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조민정 기자 = 지구 반대편 낯선 나라, 밤이 새도록 재봉틀 소리가 나던 단칸방에서 자란 소녀가 아시아인 최초로 아르헨티나 사립대 교수가 돼 고국을 찾았다.
1986년 부모를 따라 아르티나로 이주한 최은아(34·여) 팔레르모대 패션디자인과 교수가 그 주인공.
지난달 25일 열린 '2013 국제 패션&주얼리 박람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최 교수는 9일 연합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적인 정서를 가진 덕에 이른 나이에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패션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는 팔레르모대를 10점 만점에 8.97의 우수한 학점으로 졸업한 그는 졸업과 동시에 모교의 교수가 됐다. 4년 내내 단 한 번도 수업에 빠지지 않고 까다로운 교수를 골라 엄격하게 평가받기를 자처한 그를 눈여겨본 교수들의 추천 덕이었다.
"15년차 되는 교수님이 만점인 10점을 주시면서 ‘내가 10점을 준 것은 네가 처음’이라고 말씀하셨을 때의 짜릿함을 잊지 못해요.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느긋하고 차분한 면이 있는데, 교수님들을 따라다니며 질문을 많이 했고 패션쇼나 대회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제가 눈에 띈 것 같아요."
교수가 된 지 10년이 됐지만, 아직도 사립대 아시아인 교수는 그뿐이다. 지난 1월엔 학교로부터 '모범교수상'도 받았다.
이민한 지 27년이 흘렀지만 한국에는 거의 발걸음을 하지 않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금기숙 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교수와 인연이 닿으면서 금 교수의 초청으로 17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한국에 오기 전 오랜만에 펼쳐본 포트폴리오에는 한복부터 시작해 선녀, 도깨비 등 한국적인 것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 가득했다.
이번 박람회에서는 어머니가 이민 때 가져갔던 한복을 탱고 의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극찬을 받았다.
"학생 때부터 저도 모르게 한국적인 정서가 작품에 녹아들어 간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이 신선해 아르헨티나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거죠. 그런 의미에서 한국적인 정서를 잊지 않게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해요."
그는 아르헨티나에 막 도착할 당시 침대 하나가 겨우 들어가는 단칸방에서 밤늦도록 나던 재봉틀 소리가 아직도 기억난다고 했다. 처음으로 100달러를 번 날 부모님이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던 장면도 생생하다.
그 때문일까. 지난 2007년 남편과 함께 운영하던 의류 공장에 도둑이 들어 원단과 재봉 기계, 완성된 옷까지 모두 잃고 큰 빚을 졌지만 최 교수는 무너지지 않았다.
의류상점 3천여 곳을 일일이 찾아다닌 끝에 17곳에서 패턴 제작 작업을 따냈다.
2년간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온종일 패턴을 떴다.
갑갑한 현실에 눈물 흘리는 날도 많았지만 그 경험이 바탕이 돼 현재는 오히려 패턴 분야에서 인정을 받게 됐다.
최 교수는 "사실 요즘엔 아르헨티나 사람처럼 편안하게, 느긋하게 살고 있었는데 정신이 번쩍 든다"면서 "이번 방문에서 러시아, 중국, 영국 등에서 열리는 박람회에 초청을 받는 등 많은 기회를 얻어 기쁜 동시에 엄청난 책임감을 느낀다"며 웃었다.
"제 나라인데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 방문을 계기로 자주 한국에 와 아르헨티나의 한인들이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걸 보여 드리고 싶어요. 더 열심히 해서 한국과 아르헨티나를 잇는 가교 역할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