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열전> '日침략사죄' 무라야마 담화 나오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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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야마 담화 발표 당시 상황설명하는 김태지 전 대사
- (서울=연합뉴스) 강병철 기자 = 김태지 전 주일대사가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무라야마 담화가 발표됐던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2013.5.6. solec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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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지 전 주일대사 회고…담화, 총리·자민당 온건파 합작품
(서울=연합뉴스) 강병철 기자 = 일본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50년이 되던 1995년 정부 차원에서 일본의 과거 잘못을 명확하게 표명하기로 했다.
일본은 1965년 우리나라와 국교를 정상화한 이후 회담이나 국회 발언 등의 계기에 총리와 관방장관, 외무상 등의 발언으로 과거사에 대해 반성과 유감의 뜻을 밝힌 적은 있었지만 정부 차원에서 과거 침략 행위를 명확하게 반성한 적은 없었다.
무라야마 총리는 이런 이유로 정부 입장을 국회 결의를 통해 내고 싶어했다.
이에 따라 양원 중 하원인 중의원에서 먼저 결의안을 놓고 각 정파가 협의에 들어갔다.
◇ "만들려면 제대로 만들어라" = 김태지 주일 대사가 도쿄에 부임했던 1995년 2월에 마침 일본 의회에서 결의안과 관련된 움직임이 있었다. 당시 우리 정부는 일본의 이런 움직임을 일단 주시한다는 입장이었다. 일본 내의 동향에 대해 우리가 이래라저래라 할 경우 반감을 불러올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에 따라 김 대사는 신임 대사로 예방하는 기회를 이용해 우리의 입장을 일본 정치권에 우회 전달했다.
각 정당 대표 등을 두루 만나 "50년을 기념해 과거 문제를 끝맺음하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면서 "우리가 보기에 전혀 흡족하지 못하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만들려면 제대로 결의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중의원 논의는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조언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 나왔던 안이 '물타기'가 됐다. 자민당에서 문제 제기가 계속된 게 이유였다. 중의원은 그해 6월 9일 전후 50주년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김 대사의 우려대로 '하지 않는것만 못한 결의'였다.
결의는 "세계 근대 사상에서 가지가지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적 행위를 생각하면서 우리나라가 과거에 행한 그런 행위로 다른 나라 국민, 아시아 국민에게 준 고통을 인식해서 깊은 반성의 뜻을 표명한다"는 게 골자였다.
이 결의는 일본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일본과 같은 행위를 했다면서 과거 책임을 물타기한 것은 물론 과거 행위를 침략이 아닌 '침략적 행위'로 규정했다. 일본의 책임을 두루뭉술하게 한 것이다.
나아가 이 결의는 상원인 참의원에서는 제대로 논의조차 안됐다. 토의만 좀 하다가 표결에도 못 가고 흐지부지된 것이다.
의미 있는 국회 결의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서자 무라야마 총리는 총리 담화로 이를 대신키로 하고 8월 15일 담화를 발표했다.
일본 각료 회의를 통과한 이 특별담화는 "국책을 잘못해 전쟁의 길을 걸음으로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몰아넣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의하여 많은 나라 사람들,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의 사람에게 다대한 소회와 고통을 줬다"면서 "이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명하면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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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야마 담화 발표 당시 상황설명하는 김태지 전 대사
- (서울=연합뉴스) 강병철 기자 = 김태지 전 주일대사가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무라야마 담화가 발표됐던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2013.5.6. solec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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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 등 구체적인 후속조치도 없었다는 점 등에서 완전한 것은 아니었지만 입장 표명의 측면에서 과거보다 진일보한 것이다.
◇ 무라야마 담화…총리와 자민당 내 온건파의 합작품 = 무라야마 담화는 무엇보다도 무라야마 총리 본인의 성품 때문에 가능했다. 자민당과의 연립 내각에서 총리를 맡은 무라야마 총리는 사회당 소속으로 과거사 문제에 대해 자민당보다 더 열려 있었고 의지도 있었다.
그러나 연립 정권의 1당인 자민당이 주요 각료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민당의 지지가 없었으면 무라야마 담화도 불발됐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실제 무라야마 담화에 등장하는 '패전'이라는 표현은 자민당 출신의 하시모토 류타로(橋本 龍太郞) 통상산업상이 제안했다. 애초 무라야마 총리의 원안에는 일본 정치인들이 흔히 쓰는 표현인 '종전'이 들어가 있었는데 자민당 출신 인사의 제안으로 이를 패전으로 바꾼 것이다.
무라야마 총리에 이어 1996년 1월 일본 총리가 된 하시모토 통상산업상은 총리 취임 전 예방온 김 대사에게 이런 사실을 전했다.
무라야마 총리의 퇴임으로 무라야마 담화를 변경하려는 시도가 있을 수 있다고 보고 하시모토 통상산업상을 찾은 자리에서였다.
김 대사는 이 자리에서 "100% 만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라야마 담화는 일본이 이런 식으로 가는구나 하고 기대하게 하는 담화"라면서 "자민당 내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있어 하는 이야기인데 혹시 이 담화를 흔드는 상황이 벌어지면 우리는 물론 중국으로부터도 아주 불만을 살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하시모토 통상산업상은 담화의 패전 표현이 자신의 아이디어라는 점을 소개하면서 "내가 그렇게 해서 나온 담화인데 내가 수상이 된다고 그것을 무산시키는 일을 하겠느냐"면서 "걱정말라"고 말했다.
무라야마 담화는 하시모토 내각은 물론 그 이후로 일본 정부에서 과거 문제에 대한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그동안 받아들여져 왔다.
김태지 전 대사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중국 등과의 관계를 고려해 당시 자민당 내에서도 과거에 대해 잘못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는 사람이 있었지만 당내에서 스스로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여건은 안됐다"면서 "만일 당시 총리가 사회당 출신이 아니라 자민당 출신이었으면 그런 담화가 못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과거사 도발 등에 대해 "우리가 주장할 것은 엄격히 주장하고 나머지 분야에서는 여유롭게 대처해야 한다"면서 "덮어놓고 대립각만 세울 게 아니라 상황에 맞춰 능숙히 대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태지 전 주일 대사 = 일본 관계 일을 오래한 일본통 외교관으로 어학실력과 분석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70년대 한일어업협정, 대륙붕 협정 등을 담당했으며 1990년대 초반에는 한중 수교로 단절된 대만과의 비공식 관계를 수립하는데 역할을 했다.
▲ 제주(78) ▲ 서울대 법대 ▲ 외무부 조약·동북아과장 ▲ 아주국장 ▲ 기획관리실장 ▲ 인도·독일·일본대사 ▲ 한화그룹 고문 ▲ 아주대 국제대학원 교수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5/06 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