. 임지훈이 부른 '사랑의 썰물'을 비롯해 1997년 동물원 7집까지 활동하며 '거리에서'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널 사랑하겠어'를 작곡해 히트시켰다. 또 1997년 이범용과 듀오 '창고'로 앨범도 냈고 2000년 솔로 1집 '하강의 미학'을 발표했다.

 

이후 그는 의사이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 안정되고 평온한 삶을 누렸다. '절필'에 가까웠던 그가 다시 오선지를 마주한 건 지난해 가을 초등학생 딸의 질문에서 비롯됐다. 딸은 여러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아빠가 만든 동물원의 노래가 불리자 '왜 이제 노래를 만들지 않느냐'고 물어왔다.

 

꿈을 회피했던 자신을 반성하자 음악 하고 싶은 마음에 스위치가 켜졌다. 그러나 막상 곡을 쓰려니 여덟 마디 이상 나가지 못했다. 머릿속을 원초적인 질문들로 들쑤셔야 했다. 다시 괴롭고 회피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강제 조치로 블로그를 만들었다. 병원으로 출근하기 전 새벽 5-6시에 컴퓨터 앞에 앉아 블로그에 일기를 쓰면서 하루 한 곡씩 만든 악보를 올렸다. 그렇게 100곡이 만들어졌고 10곡을 골라 앨범 한 장을 완성했다.

 

13년 만에 솔로 2집 '내 머리 속의 가시'를 발표한 김창기를 최근 그의 병원 진료실에서 만났다.

 

"제 음악이 외면당할까 봐 두려웠던 거죠. 솔로 1집 때 제가 좋아 만든 노래들이 반응이 없었거든요. 이번엔 대중이 공감할 노래로 풀어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작업 내내 제 가치에 대한 의문을 던졌고 인정받고 싶었어요. 그런 감정들은 치명적이진 않지만 손톱 밑에 가시처럼 불편했죠."

 

앨범의 첫 트랙이자 타이틀곡은 '광석이에게'다. 대학 시절부터 붙어 다녔던 친구이자 동물원의 동료였던 싱어송라이터 고(故) 김광석에게 전하는 편지다. "형제와 다름없던 광석이에 대한 감정은 미안함이다. 나를 필요로 했을 때 '다음에 보자'며 도움이 돼 주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단골집 이모가 제발 싸움은 밖에 나가 하라고 하기에, 우린 밖으로 뛰쳐나가 우리가 여기에 있다고 고함쳤지(중략) 네가 날 떠났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어, 너를 미워하고 또 날 미워해야 했어~.'('광석이에게')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82학번인 그는 "광석이와는 대학교 1학년 때 고고장에서 '고고팅'으로 만나 단짝이 됐다"며 "그 친구는 노래를 잘했고 난 노래를 잘 만들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붙어 다니며 단골집인 신촌 '일성집'에서 김치찌개에 술을 마셨고 방학 때면 집에 안 들어가고 함께 자곤 했다. 광석이가 고대 앞에서 '고리'란 카페를 할 때는 죽치고 살았다"고 회상했다.

 

"우린 때론 여자 얘기도 했지만 우리 인생에 여자는 별로 없었어요. 광석이는 키가 작고 전 얼굴이 크고 수줍음이 많았거든요. 하하. 가끔 광석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하늘에 대고 얘기해요. '광석아 너 듣고 있니'라고요."

 

남겨진 사람의 상실감을 노래한 '광석이에게'를 시작으로 그의 앨범 수록곡들은 상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감정들로 옮겨간다. 마치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유고작 '상실 수업'이 주는 메시지의 다른 형태 같다.

 

그로 인해 앨범은 전반적으로 어둡지만 따뜻한 어쿠스틱 사운드와 대중의 주파수에 맞는 사랑 노래의 틀을 빌려 무게를 덜었다. 사랑의 대상은 아들과 딸, 아내, 친구 등 그 폭이 넓다.

 

'널 사랑하겠어' 보다 연륜이 느껴지는 사랑 고백인 '원해', 아내와 두 아이, 집과 개가 있지만 여전히 외롭다고 노래한 '난 아직도 외로워', 2년간 기러기 아빠로 생활했던 때의 심정을 담은 '난 살아있어' 등 솔직하고 냉정한 독백들이 담겼다.

정작 가족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아내는 좋아하는데 초등학교 5학년 딸은 '노래가 다 똑같다'고, 고 2인 아들은 '아빠 이거 안돼'라고 하더군요. 하하. 제 생각에 치명적인 결함은 보이스예요. 차라리 이 곡들을 '요즘 젊은 가수에게 부르게 할까'란 생각도 했으니까요. 후배 가수들에게 곡을 주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공부하듯 음악을 만들었지만 그는 다시 손이 풀리고 음악 하는 재미를 붙였다고 했다. 재미가 있기에 잘해보고 싶다고도 했다.

 

그는 "잘되는 기준은 과거 '널 사랑하겠어' '거리에서'처럼 내 노래가 사람들에게 2013년 한순간의 배경음악이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럼에도 음악은 가장 좋아하는 취미일 뿐 의사란 아이덴티티는 분명하다고 했다. 곡을 만들고 환자를 진료하는 일은 '가는 길을 알아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어 자신에게는 시너지가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현재 세 멤버(박기영, 유준열, 배영길)로 활동 중인 동물원에 다시 합류할 생각도 적어 보였다.

 

"동물원은 제게 행복한 동아리였죠. 당시 제시간을 빼앗기기 힘들었고 주도권 싸움도 있어 팀을 나왔는데, 잘한 선택이었어요. 멤버들과는 한때 사이가 안 좋았던 적도 있지만 제가 친구들이 걔네밖에 없어요. 여전히 멤버들과 자주 봐요."

그는 음반 작업에서 확장해 요즘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사람의 감정을 매만지는 주옥같은 노랫말로 필력을 자랑한 그답게 소설을 써보기로 한 것.

 

그는 "지난달부터 인터넷에서 소설 작법을 찾아보고 있다"며 "잘 못 쓰면 창피할 것 같아서 공부하는 중이다. 난 두려움이 많으면서도 자존심은 세서 못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고 웃어보였다.

 

mimi@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5/19 10:37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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