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인과의 진정한 교류가 국위 선양하는 길"
(서울=연합뉴스) 조민정 기자 = "승려라서 가족도 없고 이권 챙길 일도 없으니 한인회장으로 적격 아닌가요?"
네팔한인회는 지난해 12월 '히말라야 수행자'로 불리는 영봉 스님(속명 임종범·57)을 제6대 한인회장으로 추대했다.
삭발 염의를 한 출가 비구승이 한인회장을 맡은 사례는 세계 각국을 통틀어 최초인 것으로 알려졌다.
1988년 네팔을 찾은 스님은 처음에는 이곳에 정착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히말라야는 보는 것만으로는 안 되겠다'며 산을 오르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26년째 대부분 시간을 네팔에서 보내고 있다.
석가탄신일을 맞아 국내 후원자들에게 설법도 하고 현지 소식도 전하기 위해 한국에 온 그는 12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친목 활동만 하는 한인회가 아니라 안전·의료나 법률, 비자 문제 등을 체계적으로 돕는 한인회를 만들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부처님의 나라'로 불리는 네팔이지만 정부가 종교 자유를 선포한 이후 목사·선교사가 대거 들어오면서 한인 700여 명 가운데 500여 명이 개신교인이다.
개신교인이 대다수인 사회에서 불교 성직자가 한인회장 직을 수행하기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그는 "종교는 다르지만 한인회가 하는 일은 종교와 관련이 없으니 문제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사실 그를 한인회장으로 추대한 것은 다름 아닌 목사·선교사들이었다.
그가 한인회장으로서 가장 우선시하는 과제는 '안전 확보'. 연간 4만 명의 한국인이 히말라야에 오르려 네팔을 찾지만 안전 대비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길이 험하고 통신기술도 형편없어 산속에서 차가 고장 나면 적어도 이틀은 기다려야 한다. 산악사고도 잦아 그가 한인회장이 된 지 다섯 달 만에 두 차례나 헬기를 동원해 구조활동을 했을 정도다.
한인회장이 된 직후 그는 네팔 전역에 8개의 연락사무소를 만들었다. 지진 위험성이 큰 네팔에서 지진 발생 시 집결지 역할을 하고 네팔 전역을 다니는 관광객에게 필요한 도움을 제때 주기 위해서다.
"산악국가여서 안전 문제가 많이 있는데 대사관에서 소소한 안전 문제까지 챙기기는 어렵잖아요. 네팔에 거주하는 한인뿐 아니라 방문객의 안전을 챙겨야 하기 때문에 그 어떤 곳보다도 한인회의 역할이 중요한 나라입니다."
그는 네팔과 태국에서 한글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안나푸르나 4봉을 오른 산악인이기도 한 그는 산을 오르다 짐꾼 역할을 하는 셰르파(Sherpa)들의 삶에 충격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셰르파들은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산을 올랐다. 제대로 먹지를 못해 쓰러져 죽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 직업은 대물림됐다.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2008년 카트만두에 세운 '세종 한국문화와 언어 교육원', 해발 2천700m 산속 오지 파쁘레 마을에 2010년 세운 '파쁘레 초등학교'의 졸업생은 어느새 1천 명을 바라보고 있다. 태국 난민촌에도 학교 3곳을 세웠다.
5년간 체중이 25㎏이 줄 정도로 강행군이었지만 이제는 수백 명의 가이드와 셰르파가 한인의 안전 여부를 알려주는 '정보원'이 돼 덕을 보고 있다.
그는 네팔인 가운데 장학생을 선발해 대학에 보내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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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 높은 지원과 현지인과의 진정한 교류가 재외동포가 할 수 있는 국위 선양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봉사단체들이 와서 학교를 지어주고 가는데 운영을 할 사람이 없어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며 "실질적인 지원과 봉사가 될 수 있도록 한인회가 도우미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네팔 한인사회가 빠르게 커지고 있는데, 다른 나라 문화원을 빌려서 행사를 치를 정도로 조직이나 시설이 부족합니다. 한인들이 네팔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한인회를 재정비하고 네팔 사회와 교류하는 데 힘쓰겠습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5/13 05:33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