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창작 카페 "맑은샘 푸른숲 포엠피아"를 찾아서

posted May 1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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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이 : (산해천) 전재표

대담 :   산해천,   맑은샘

 

(맑은샘) 권병찬 시인의 자택을 한국신춘문예 기획특집 인터뷰를 의뢰받고 찾아가 보기로 했다. 맑은샘은 중견 언론인이자 작가이기도 하다. 시와 마찬가지로 십수년의 기자 생활은 "밥먹는 문제 때문"에 하긴 했는데 자신에게 있어 정신적으로는 시를 쓰고 소설을 쓰는 것이 더 궁극적이라 한다. 한가지 하기도 어려운데 여러가지를 어떻게 하느냐? 하니 자신은 기사문과  시,소설의 문학분야와 쟝르는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자신의 모든 글은 한뿌리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의 문체가  기사문과 문학쟝르 경계가 없듯 모호한 것은 아니다. 

 

그는 이미 정치부,경제부 기자를 거쳐 한국일보 미디어기획팀 차장시절 이화여대에서 연대와 이대 학생들에게 "저널리즘과 언론 기사문 작성법"을 강의한 바 있고 한국일보 기획특집 차장과  서울경제 특집부장을 거쳐 지금 한국일보 정책특집팀 부장에 이르기까지 비즈니스 기사는 거의 국내 탑 수준에 이르렀다.  이와 별도로 시인으로써 그는 2013년에 외교부 후원 , 재외동포재단, 미주한인재단, 세계한인재단(World korean foundation)주관  "2013 세계한인大賞(문학-시)부문大賞"과 한국신춘문예(韓國新春文藝)협회", "대한민국 장인예술(匠人藝術)협회, 한국다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대한민국문화예술발전진흥회, 무궁화애국회 주관 "문학대상(文學大賞)"을 수상한 실력파 문인이기도 하다.

 

요즈음 그는 문학상 수상들 이후 "맑은샘의 시 창작 강의" 문예 에세이를 연작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필자가 맑은샘 시인을 알게 된 것은 8년 전이던가 전국에서 가장 큰 모 문학사이트에서였다. 당시 처음 사이트에 온 습작생의 시가 예사롭지가 않았다. 문단에 널리 알려진 공인된 사이트라 이미 등단한 작가시방의 프로들도 많았고 아무리 글이 인기가 있어도 클릭조회수가 하루에 100단위를 넘기 힘들고 클릭을 조작할 수도 없는 사이트였다. 그런데 습작생이던 맑은샘의 시는 한번 올리면 하루 평균200-300의 클릭수, 좀 재미있거나 읽을만한 작품은 하룻밤에 조회 500클릭이 넘어가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떤 인간일까? 무척 궁금하기도 했다.

 

필자보다 맑은샘을 먼저 안 몇몇 시인들을 통해 알아보니 겉으로는 보편적인 보통 젊은이이면서도 좀 유별나고 특별한 친구였다. 그 사이트 첫 동인 시낭송 모임에서던가? 맑은샘은 약간 취기가 돌더니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의 자작시와 더불어 자신이 즉석에서 작곡한 곡을 노래부르지 않는가? 들어보니 기가막혔다. 무슨 세레나데로 기억하는데 약간 러시아풍의 멜로디인 것 같았지만 어디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아름다운 선율이었다. 지금 맑은샘을 잘 아는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좀 우습기도 하지만 하여튼 객관적으로 먼저 등단한 프로들이 시샘할 정도였으니 그의 시창작 내공과 실력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일반적인 시인들과는 약간은 좀 다른 독특한 詩友로써, 후배로써 글의 정신과 매력이 철철 넘치는 친구다.

 

그것은 아마도 맑은샘 자신의 시창작경력과 그의 철학,사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갖추기까지 투철하고 진실한 그의 삶의 내력은 그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갖추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필자가 문학인으로서 맑은샘을 높이 사는 이유는 누구보다도 맑은 영혼, 순수한 시심을 갖추어 시창작의 그릇이 한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넉넉하며 예전 서정시를 쓸 때 그의 작품은 한마디로 언어로 빚은 정렬과 혼의 보석 같았다.

 

그 사이트 동인시절 니체와 관련된 시로 그는 이미 창작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당시 그의 습작시가 좀 인기가 있고 빼어나자 국내문단에서 A급에 속하는 한 좌파성향의 문학사상 문예지에서 그의 등단을 의뢰한 바 있었는데 다음날 맑은샘은 약간 취해 필자에게 전화로 “형님 나 그따위 등단 안할랍니다”라고 일언지하에 거절하던 생각이 난다. 밝힐 수는 없으나 무슨 등단의 조건으로 그에게 출판사가 무엇을 요구한 것 같은데 맑은샘의 작품수준이나 그의 역량으로 볼때 필자가 보기에도 그 문예지와 출판사는 그에게 큰 실례를 끼쳤으며 아까운 보석을 놓친 꼴이었다.

 

젊고 실력있는 문학 습작생에게는 유혹이 있기도 한데 맑은샘은 진정 시정신이 무엇이며 올바른 시인이 걸어야 할 행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전형적인 참시인이었다. 그에게 무슨 실천이니 행동이니 참여문학이니 라는 말을 하면 우습기 그지없다. 또 남달리 자연스럽게 닦은 자유주의 사상들은 그로 하여금 좌파사상들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밝고 투철하며 타협하지 않는 고집이 강해 필자가 보기에는 한그루 청솔같은 기개와 지조(志操)로 다가왔다.

 

요즈음은 나이가 들어 그런지 좀 비판적인 시가 쓰기 싫어진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지만 맑은샘 작품의 특징은 그냥 무덤덤하게 물흐르는 듯 썼는데도 매우 강렬한 이미지가 빛나기도 하고 메시지가 강해 한 번 읽으면 잘 기억나는 매력이 가득하다. 어떤 작품은 이글을 현재를 사는 사람이 썼나? 귀신이 썼나? 싶을 정도로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과 정신의 세계, 이상향의 이데아의 세계가 잘 표현되어 있는 작품들도 많다. 현상의 눈에 보이지 않거나 글로 표현될 수 없는 시상(詩想)이나 세계를 표현해내는 내공은 왠만한 경력을 가진 프로 시인들도 잘 쓰지 못하는 부분이다.

 

또 요즈음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사상감상시” 라는 연재물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의 지구력있는 인문고전연구, 이미 발표된 현대의 “자유사상감상시”연재물들의 사상을 통한 시와 시사해석, 특히, 직접 쓴 마르크스 이후 신좌익사상비판 30여편의 연재물들은 내가 알기로 한국문단에서 최초로 시도된 그의 작품들이라 큰 가치가 있다 할 것이다. 지금 그는 “인문통합사상사”를 소개하며 시를 쓰고있는데 왠만한 젊은 대학교수들도 하기힘든 작업을 그 바쁜 중앙일간지 간부의 직업을 가지고도 정렬적으로 하고있어 그의 겉으로 표현된 맑고 부드럽게 나타나는 얼굴속의 강한 집념은 나의 엔돌핀을 돌게한다.

 

생각을 해 보시라, 법사상사 50여편, 정치사상사 30여편, 경제사상사 20여편, 사회사상사 30여편 정도는 이미 각대학의 전공별로 학부시절 따로들 공부하는 것이지만 이를 통합한 맑은샘의‘통합사상사’는 현대를 사는 사람이 바라다 본 고대부터 현대까지 약 250여편 이상의 주옥같은 인류의 고전들이 총 망라되어있어 직업인이나 일반인들도 편하게 읽기가 쉽다.

 

한편씩 발표되는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마치 깊은 사상의 타임머쉰을 타고 여행하는 정신의 기쁨을 준다. 학문만 하는 사람이 아닌 직업을 가지고있는 사람이 일주일에 한편씩 그것들을 읽으며 작품을 써도 얼마가 걸리는가? 현재 서울대 입시논술에 필요한 고전도 통합 50여편밖에 되지 않는다. 필자도 그의 말처럼 일반적인 철학사, 문학사만으로는 학문을 위한 전문서적이기는 하지만 현대의 각 사회문제들에 대한 지혜를 조망하기에 늘 부족함을 느낀다.

 

지금까지 한국문단 어느곳에서도 하지 않았던 일이고 문단을 위해서도 참신하고 큰 시도다. 대개 고전을 읽으면 ‘이것이 현대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지만 맑은샘의 창작시와 소개된 글을 읽다보면 언제나 글이 현재에도 펄펄 살아있음을 느끼고 낙관적인 유머도 느낄 수 있어 필자도 오래전부터 애독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시인이 오래전 법학공부를 하던 시절 쌍문동의 숲에서 대학입시 아이들을 가르키면서 했던 작업이 6년동안의 투철한 자유주의 시민운동, 더하여 6년동안의 정치부, 경제부 기자를거쳐 좀더 성숙한 글로 더하여져 한국출판계, 문단을 통틀어 유일무이한 250여편이 넘는 고전연구를 통한 사상감상시 출현을 앞두게 되어 옆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개무량하다.

 

마치 자본론같은 집필을 위해 그 기초작업을 하고 있는 마르크스를 바라보는 앵겔스의 심정도 아마 필자와 비슷하리라. 맑은샘의 사상은 마르크스의 사상과 정 반대편에 있고 더 행복하고 더 풍요로운 세상에서 빛을 보겠지만 이도 그의 투철한 정렬과 사랑, 신뢰, 집념이 가져다 준 하늘의 선물이다. 서정시도 탁월하고 ‘사상감상시’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고 있는 친구, 언제나 깊은 커피맛 같은 정신이 빛나는 글매력의 괴물, 괴퇴를 우습게 보는 기분좋은 신예, 詩탱크 (맑은샘) 권병찬 시인을 만나 보기로 하고 물맑고 공기좋으며 향기로운 글향이 가득한 그의 전원주택 서재를 찾아 경기도 고양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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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산해천 : 살고있는 곳이 그림이군요, 맑은샘님이 왜 이곳으로 이사왔는지 알겠군요..동네로 들어서는 길 입구에 글그대로 작은교회가 있고 그림같은 풍경을 지나오면서 큰 목장도 있고 맑은 시냇물, 남향의 언덕위 작은 신축전원빌라, 환상적입니다. 지극히 한국적이지만 꼭 독일의 작고 예쁜 시골마을에 온 기분입니다. 이런 환경이라면 지루한 집필작업도 잊어버리겠습니다. 공기나쁜 서울에서 와 보니 부럽네요... 

 

맑은샘: 하하, 오시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큰 마음 먹고 투자 좀 했지요, 출퇴근할 때 좀 불편하지만 요즈음은 그것도 익숙해졌습니다. 10여년전 일본경제를 따라가면 안되는데 집값폭락도 문제고 전원주택은 무엇보다 자연환경이 좋은 곳에 도심과 교통, 기타 생활 인프라가 필수입니다. 잘못 선택하면 오히려 더 고생이지요...휴일에는 예전 변두리에서 닭치고 돼지치며 시쓰고 글쓰던 김수영시인의 생활하고 본질적으로 같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원고들고 가끔 종로나 명동에 나가면 형님 같은 이봉구 소설가와 시우들과 술마시고 글평하던 장면이 떠오르지요.. 요즈음 우리는 IT시대에 더 광역화되고 그때의 시우들이 이제 대망의 한국신춘문예와 맑은샘푸른숲 포엠피아 회원들로 세대가 바뀌었고 저는 첨단화된 작은 빌라에 살지만요 글을 쓰는 본질이야 다르겠습니까? 옛글들의 향기와 애로스에 취하기도 합니다.

 

산해천: 그렇기도 하네요...맑은샘님의 글이 본질을 추구하고 순수하며 한가로운 시간에 읽으면 깊은 글향기가 가득한 이유를 알만합니다. 원고청탁에 쫓기지 않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저는 알지만 독자들을 위해 알려주시지요? 맑은샘님은 예전부터 제가 알기로 그바쁜 와중에도 매일 평균적으로 시든 무엇이든 한,두편씩 발표하지 않습니까? 시인이외의 직업이 있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그래서 별명이 詩탱크 아닙니까?

 

맑은샘: 맞습니다. 시인이 시가 좋아 매일 시를 쓰니 시인이지 왜 시인이겠습니까? 저는 너무 늦게 등단했는데 사실 대학당시 전공이 문학도 아니었고 군제대와 졸업후 동경과 보스톤을 잠시 다녀와서 약간의 직업을 가지기 전까지 시도 문학도 몰랐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29살때인가 저는 굉장이 경제적으로 힘든 때였습니다. 직업도 없고 신림동에서 쌍문동으로 이사와 저의 시스승 “故김봉운 시인(중앙일보 시나리오 신춘문예 등단)”을 아주 우연한 기회에 우이동 산자락의 한 카페에서 만났는데 그것이 인연이 되었습니다.

 

제 스승은 참 기인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스승께서 그토록 시창작의 실력자인줄도 몰랐습니다. 제가 그때 형법과 범죄심리학을 공부할 때였는데 그분은 등단 후 한참 뒤 프랑스 파리를 유학하고 다녀와 ‘앙드레부르퉁’ 육필원고를 가지고 계셨고 랭보의 초현실주의 시창작기법을 유일하게 저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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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reton)

 

Less time

 

Less time than it takes to say it, less tears than it takes to die; I've taken account of everything,
there you have it. I've made a census of the stones, they are as numerous as my fingers and some
others; I've distributed some pamphlets to the plants, but not all were willing to accept them. I've
kept company with music for a second only and now I no longer know what to think of suicide, for
if I ever want to part from myself, the exit is on this side and, I add mischievously, the entrance, the
re-entrance is on the other. You see what you still have to do. Hours, grief, I don't keep a
reasonable account of them; I'm alone, I look out of the window; there is no passerby, or rather no
one passes (underline passes). You don't know this man? It's Mr. Same. May I introduce Madam
Madam? And their children. Then I turn back on my steps, my steps turn back too, but I don't
know exactly what they turn back on. I consult a schedule; the names of the towns have been
replaced by the names of people who have been quite close to me. Shall I go to A, return to B,
change at X? Yes, of course I'll change at X. Provided I don't miss the connection with boredom!
There we are: boredom, beautiful parallels, ah! how beautiful the parallels are under God's
perpendicular.


 

Submitted: Friday, January 03, 2003
Edited: Thursday, June 3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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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르레알리즘은 1917년 시인 아폴리네르(G. Apollinaire)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명확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앙드레 부르퉁(A. Breton)이 <초현실주의(쉬르레알리즘)선언>을 발간한 1924년 부터입니다. 다다이즘의 격렬한 파괴운동을 수정,발전시켰고 이성(理性)의 지배를 받지않는 공상, 환상의 세계를 중요시 했습니다. 쉬르레알리즘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헤겔의 관념론을 원용하여 인간정신의 전면적 해방을 위한 일종의 신비사상을 예술화시킨 것입니다. 즉, 인간의 정신세계 중 무의식이나 꿈의 세계를 독자적으로 개발한 미술 형식으로 표현, 정신적 해방감을 맛보게 했지요. 문학에서는 이성의 속박에서 탈피하고, 비합리적ㆍ비현실적 세계를 '자동기술법' 등으로 표현했습니다.

 

 

제 스승은 창작기법은 쉬르 레알리즘 기법인데 시창작 철학은 구상 선생님을 좋아하셨습니다.

 

 쉬르 레알리즘과 심리학이 좀 대할 여지가 있어 그 동네에서 유일하게 서로 말이 통하는 존재

 

였지요. 알고보니 그분의 모친과 제 어머님은 여고 먼 기수의 선후배였습니다. 또 제 모친은 아

 

버님과 결혼하시기 훨씬 전 여고 문예반 반장이셨다고 하셨는데 프랑스 시인 “이브 본느푸아

 

의 시”로 아버님과 서로 연애하셨다는 일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제가 태어났는지?

 

 하하...어머님은 아주 오래 전 옛날 황금찬 시인님의 시강의를 들으셨던 기억을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 카페나 등단한 제시집 애독자들 중 한 분이 십니다. 스승과 제가 서로

 

 점점 더 알게 되자 어느날 우연히 제 낙서를 가지고 오라시더니 휴일 그 누추하고 곰팡이핀

 

스승의 반지하 골방에서 창작지도를 받았는데 웬걸 제낙서가 스승이 손대시면 희안하게 멋진

 

 작품으로 변모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그때 쉬르레알리즘 기법을 잘모르고 평론하는 자

 

들의 무지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슈르기법은 모차르트처럼 있는 그대로 횡하니 쓸수 있지만 제 스승은 그전의 20년동안의 다른

 

기법의 오랜 내공도 가지고 계셨고 파리를 다녀오신 후 10여년의 내공이 더 쌓여져 계셨던 분

 

이며 초대 ”초현실주의 협회‘를 만들고 그 대표를 하셨던 사실을  저에게 숨기고 있었습니다만

 

 실력은 알아볼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제가 처음이 아니라 오랜 내공을 한 순간의

 

 쉬르기법으로 즉석에서 횡하니 쓰는 버릇을 스승께 배웠던 셈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프랑스 무

 

당들 기법인데 1차대전을 경험한 앙드레 부르퉁은 억압에 대한 반항으로 시를 썼고 랭보는 진

 

실함의 극적인 추구로 작품을 썼지만 좀 불행했지요. 미술의 마그리트, 살바드로 달리의 정신

 

적 원형이지요...이후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로 이어졌는데 저는 네루다의 사상은 좌파라

 

 매우 싫어 합니다.

 

 

우리 문단에서는 이상(李箱)시인이 최초 소개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당시의 인문과학 수준도 열악할 때였으니 쉬르기법으로 공학적인 사고를 표현한 이상(李箱)시인의 시들이 기괴하게 보인 것은 당연하겠지요..쉬르기법의 원래 시심(詩心)의 본질은 “맑음” 그 자체입니다. 그러니 아이처럼 꿈과 몽상,공상적인 초현실적 내용이 표현되는 것입니다. 쉬르기법에서 저는 메타포보다 있는 사실을 시로 표현하는 직유의 강력한 집중을 배웠고 그것에 힘이 더해지면 초월적인 세상으로 가게 되는데 제시에 붙은 음악들처럼 시의 격에 맞는 음악이 붙여지고 그것과도 다른 자작곡이 마음속에서 자연스레 우러나와 작곡되기도 합니다. 시를 쓰면서 자기 내면의 선율이 작곡이 되어야 진정 쉬르기법을 제대로 체득했다 할 것입니다.

 

쉬르레알리즘 자체가 인간정신의 전면적 해방을 위한 일종의 신비사상을 예술화시킨 것이므로 평소에 제가 가진 이미지와 전혀 다른 제 내면의 무의식에서 표현되는 시적표현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것 자체를 자동기술법으로 쓰니 옆에서 보면 ’횡‘하니 쓰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또 쉬르기법은 이성(理性)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공상ㆍ환상의 세계를 중요시하기에 쉬르기법으로 시의 제재가 어두운 것이거나 악마적인 것을 쓰면 문단이나 대중이 원하는 좋은 작품이 탄생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초기 쉬르기법이 소개되었을 때 우리 문단에서 좀 싫어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시의 제재를 밝은 것, 아름다운 것으로 바꾸어 보니 어떤 작품은 제가 쓰고 읽어 보아도 기가막힌 작품이 탄생하더군요...그것은 제가 종교를 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후에 찾아왔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었지요. 그것에다 메타포가 더해지니 더 괜찮은 작품이 탄생하기도 하더군요...또 남보다 좀 강한 이미지와 주제의 표현들은 故조태일 시인의 기법으로 익힌 것입니다.

 

제 스승의 작품은 정말 은하수처럼 맑았고 사람이 쓴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또 스승께서 유일하게 제자가 저 한사람뿐이고 저를 예뻐하신 이유는 제가 그때 법사상사를 공부했기에 글의 바탕과 사상적 본질이 풍부함을 예쁘게 보셨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좀 괜찮은 등단을 권유했는데 저는 당시 법학공부중이라 등단에 별관심이 없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치기였지요..또 스승은 매일 술에 쩔어계셨고 부인과 이혼한 상태여서 저는 스승의 인간적, 시적, 문학적 창작실력을 매우 흠모했지만 고시생하고 180도 다른 생활을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점점 멀어졌지만 평생에 나가지않던 교회를 제 등단 때문에 나가셔서 술취해 홀로 기도하셨던 사실은 저만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술냄새 풍기는 시인을 어느교회에서 좋아하겠습니까? 저는 그때 시가 좋아서 시를 쓰더라도 술에만 취해 있는 가난한 시인으로 살고 싶지는 않아 혼자 속으로 당당한 직업을 일단 먼저 가지고자 다짐 또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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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연락도 뜸해졌고 저는 법학을 공부한 죄로 정치권에서 활동도하고 시민운동을 거쳐 이회창 대선캠프에서 중소기업 경제정책보좌도 했지요..그때 형님이 계시던 사이트에서 형님을 만났군요...세월 참 빠르네요....벌써 그게 8여년이 흘렀네요...그때 그 사이트에서 제가 최초로 사상감상시를 쓰다가 좀 좌파적 인사들에게 정신적으로 물어뜯김을 당하고 정치부, 경제부 기자로 직업을 가지게 되었지요.

 

젊고 어린 숫사자가 좀 노련하고 덩치있는 자에게 당한 기분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사이트의 일들이 매우 우습지만....하하... 故황순원 선생의 손자이신 ’황성준 박사‘를 만나 뉴라이트전국연합을 설계, 참여하던 일, 우리카페를 만든지도 벌써 6년이네요....매일 두편씩 쓰다보면 한 3년이면 그냥 즉석에서 바로 창작시가 나오지요. 10년 동안 카페에 발표하지 않은 습작시들까지 다 합치면 한 7천여편 가까이 될 것입니다. 저는 아시다시피 시를 잘쓰지는 못해도 무식하게 열심히는 쓴 것 같습니다. 아직 훌륭한 작품이 없어 부끄럽습니다.

 

산해천:  

맞아요. 그때 일들이 눈에 선하군요...맑은샘님이나 작품을 보면 도대체 스승께서 어떤 분인지 저도 궁금합니다. 요즈음 등단하고 스승의 소식은 아십니까?

 

맑은샘;

 

날씨도 화창하고 근처에 나가서 술한잔 해야겠군요.... 그후 저는 스승을 잊고 지냈습니다. 등단은 하지 않았지만 형님을 만나 젊은 문학창작카페를 만들고 꾸준히 쓴 덕택에 오늘의 한국신춘문예 엄원지 회장님을 만나서 투고했더니 덜컥 하고 붙어 버렸네요....등단하고 스승을 수소문해 찾아보니 제가 한국일보 기획특집팀에서 한참 일하던 3년전에 알콜중독자로 어느 길에서 객사하셨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유일한 제자가 저밖에 없는데 저는 스승이 돌아가신 줄도 모르고 빈소도 찾아보지 못한 죄인입니다. 그래서 지난 가을에 제가 쓴 시 “노을”이 바로 제 돌아가신 시스승 “故김봉운 시인”을 회고하며 스승의 명복을 빈 시였습니다.

 

 

 

 

노을

                         맑은 샘

 

남녁 창문을 열면

순결한 마음으로 물든 저 붉은 노을이

서서히 아름드리 가고 있나니

 

옛날이여

부드러운 손길 내밀어

내 뜨거운 입술을 맞추어 보려하나

아련히 곱게 천천히 저물어 가는

기억들이여

 

긴 세월

맑고 푸른 하늘도

비, 바람, 구름도, 천둥 뇌우(雷雨)도

이제 서서히 저물어 가거늘

새 날 그리워

정성된 마음 붉게 타

서서히 아름드리 가고 있나니

 

무슨 성곡(聖曲)들 준비하셨기에

저리도 고운 빛깔들 머금어 울고 계시는지

이젠 아련히 간직하도록

황혼(滉魂)이여

내 품안에 안겼던 모든 것들

찬란히 입맞춤해 주소서

 

노을이여 

아련히 붉어가는 무대 저물고 막이 오르면

님의 성좌(星座) 홀로 빛나도록

이젠 고웁게 간직하도록

서서히 편히 저물어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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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음악 : Brahms piano concerto no. 2 part 3  

http://www.youtube.com/watch?v=cLlLTQLgA9o&feature=player_embedded

 

 

 

산해천: 네, 숙연해지는군요 저도 시를 쓰며 맑은샘님을 보면 참 좋은 창작 후배, 시우를 두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맑은샘님의 어떤 작품들은 쉬르기법을 쓰면서도 메타포도 있고 사상이나 시사적인 센스도 가미되어 있어 보편적이기도 하면서 상당히 독특하며 신선하기도 합니다. 쉬르기법만 고집하며 쓰는 것은 아닌것 같기도 하고 궁금한데요?

 

맑은샘 :

 

맞습니다. 바로 보셨습니다. 초기에 저는 쉬르기법으로 저의 일상적인 일들이나 넋두리들을 강한 집중으로 또 시제가 없을 때는 억지로 시소제를 찾아 나서기도 하며 제 창작시로 꾸미기도 해보았는데 갈수록 쓸 내용이 빈약해졌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시를 쓰지 않기도 하다가 원래 제전공 이외의 사상을 공부하기도하고 전통 서정시나 다른 창작기법을 빌어와 써 보았더니 시의 내용이 좀 풍부해졌습니다.

 

요즈음 좀 신경써서 발표하는 것들은 그것을 다시 압축시키고 퇴고를 통해 도자기 빚듯 깍고 다듬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래서 한 시에서 어떤 연이나 행들의 내용은 시사적이거나 사상냄새가 좀 나고 어떤 행들은 직유의 강한 쉬르기법도 있으며 전통의 메타포로 포장한 행이나 연도 있게 된 것이며 연이 없는 시들은 쉬르기법으로 사르르 가다가 퍽하고 메타포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저는 주제표현이 좀 강한 편이지요...하하...한마디로 좀 이기법 저기법 부대찌개죠.

 

산해천:

어쩐지, 그 독특하고 세련된 시가 그냥 탄생한 것은 아니군요....훌륭하고 대단합니다.

 

맑은샘:

아이고 형님, 왜 그러십니까? 형님의 철학적 서정시는 그 깊이와 맛을 저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그런 훌륭한 메타포가 나오시는지 부럽습니다. 저는 형님의 작품을 읽을 때 마다 서정시는 서정시인데 진짜 ‘철학적인 서정시’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즉 많은 다른 문예지들에서 본 “철학적인 척 하는 시”가 아니라 진실한 삶과 독서의 체험, 전문미술평론에서 우러나온 시라는 것입니다.

 

형님의 시 창작경륜과 때로는 묵직함, 깊은 정서, 앞으로 서정시의 대가로 저는 인정합니다. 저도 시창작의 절정의 단계를 눈에 보이지 않는 이데아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 즉 예지의 단계로 보고 그런 점을 쓰도록 무척 애쓰기도 하는데 도저히 형님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특히 형님의 작품은 애써 그런 표현을 부자연스럽게 쓴 것이 아니라 진실한 창작경륜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옴을 항상 느끼고 있습니다. 도대체 그 훌륭한 메타포를 어떻게 만들어내십니까? 비법 좀 한 수 부탁드립니다. 

 

산해천:

ㅎㅎ 쑥스.... 등단은 늦게 하셨지만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만들고 계시는데 옆에서 보기에도 훌륭하십니다. 저도 우리 문단이 창작의 공부에 게으르거나 너무 좌편향적으로 좁다거나 하는 점을 많이 느낍니다. 제 시론을 한마디 하자면 “시창작은 보이지 않는 물체와 보이는 물상과의 관문으로서의 소통이며, 편면적인 세계에서 입체화 되는 세계이고 그것에 새로운 관념을 부여하여 주는 작업”이라고 봅니다.

 

시창작은 어머니가 자식을 낳을 때의 고통을 수반하고 산고이전의 꿈이고 희망이며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나 맑은샘님이나 시를 쓴지 이제 10년이 넘어가는 듯합니다. 초기시평이 아니라 시를 십년정도 쓰신 분으로써 후배들에게 가볍고 편하게 하시고픈 말씀이 계시다면?, 시인의 단계가 좀 보이십니까?

 

또, 문학인으로써 맑은샘님은 문단의 선,후배들과 좀 교류가 없으신듯 하고 너무 혼자서 글쓰기에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닌지요?

 

맑은샘:

 

음,,,아픈 지적이시기도 한데,  뭐 제가 특별히 문단에서 인간관계 교류나 인격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요,  훌륭한 작품도 없이 여기저기 저는 나다니기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또, 저는 시인으로서 언론을 홍보로 이용하는 것은 아직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남들 들으면 다아는 언론사 간부인데 뭐가 아쉽겠습니까? 언론사 홍보 메커니즘을 너무나 잘알지요...ㅎㅎ..오늘 인터뷰는 부끄러운 제작품 소개보다 사실 스포츠닷컴이 제가 등단한 문예지의 자매사이며 제애독자들께서 저를 너무 궁금해 하신다기에 큰마음먹고 응했습니다...작품만을 생각하자면 문인들과의 교류가 사실은 제가 마음먹은 바를 실천하자니 도무지 시간자체가 없었고요, 요즈음도 그렇습니다. 작품만 쓰자니 먹고사는 문제로 언론사 직업이 있어 매일 아침 8시부터 저녁 퇴근시간 까지는 작품은 엄두도 못내고 제가 시를 쓰는 시간은 매일 저녁 8시 이후입니다.

 

그러니 잠은 하루 3-4시간 밖에 못잡니다. 낮에 남모르게 쪽잠을 자기도 합니다.  그나마 휴일에 작품이나 에세이를 마음놓고 쓰지요...그런 시간이 벌써 십수년이니 프로로써 문학상을 받게 된 것도 아둔한 제가 뭐 특별히 재능이 있다기 보다 그게 꾸준히 쌓여서 그런 것 같아요...시인, 작가가 작품으로 말해야지 술로 말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남들은 직업인이라도 여가시간에 오토바이크 투어나 등산이나 낚시 등 여러 취미를 즐기는데 처음 저는 그  취미가 기사문 작성 이외 글쓰기였거든요...ㅎㅎ...저도 특히 오토바이크 투어나 술은 좋아하지만 과음이나 회식술이 저는 30대 중반부터 싫어지더군요....하지만 요즈음은 형님이나 협회회원들등 필요한 분들은 만나지 않습니까? 

 

예전 보스톤과 뉴욕, 일본의 동경, 센다이를 다녀온 적은 있고 곧 필라델피아와 캘리포니아를 갈일이 있습니다.  또 언제한번 오토바이크로 제 사상사 연작물과 소설작품을 위해 유럽일주를 좀 깊이 할 요량으로 저만의 문화사(文化史)와 정치,경제사 통합루트를 구상해 두었는데 경비가 만만치 않지요....지금도 준비중인데 저는 반드시 실천할 것입니다.^*^

 

깊고도 짧막한 시론을 들으니 동감입니다. 서정시를 쓰던 사상시를 쓰던 시를 10년이상 쓰면 그 구분도 우스워집니다.  저도 뭐 독특히 구분해서 좋아하지는 않구요.. 다만 제 스타일이 서정시도 좋아하지만 사상감상시쪽인 듯 합니다. 저는 철학시니 사상시니 특히 ‘참여시, 민중시’라는 말은 좀 싫어서 솔직하게 “사상감상시”라고 부릅니다. 

 

세상을 정상적으로 사는데 "참여"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아직도 '서민'입니다. '참여시, 민중시'라는 말은 얄팍하게도 베낀이론에 근거하고 다분히 좌파 정치목적적인 말입니다. "참여"라는 말에 대해서는 저의 신좌익사상 비판 연재물 중 "로베르토 보비오 편"을 참조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말씀하신대로 후배들을 위해서 10년이상 시를 쓴 소감을 밝히며 좀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이제 저도 “시인의 계단”이라고나 할까 단계가 좀 보이더군요.. 굳이 이것을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시인의 단계를 “낙서, 넋두리의 단계, - 일기의 단계,- 인문,교양의 단계,-철학의 단계,- 사회성과 자기 전문성의 단계, -국가적 단계,-- 문예, 문화비평의 단계,-- 시 도인(道人), 시선(詩仙) 초월의 단계, --해탈의 단계로 좀 자의적으로 정리해서 구분해 보았는데요..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은  낙서, 넋두리의 단계, 일기의 단계를 알고 여기서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시인도 마찬가지이지요. 시를 짓고 글쓰기가 환장하리 만큼 좋은 사람은 대학에 입학하여 인문교양의 단계를 시작하고 이에 이르러야 한다고 봅니다.  이때 많은 고전원전과 철학사나 사상사들을 읽지 않으면 나는 좋은 작가나 시인이 되기 어렵다고 봅니다. 

 

이때 많은 양서를 읽어야 나중 시창작의 내용이 샘물처럼 마르지 않습니다. 제경우는 대학1년 시절 철학을 열심히, 그리고 사회학과 인류학을 좀 공부했었습니다.  나중 등단하고 나이가 30,40이 넘어서 창작기법만 세련되고 내용이 없는 졸시들이 범람하는 것은 이때 다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서정시가 아니라 사상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저는 속으로는 훌륭하고 좋은 시인으로 취급을 하지 않습니다.

 

즉, 읽을거리없이 창작기법만 그럴듯하니 보이나 세련된 자기 넋두리만을 써대면 누가 그를 좋은 작가, 시인이라 할 것입니까? 겉다르고 속다른 예쁜시만을 쓰는 시인들도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고 시기질투만 그득한 심성을 감춘 채 겉으로 화려한 형용사나 수사적 기교만 9단인 여류시인들의 시도 저는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경륜이라는 것은 당연히 진정으로 존중해야 하지만 시작(詩作)에 좀 욕심을 가진 시인이라면 이런 속마음을 가지는 것도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제 경우에는 돌아가신 저의 스승께서 평생에 당신의 제자를 딱 한 사람 저를 두신 것은 제가 시를 잘 써서가 아니라  다른 젊은이들에 비해 저의 철학사,  법사상사, 사회사상사, 경제사상사에 대한 지식과 풍부한 필로로지와 교양쌓기 노력을 예쁘게 보셨기 때문이라고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스승께서는 그것에 진실한 사회경험과 선택에 의한  제나름의 인생항로는 시인으로써 '철학적인 척'하며 무성의한 졸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소화한 제시가 지닌 철학의 맛을 더하게 해야 한다고 늘 채근하셨습니다. 예를들면 기형도 시인, 수필가 전혜린,  박인환 시인, 이상 시인 등이 이르렀던 경지라고 저는 느끼고 그렇게 봅니다.

 

지금의 저는 이를 넘어 사회성의 첫단계에 이르렀다고 감히 자신과 저를 잘아는 타인들이 공인해 주고 있어 어깨가 더 무겁고 더 정진해야함을 늘 느낍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비로소 시인의 작품이나 시인의 한마디로 실제 세상이 움직여지는것 같더군요. 요즈음 저는 머리가 퇴화되었는지 싯구 하나 하나에 신경쓰기가 싫어져 예전처럼 그렇게 복잡하게 쓰기보다 그냥 나오는데로 좀 투박하게 쓰는 편입니다.

 

예전의 제 졸시들이 무슨 “복잡한 말 레고놀이” 같은 생각이 들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저는 등단을 했다고 다 '시인'이라고 취급하지 않는 못된 속마음이 있기도한데 어떤 경로의 등단을 하던 안하던 사상시쪽은 자기작품이나 자신의 한마디로 '세상이 움직여져야 진짜 '시인'이라는 생각이 언제부터인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진짜 프로시인의 첫 단계라고 봅니다.

 

즉 4단이상의 고수(高手)의 세계로 입문하는 것이지요. 이 단계에 이르러 자기작품으로 세상을 좀 움직여 본 경험이 있는 시인, 작가라면 세상의 기준인 사회적, 개인적 욕망, 즉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물질욕(富), 명예욕, 권력욕 등이 정말 스스로 우습고 유치해집니다. 그것을 자연스럽게 경험으로 초탈할수 있어야 비로소 자신의 한마디로 세상이 움이여지는 경지를 경험할 수 있으며 유명하건 무명으로있건 그자체도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우스워집니다.  

 

어디에 존재하건 세상이 대충 다 보이는 경지에 이르렀는데 뭐가 아쉽겠습니까? 또 이 단계의 맛을 보아야 진짜 시인,작가의 사명(使命)이 무엇인지 스스로 아는 단계에 이르는 것이며 그것을 경험하게 해주신 주님께 저도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단계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시인 자신의 정치학, 법학, 경제학, 행정학, 사회학 등 다양한 사회과학 공부에 더하여 실제 직업이 달랑 시인 하나 이외에 다른 구체적이며 전문적인 사회적 직업을 통하여 인간과 사회현상에 대한 깊고 냉철한 통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만약 시인이 이런 공부와 노력을 끊임없이 하지 않는다면 사상시 쪽에서는 글폼만 잡는 정신적, 경제적 양아치 현상을 겪게 될 것입니다. 경제적인 문제야 직업을 구하던지 본인이 노력하면 되지만 프로시인, 작가로써 정신적 양아치 현상을 겪는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니 먹는 것(끊임없이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노력과 경험으로 이 단계에 이르지 못하거나 자신의 말로 세상을 움직여보지 못하면 "내 한마디로 또는 내 작품으로 세상을 움직여 보고 싶다" 라는 거의 대부분의 시인, 작가 지망생들이 유치하게 속으로 품기도 하는, 하찮은 글폼잡기 욕망에 빠지게 되는데 아무런 연구나 공부, 노력없이 아무리 속을 감추고 허황하게 세상을 사기쳐 보아야 자신이 욕망의 화신일 뿐임을 처절하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서정시쪽도 오랜 창작 경륜이 있는 분들이나 사상시쪽도 그냥 읽은 것을 폼으로 표현하는 경지가 아니라 세상을 움직여 본 경험이 있는 시인, 작가들의 눈에는 말안해도 훤히 다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경험으로 말하건데 자신의 말이나 작품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단계에 이르고자 한다면 끊임없이 정보와 책을 놓지 않으며 또 이와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괴리도 파악할 수 있어야 하며 맑은 정신과 자기수양을 지속시키고 자기경험과 생각을 소중하게 여기며 그것을 늘 갈고 닦고 항상 하늘에 겸손한 청정심을 유지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스스로 진정한 자만이 남의 진정성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이것은 절대로 "나도 그리해 보아야지" 라는 결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가(佛家)의 가르침처럼 '그런 의식마저도 없는 상태의 무욕(無慾)의 정진으로' 자신도 모르게 도달하게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러하지 못하는 실례가 대선 때 몇몇 좌성향 작가,시인등이 대선을 계기로 편협한 사상과 행동의 실체로 욕먹는 경우라고 저는 봅니다. 자신이 직접 공부하고 깊이 연구해보지 않은 편협한 사상을 남의 말, 남의 세력을 빌어 교묘하게 세상장난을 쳐보았자 나중에 돌아오는 것은 비난과 자신에 대한 공허함, 허무함 뿐이겠지요.  공부하고 그 경지를 넘어선 사람들이 보기에 얼마나 유치한지 깨닫는다면 그보다 더한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하물며 세상을 꿰뚫어 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정신적, 문화적 자극을 줄 필요가 있는 작가, 시인이 일반인들보다 교양수준과 사회적 전문성이 더 떨어진다면 말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지금은 계몽의 잘난 시대가 아니라 전문가 시대입니다. 예를 든다면 우리 정치권의 문제와 헌법을 볼때 정부구성, 의회구성의 문제가 무엇인가? 작금의 우리 경제의 문제가 무엇인가? 외교의 문제는 무엇인가?  지역 행정의 문제는 무엇인가?  지역 사회복지의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 문화,예술계의 문제는 무엇인가? 라는 등을 작품이나 시로 표현할 때 공부하지 않으면 답을 못하는 것입니다.

 

이다음 단계를 저는 문인으로써 국가적 단계의 반열에 올랐다고 보는데 예를들면 제가 보기에 김수영 시인,  조태일 시인, 유치환 시인, 일제때 이육사 시인,  김춘수 시인,  소설가 이문열님,   박경리님, 김훈님 등이 도달한 단계라고 봅니다. 우리 카페의 고문이신 전원책 변호사님 겸 시인, 소설가 복거일님도 이 경지에 계시는 듯 합니다.

 

그다음 단계로 저는 진정한 문예,문화비평의 단계로 보는데 이정도에 이른 문인들이 별로 없습니다. 이 경지는 그 전의 경지에서 기본적 사회성의 단계에 더하여 경제면 경제, 사회복지면 복지, 정치면 정치,  예술장르면 쟝르 한가지 길의 전문성의 절정만 통해도 다른 갈래의 길도 대충 다 보일것 같습니다. 예를들면 지금 김지하 시인은 이미 이르렀고 , 소설가 김진명님 정도가 이르기 일보직전이라고 느껴집니다. 이 단계의 마지막 즈음에 이르러야 우리도 노벨 문학상을 바라보지 않겠습니까? 

 

그리하고도 내가 모르는 부분은 부지기수니 인간이나 시인이나 죽을 때까지 겸손해야 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이렇게 많은 시를 써보고 많은 작품의 창작경험이 있어야 보이는 경지에 多作도 해보지 않고 무슨 되먹지도 않은 제또래의 젊은 문예창작과 교수녀석이 떠드는 왈왈소리가 무슨 문예비평입니까?  베낀 이론 설풀기이지! 가소롭고 웃기는 일일뿐입니다.^*^하물며 그런데 원전도 읽어보지 않은 녀석들이 그렇다면?  아이고 걸레같은 놈들이 말이죠....

 

시 도인(道人), 시선(詩仙)  초월의 단계로는 김춘수 시인, 지금 박희진 시인님,  돌아가신 구상 시인님 정도가 보입니다. 해탈의 단계?  시를 쓰면서도 인간과 시인의 단계를 넘은 단계 아니겠습니까?  시를 쓴다는 것도 가고 가고 또 가는 일이며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며 생각해야 하는 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산해천:

재미있는 구분이기도하고 역시, 저도 깊이 동감하는 바가 많습니다. 등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마디로 세상이 움직여져야 진짜 시인이다”라는 말이 사상감상시를 쓰시는 분의 말씀이라 참 가슴에 와닿습니다. 맑은샘님을 알고지낸 8년동안 맑은샘님은 실제 그리해보았으니 저는 잘 알고 느끼고 있어 본인의 창작체험이라 말의 힘이 느껴집니다.

 

제스타일의 서정시를 쓰면서 느낀 점은 시로써 표현한 것은 작가의 어떤 의도가 숨어 있지만, 독자의 해석에 따라서 독자가 수용하는 느낌에 따라서 단어에 이입된 주로 독자의 경험에 따라 여러 층으로 분산되어 나타나는 프리즘과도 같다고 봅니다. 시는 자신의 제2의 모습  이며 자신의 내부로부터 나와서 반추하는 즐거움과 과거의 현상들을 반성하는 기회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고 봅니다.

 

시를 쓰고자하면서 가지는 종종 비현실적인 문구들은 구체적이며 결과론적인 내용을 함유하지 않으면서 체계적이지 못한 이야기들에 대한 대부분의 괴리에 빠져 상실감과 자괴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심리적으로 어떤 실오라기가 단서가 되어 커다란 자유스러운 실타레를 이루듯 그 작은 단서에 의존하여 시작의 동기를 찾기도 한다고 봅니다. 물론, 이런 글들은 독자에게 반감을 유발하기도하여 인위적 또는 자위적으로 해석을 하기도 하고 또는 짜 맞추기를 하지 않으려는 독자들에게 부담스럽고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시인의 일차적인 내면의 표현도 있지만 그보다는 공간과 시간 속에 존재하는 시인자신과 교류되는 것들, 눈이나 손으로 잡을 수 없는 표상이 스쳐가는 것을 감지할 때, 그것들을 잡아내서 문자를 통해 마음에 여과시켜 담아 놓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시가 되려고 부단히 노력은 하지만 좋은시란 잘 쓰고자하는 글에대한 고민보다는 어떻게하면 마음을 덜어낼 수 있는가 하는 고민에 빠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요즈음 맑은샘님은 자신의 시를 직접 우리말,영어,불어,독어로 발표하시는데 대단합니다.  뭐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맑은샘:

 

제 나이도 이제 중년에 이르러 뭐 폼잡을려고 그런 것은 아니고요, 틈틈히 공부했던 외국어를 썩히기도 그렇고 무엇보다 복거일 선생님의 충고 때문입니다. 이젠 우리문단도 글로벌 시대를 살고 있고요 시인은 사실 "글의 예술가"이기도 합니다. 그럼 글의 예술가가  그 표현도구인 언어를 쓰는데 언어에 대해 모르면 어떡합니까? 말이 안되지요...또 말만 글로벌 문학이라고 떠들면 뭐합니까?  그래서 저는 진정한 글로벌 시인, 문학인으로 실천하고자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쓰고 있는 것입니다. 

 

저도 형님께 배우는 점이 많습니다. 내용과 장르는 약간 다르지만 시창작의 요소에 있어서는 100% 동감합니다.. 아이고 시인의 단계는 어린 제자가 읽어 보라고 쓴 글인데 참 부끄럽습니다. 저는 사상시쪽으로 노력해 지난 좌파정권시절 시를 쓰면서 정권이 바뀌어지는 경험도 해보았고 지금 새정부도 출범하게 되어 기분이 상쾌합니다.

 

제가 정권을 바꾼 것은 아니지만, “시인의 작품이나 말로 세상이 좀 움직여져야 진짜 시인이다”라는 말이 제 입에서 나오기 시작하더군요....사실은 겁나는 말이지요.. 무거운 정신적, 사회적 책임도 따릅니다. 하지만 세상의 본질과 그 근원을 꿰뚫어 볼 수있어야 시인 자격이 있는 것은 어떤 시를 쓰던 공통된 진실입니다.

 

예전에 제가 우리카페 고문 중 한 분이신 소설가이시자 한국의 자유주의 사상가이자 어른이신 “복거일 선생님”을 인터뷰 한 적이 있는데 그분께서 훌륭한 사상가가 되기란 정말 가시밭길이요 외롭고 힘든 길이라면서 저의 용기를 북돋아 주신일이 있습니다. 저는 문단과 언론계, 정계의 훌륭한 선,후배들에 비해 너무나 부족한 사람입니다.

 

예술작품의 글을 쓴다는 것은 옆에서 보기에 외로와 보이지만 쓰는 것이 사명이 되고 자기일이 되면 자신만이 아는 열락과 기쁨의 길이기도 합니다. 형님께서는 홀로 한밤중, 새벽에 잠못들고 자신만의 문학적 세계에 빠져 와인보다 더 맛있고 달콤한 자기작품 탄생과의 사랑의 기쁨을 모르십니까? 모르실 리가 있습니까? 하하..

 

저같은 경우는 문단의 남들이 하기싫은 부분, 좀 길고 지루하고 인내와 지구력을 요하는 부분을 시도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한 십년 쓰다보니 이제 남의 작품도 제 작품을 읽는 것에도 일상적이고 내용없는 넋두리는 지겨워졌습니다.

 

그래서 좀 내용있고 가치있는 작업을 해보고자 "사상감상시"라는 시 장르를 만들기 위해 ‘통합사상사’라 이름붙인 고전연재물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것을 표현하는 창작물인 시는 역시 일상적인 넋두리도 사용해야 일반인이나 남들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 그렇게 쓰고 있습니다만 예전처럼 참신하게 팍 쏘며 독특하지도, 세련되지도 않고 필봉이 많이 무뎌졌습니다.

 

이것은 여러모로 많이 부족한 저의 소회이지만 사상감상시에서 그 사상이 잘 표현된다면 저보다 훌륭하고 품격있는 후배들의 출현도 기대하고 그것을 위해 해보는 작업입니다. "통합사상사"라고 하니까 제 개념을 굉장히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음을 느낍니다.

 

제 사상연재물의 통합이라는 개념은 '내용의 통합'이 아니라 학제간의 '기본적 통합'이라고 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한마디로 철학사상을 여행하다가 정치학 사상도 경제사상도, 법사상도 가볍게 여행하는 것입니다.제가 왜 "통합"이라는 말을 썼을까요?

 

철학이면 철학 경제학이면 경제학이라는 학문만을 위한 사상사라면 솔직히 한가지 학문만 제대로 연구해도 평생하기 힘듭니다. 또 그 학문만을 위한 당연한 과정이겠지요. 그것은 해당학문 전문가들의 몫입니다.  또 사상의 내용상 통합할 수가 없습니다. 마르크스 이후 좌파사상들과 하이예크 이후 자유주의 사상들이 철학적, 본질적 인식론부터가 완전히 다르고 내용도 다른데 어떻게 통합이 됩니까? 

 

즉, 내용상 개념상의 이질성 때문에 "학문의 융합"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제가 말하는 "통합"이라는 의미는 내용상 학제간 다르며 따로의 사상들을 같이 한 책에 묶어보자는 뜻입니다. 유럽의 중세를 조망해 보는데 철학사만으로 보는 것보다야 그것을 더한 백과사전적 시각으로 보는것이 훨씬 더 이해가 빠르지 않습니까? 그것을 보고 난다음 다시 법사상이나 경제사상을 따로 한 번 더 보세요..훨신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나는 철학도 문학도 법학도 경제학도 사회학도 서로 다른 내용의 사상사 서적들을 가지고 있지만 이런 사상들을 자유롭게 읽으며 여행할 수는 있습니다. 예를들면 어느 철학도가 자기학문만 아니라 경제학도 공부하고 사회학도가 경제사상도 공부해 보고 경제학도가 법학도 공부해보면 자기학문만의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어떤 사회적 현상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현실에서 지금 제 직업의 일을 하자고 한다면 어떤 경제 전문가를 인터뷰한다고 할 때 저는 우리회사의 부장 간부로써 팀 내부의 대내외적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을 제가 공부했던 법학과 경영학으로 조율하고 조정할 수가 있지만 법학이나 경영이론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제 일을 한다면 저보다 못할 수 있습니다.

 

더하여 저는 기획기사를 위해 어떤 전문 경제학자를 인터뷰해야 합니다. 그러면 경제사상이나 파생된 이론을 모르는 기자보다 경제학을 공부한 제가 인터뷰에 더 전문적이겠지요? 게다가 그의 부인이 전문 소프라노라면 그 경제전문가의 생각을 멋있게 그 부인의 예술공연 활동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획 아이디어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지금 현대의 거의 모든 오피니언  리더들의 직업은 자기 전문성과 더불어 이런 다양한 여러가지 시각의 사고력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즉, 구조기능적인 자기 전문성의 깊이도 중요하지만 보다 폭넓은 타분야의 이해도 필요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를 쓰면 장점도 많습니다.  저는 만나주지 않겠다는 인터뷰 당사자도 제 솔직한 시로 접근해 인터뷰를 성공시켰던 일도  있었고 그 분과 지금까지도 돈독한 우애를 가지고 있으며 사랑하는 ^*^제 00도 제 서정시로 꼬드겨 성공했습니다.^*^

 

산해천 :

^*^ 그래요?          저도 그 시에 반했지요...맑은샘님은 사상시쪽만 잘쓰시는줄 알았는데 탁월한 서정시였어요,,,독자들에게 한번 들려 주시면요?

 

맑은샘:

형님도 거참,,,쑥스럽네요...그럼...

 

 

감상음악 :  쇼팽 '피아노협주곡 1번 2악장 Romance - Larghetto"

                클릭하세요                          

 

http://www.youtube.com/watch?v=Rsmvq0ZRNR8&feature=player_detailpage

 

 

 

        겨울숲길

 

                      맑은샘                                       

 

        나 지금

        아름다운 밤의 숲길을 조용히 걷고 있어요

 

        한 발 자욱 한 발 자욱마다 그대의 별빛어린 눈망울 새겨

 

 

        하늘의 샘물가에 있다 내려온 세상에   

 

 

        하염없이 흘러간 세속의 세월이 하나둘 지워져 가고

 

 

        바르르 떠는 듯 별 영혼 담겨 숲길의 이끼 고옥(古獄) 하지만

 

 

        나 지금

 

 

        밤의 눈빛 우단 길, 고요히 걷고 있어요

 

 

        한 호흡, 한 호흡마다 새로와지는 마음의 선율 F# 에서 고요히 미끄러져 내려오는

 

 

        빛 맑은 피아노위의 사랑스런 손가락처럼 

 

 

        나 지금 

  

 

        밤의 숲속 기도길, 그렇게 걷고 있어요

 

 

        만났던 순간 인생이 감사하고 아름다와서  

 

 

        온통 그대 얼굴 가득한 내 사랑의 숲속 

   

 

        힘들고 지친 슬프고 어두운 고뇌속에도

 

 

        나 그대마음 가득한 향기만  생각하리

 

 

        Db 에서 내게 준 미소만 간직한 채 올라가는 빛 밝은 달님의 손가락처럼  

 

 

        그렇게 사랑스런 당신과 님의 길을 걷고 있어요

 

 

        왜 이제사 불어 오시는지

 

 

        고요한 마음속 그대만을 위한 숲속의 기도

 

 

        숲이 황홀하고 은은하게 연주해 주면서 우리 귓볼을 간지럽히는 밤의 봄바람처럼

 

 

        고운 이슬 맑은 사랑의 밤, 숲 향기 불어와

 

 

        마음이 환해오는 사랑의 환희를 그대에게 실어 보내고

 

 

        지난 고통 슬픔 삼킨 마음이 새로와져

 

 

        님의 고운 악보를 따라 그대생각 한 올 한 올 연주하는 고옥(高玉)한 구슬선율이 가득

 

 

        내 마음 아름다운 숲길을 따라    

 

 

        나 지금  

 

 

        한 발 자욱 한 발 자욱 걷고 있어요

 

 

        왜  이제사 불어 오시는지

 

 

        빛의 검(劍)이 눈물겹도록

 

 

 

      

 

Path of Winter Forest

 

                                                   (Boung chan, Kwon)

 

I am now

quietly walking down the path in the forest of a beautiful night.

Coming down from the world

where I used to stay by the spring of the sky,

carving your shining eyes like a star

in every step I take,

I see mundane time blankly rushing in and

disappearing away, one by one.

As if trembling,

the trail is full of the old moss

that breaths starts’ spirit.

But I am now…

quietly walking down the velvet path of the night.

Just like my lovely fingers on the pure piano

silently sliding from F# in my mind

that gets refreshed at every breath I take,

I am now

so walking down the path of the night to prayer.

The forest is full of my love, of your face.

Since my life is grateful and beautiful at the encounter,

I will think of only your fragrance full in my heart,

even when in hard, tiring, sad, and dark anguish.

Like the fingers of the bright moon

that embraces only the smile Db gave me,

I am now walking down the path of my lovely.

Why is it only now it is blowing?

In my peaceful mind, I serve a prayer of the forest only for you…

While the forest plays blissfully and softly,

like spring wind tickling our earlobes,

it is blowing the fragrance of forest at the night

full of beautiful and clear dews,

carrying the joy of love to you, making a heart light.

My mind that swallowed past pains and soreness

has been refreshed, playing your pretty melodies piece by piece.

Full of the silvery tunes,

My heart is now walking along the beautiful path of the forest, step by step.

Why is it only now it is blowing…

 

as tearfully as sword of night c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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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fad der Winter-Wald 

                                                   
(Boung Chan, Kwon)

Ich bin jetzt
ruhig zu Fuß den Weg in den Wald von einer sch?nen Nacht.
Abstieg aus der Welt
wo ich fr?her durch die Feder des Himmels zu bleiben,
Carving Ihre gl?nzenden Augen wie ein Stern
in jedem Schritt, den ich,
Ich sehe weltlichen Zeit verst?ndnislos hetzen und
verschwinden weg, einer nach dem anderen.
Als ob Zittern,
der Weg ist voll von alten Moos
dass atmet beginnt "Geist.
Aber ich bin jetzt ...
ruhig zu Fuß den Weg Samt der Nacht.
Genau wie meine sch?ne Finger auf die reine Klavier
lautlos gleitenden von F # in meinem Kopf
wird, dass bei jedem Atemzug nehme ich aktualisiert,

Ich bin jetzt
so zu Fuß den Weg in der Nacht zum Gebet auf.
Der Wald ist voll von meiner Liebe, von Ihrem Gesicht.
Da mein Leben ist dankbar und sch?n bei der Begegnung,
Ich will nur dein Duft voller in meinem Herzen zu denken,
auch wenn sie in harten, anstrengenden, traurig, dunkel und Angst.
Wie die Finger der helle Mond
dass, umfasst nur das L?cheln Db mir gab,
Ich bin jetzt zu Fuß den Weg meines sch?n.
Warum ist es erst jetzt, es weht?
In meinem friedlichen Geist diene ich ein Gebet des Waldes nur f?r dich ...
W?hrend der Wald spielt selig und leise,
wie Fr?hlingswind kitzeln unsere Ohrl?ppchen,
es weht der Duft von Wald in der Nacht
voll von sch?nen und klaren Tau,
Tragen die Freude der Liebe zu Ihnen, die ein Herz-Licht.
Meine Gedanken, die Vergangenheit Schmerzen und Schmerzen Verschlucken
wurde aktualisiert, spielen Sie Ihre h?bsche Melodien St?ck f?r St?ck.

Voll von den silbrig Melodien,
Mein Herz ist nun zu Fuß entlang der sch?nen Weg des Waldes, Schritt f?r Schritt.
Warum ist es erst jetzt, es weht ...


wie Tr?nen als Schwert der Nacht Schreie?

 

 

경상도 남자는 무뚜뚝하다 라고들 하는데 저는 보기좋게 그런 일반적인 인식을 깨어 버렸지요..하하,,사실 평소에 저는 무척 무뚜뚝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눈덮힌 숲길을 데이트하면서 읊어주었던 시를 종이에 낙서를 써서 고백하는 것 보다야 나의 작품이 담긴 번듯한 시집을 한 권 선물해 보세요,,,좀 근사하잖아요?

 

저는 현대의 시인으로 무슨 자기작품의 예술성을 위하여 은둔하며 골방에만 있는 직업이 달랑 '시인'하나만 있는 사람들이나 좌파사상들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상을 빙자, 폼잡는 이들보다 투철한 자기 전문직업도 있고 당당히 등단해  '시인' 타이틀이 있는 시인, 문우들을 좋아합니다. 둘다 제대로 하려면 보통일이 아니지요....

 

한 십수년 이상 쓰다보니 왠만한 문예지들에 실린 작품들만 보아도 작품수준들이 훤히 다 보입디다.  골방에만 있다고 좋은 작품이 탄생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나에게는 이런 점에 대해 시인 '릴케'가 좋은 스승이었습니다. 릴케의 말 "진정한 창작자는 가난을 모른다." 이것이 진실이라고 느끼며 생각합니다. 직업이 달랑 '시인' 하나인 작품들은 거의 90% 현학적인 척, 철학적인 척, 말꾸밈의 기법밖에 보이지 않더군요....

 

좀 괜찮은 것이 선생, 교수들의 작품이긴한데 역시 밥먹는 문제가 약간 안정되었기 때문이겠지요....하지만 작품 내용의 한계가 보입니다. 맨날 달,별,인격수양만 읽을 일 있습니까? 그래서 독자가 시를 외면하는 것입니다. 저는 좀 우리 문단이 사회적 전문직업을 가진 분들도 예술작품을 썼으면 합니다. 열심히 삶을 산것 자체가 좋은 시정신의 철학이요 내용일 수 있지 않습니까?

 

자기전공은 물론이고 남의 영역도 좀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바로 창의적 혁신적 사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내용을 무조건 억지로 융합해 물리 화학적으로 새창조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인식이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새창의적 발견, 창조적 기획을 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샘물같이 마르지 않는 내용의 시를 지속적으로 쓸려면 그 소재가 당연히 풍부해야 하고 저는 문학도 법학도 경제학도 사회학도 자유롭게 여행하며 여행한 내용이 다른 각 사상사들을 한 묶음으로 소개하는 작업이라는 뜻에서 "통합사상사"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슈퍼맨일수는 없고 또 제가 공부한 사상가의 딸랑이는 아니며  그렇다고 '맑은샘'이라는 저만의 존재가 없어지거나 저만의 철학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만의 철학이 더 달라지고 깊어지며 다양해지는 과정이지요...통합한다고 해서 제가 무엇이거나 무슨 학문적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며 한 학문의 사상사만 아는 것이 아니니 인접학문의 전문가는 어떤 생각을 하는 지도 궁금하지 않습니까? 

 

저는 직업이 인터뷰 전문 기자이기도 하지만 등단해서 이학문 저학문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예술가요 시인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같은 IT시대의 효율적인 장점이기도 합니다.  

 

산해천:

아하 그런 의미이군요...맑은샘님의 필봉이 무뎌졌다니요 , 아닙니다. 그냥 투박한 일상적인 넋두리 같은데 맑은샘님의 작품은 뚜렷한 내용과 주제가 강하고 훌륭한 내용이 많지요....저는 맑은샘님의 시가 갈수록 농익어감을 많이 느낍니다. 높이삽니다. 역시 그 비밀이 바로 그 투철한 연구와 多讀, 多作에 있었군요...요즈음도 책읽고 글쓸 시간이 계십니까? 직업도 남보다 바쁜 직업인데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250여편 이상의 중요 사상이 담긴 통합사상사라? 이것은 정말 문단이고 뭐고 출판계에서도 아직 출판도 못한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수십편도 아니고 250여편 이상의 고전이라? 마르크스의 ‘자본론’ 집필은 저리가라네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한편정도 독자들을 위해 소개해 주시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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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음악 : Serenade Franz Shubert

 

*클릭 :

 

http://www.youtube.com/watch?v=sSF7a9OcE_w&feature=player_embed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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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흙길을 걷자 : (자유주의 사상감상시(思想感想詩) 12. 제임스 뷰캐넌 편)

 

 

 

                                                            맑은 샘

 

참여의 어지러움을 모르는

 

 

노오랗게 철지난 은행잎들이 아직도 뒹군다

 

 

이미 썩어 없어져야할 은행잎들이

 

 

구린 냄새를 풍기며 새정치 썩은 생선 빈깡통을 유혹해

 

 

붉게 찢어진 깃발을 감춘 채

 

 

리바이어던이 되어 보려한다

 

 

페스트 바이러스를 옮기는 쥐들만

 

 

살판이 났는지

 

 

녀석들은 빈 깡통을 받아들이려

 

 

잠시 닫혔던 맨홀 하수구 뚜껑을 열었다

 

 

빈 깡통이 구멍으로 빠지고

 

 

음침한 하수구에서 구른 뒤

 

 

다시 맨홀 뚜껑을 열고 도로로 나오려 한다

 

 

맨홀 뚜껑이 다시 열리면

 

 

어떤 악취가 날까?

 

 

도둑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고 보니

 

 

닫혔다 열렸다 악취만 나는

 

 

맨홀 뚜껑만 생각난다

 

 

악취여 악취여 매케한 악취여

 

 

맨홀과 빈 깡통을 묻어 버리고

 

 

고양이를 구출해

 

 

깨끗하게 세탁하고 방울을 달아볼까?

 

 

하수구와 빈 깡통과 맨홀뚜껑이 아예 없는 길

 

 

가재 노니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깨끗한 황토 흙길을 걸어 보자

 

 

맑은 영혼(靈魂)의 길을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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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배경 : 

 

 

"보다 낳은 정치적 의사결정 위한 경제학의 주창자 제임스 뷰캐넌  

 

 

정부는 개인들의 자유를 지키는 도구가 되어야

 

 

 

James Buchanan

 

 

무엇이 좋은 정책인가

 

제임스 뷰캐넌(James Buchanan·1919~ )은 「公共선택(Public Choice) 이론」을 정립한 공로로 1986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공공선택 이론이란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을 말한다. 종전의 경제학자들은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암묵적으로 善意의 정부를 가정했다. 말하자면 정치적 과정에 대한 「낭만적 환상」을 지니고 있었다. 공공선택 이론은 이런 낭만적 환상을 부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사실을 설명해 주는 다음과 같은 우화가 있다. <두 사람의 가수가 로마 황제 앞에서 누가 더 노래를 잘 부르는지 판정을 받기로 했다. 첫 번째 가수가 노래를 마치자 황제는 두 번째 가수의 노래를 듣기도 전에 두 번째 가수에게 상을 내렸다. 

 

첫 번째 가수가 황제의 높은 음악적 감각에 미달했기 때문인데, 실은 두 번째 가수가 더 노래를 못 부르는 사람이었다.> 첫 번째 가수가 시장에서의 자발적 거래라면, 두 번째 가수는 정치적인 집단적 의사결정이다. 뷰캐넌은 경제학자들에게 이런 로마 황제의 愚를 범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현실 정치에 대해 좀더 냉철하게 살펴보라는 것이다. 마치 극대화해야 할 「객관적」인 사회후생함수(Social Welfare Function: 국민 경제생활의 소망 정도를 수치로 측정하는 방식─편집자 注)가 존재하는 듯이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고, 또 집단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정치인들이나 관료들도 일반 개인들과 다르지 않게 公共의 목적인 사회후생함수의 극대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비용과 혜택을 비교해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점을 인식하라는 것이다. 재정경제학자들은 무엇이 좋은 租稅정책인가, 혹은 어떤 것이 훌륭한 정부의 예산지출 정책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고민한다.

 

 ------(생략)------ 

 

 

"맑은샘 푸른숲 클럽 숲길 창작시방 작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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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샘:

 

이런 식으로 발표하고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아직 출판할 단계의 제가 쓴 원고는 아니구요.. 창작물인 제 창작사상감상시는 제가 썼기에 제게 저작권이 있지요...창작진행 순서는 우선 마음에 드는 사상가를 찾아 선택, 그에대한 에세이나 기록, 저서들을 찾아 연구하고 그 사상의 핵심을 오늘을 사는 제 시창작기법으로 바꾸어 창작시를 지어 내는데 저는 그 사상을 우리시대에 맞게 소화한 감흥으로 시를 창작합니다. 제 사상감상시의 요체는 이렇게 쓴 시나 첨부된 에세이에서 우리시대에 필요한 시사점을 찾아내는 점인데 오늘의 어떤 문제를 예를들어 그 사상가라면 어떻게 보고 생각했을까? 라는 것의 제시를 통해 그 감상으로인한 詩想을 창작물로 대리해내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시를 쓴 후, 꼭 시의 배경이나 주석을 붙여 그 사상가에 관한 저서나 기록, 에세이물을 독자들에게도 소개합니다. 제 창작시에다 이게 다 합쳐구성되어 발표되는데 제 사상감상시 자체의 창작물은 몰라도 줄밑에 첨가된 남의 글을 출판할 수는 없지요. 저는 이 경우 그 소개하는 첨가물의 출처를 꼭 밝혀줍니다. 이 소개 첨가물들도 나중 제가 직접 쓰고서 출판하면 문제는 없지만 지금은 통합사상사의 윤곽만 그려지고 있는 중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지금은 찾아본 자료를 소개하는 연재물이지만 곧 그시기가 도래할 것 같습니다.  

 

독자들의 반응이 꽤 좋더군요...하하.. 십여년전 처음에는 애들 영어와 대입논술을 가르치다보니 서울대 논술 선정 도서의 통합사상이 50여편이었습니다. 대개 필수적인 법,경제,사회사상만 50여편인데 저의 신좌익사상비판 연재물 20여편과 자유경제원에서 발표한 자유주의 사상가 열전 20여편을 더해도 90여편이지요... 게다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잘아는 철학사나 문학사로서는 해당전문 학문만을 위한 학문이지 한 학문의 시각으로만 현대를 조명하고 시사문제를 다루기에는 한참 빈약하다는 것을 저는 오래전부터 많이 느꼈습니다.

 

또 사회학, 법학, 경제학, 정치학을 대학 졸업후에도 계속 공부해 본 제가 알기로 각 사상사들이 따로 놀고 있어 학제간 통합적 시각을 요구하기도 하는 새시대에는 좀 부족하였습니다. 예를들면 갑자기 북한이 붕괴될 조짐이 보인다 할 때 대한민국 주도의 자유주의 통일을 생각해 보면 북한을 경제적으로만 보겠습니까?

 

정치외교적 시각으로만 보겠습니까? 군사적 시각으로만 보겠습니까? 아니면 남북한의 헌법적 시각으로만 북한을 보겠습니까? 또 북한 사회를 사회적, 문화적으로 보는 시각도 당연히 필요합니다. 즉, 우리에게는 통합적 고찰의 시각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왕 등단시인도 되었고 좌편향된 참여시가 아니라 독특하게 자유주의 입장에서 “사상감상시”라는 장르를 만들어 우리 문단을 좀 풍요롭게 하는데 일조를 하고 싶었습니다. 또 고전을 연구하다보니 고대, 중세, 근대의 대사상가들이 정치가, 법률가, 사회학자, 경제학자일 뿐만 아니라 유럽 각시대 각문단의 위대한 문인이었고 시인, 소설가, 수필가였습니다.

 

초기 노벨문학상 수상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와 문학이 인간의 언어예술인 이상 그 무엇도 다 표현할 수 있는데 현대의 전공이 갈라지는 전문학문 분야면 몰라도 자유로운 시창작을 추구하는 시인이라면 문학따로, 철학따로, 사회,정치,경제, 법사상 따로만으로 공부하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지 않나요?

 

일반인들이 고전원전이나 영문에세이를 읽기는 어렵습니다만 저는 일반인이나 입시생들을 위해 쓰고 있고 요즈음은 서울대선정 고전50여편을 모출판사에서 어린 중학생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화로 만들어 출판했더군요...저는 매우 훌륭하고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전사상들은 진정 인류의 지혜입니다.

 

산해천:

 

그렇군요. 맞습니다. 맑은샘님의 글을 읽다보면, 저희의 대학시절 보다 요즈음 젊은 작품들을 볼때 읽을거리가 없어요. 우리문단이 얼마나 무지하고 게으른지 대량으로 공부하지않는 등단작가들만 양산되고 저도 많은 문제들을 느낍니다. 시집이 안팔리는 이유가 독자들 탓이 아닙니다. 읽을거리가 있어야 읽을 것 아닙니까? 저도 많은 반성을 해봅니다.

 

그런 면에서 맑은샘님의 집필과 고전소개 작업은 참 훌륭한 작업이라고 생각됩니다. 무엇보다 쓸거리가 많아지면 샘물이 마르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 근현대에 걸쳐 사상시라고 뿌리를 찾아 본다면 어디서부터 조명하는 것이 맞을까요?

 

아무래도 일제시대부터 민주화 항쟁시절의 문단이라고 보면 될텐데 맑은샘님이 보여주는 작업은 이 시대를 멀리 뛰어 넘는 듯 합니다. 정말 깊이 있고 넓다는 생각이 듭니다마는... 

 

 

맑은샘;

 

아이고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과찬이십니다. 형님이야 서정시와 미술평론에는 이미 전문가이신데 우선이런 작업은 저같은 사상시쪽은 당연히 해야하는 작업이고 작가,시인 본인에게도 필요한 작업입니다. 그러나 저는 서정시도 절대 무시하지 않습니다. 성의없는 한편의 사상낙서보다 힘겹고 피같은 체험이 담기거나 탄생시킨 한 편의 아름다운 서정시는 역시 사람의 정서에 깊은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저는 형님으로부터 꼭 좋은 서정시 기법을 배워야겠습니다. 오늘 한잔은 제가 삽니다. 하하.. 우리나라의 사상시의 원형을 찾는다면 반만년의 역사속에서의 전통 중요사상도 사상이지만 현대 서구의 지식이 유입되던 때라고 보면 될 것 같은데 사실 문학사적으로 제가볼 때 ‘프롤레타리아 문학, 카프문학’이 본격적으로 들어올 때라고 봅니다.

 

그전에는 특이하게 사회과학적 사상시라고는 볼만한 것이 없거든요. 문제는 지금보면 매우 유치하지만 이들 문학운동의 근본사상이 ‘유물론 마르크스주의’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4.19이후로 요즈음까지는 탈을 살짝 바꾸어 ‘참여문학’이 활개를 치고 있는데 이것은 샤르트르의 영향입니다. 오늘 이야기를 다하려면 밤을 새야 할 것이고 사상자체의 문제는 제가 전에 쓴 맑은샘의 신좌익 사상비판 연재물들 중에서 마르크스와 샤르트르 편을 참조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들의 문학적 문제는 간단히 말해서 사상시는 사상시인데 프롤레타리아문학, 카프문학, 참여문학 모두 마르크스와 샤르트르 사상의 특정 이데올로기를 추종하고 비판, 검토없이 베낀 문학운동이다보니 나름대로 예술적, 미학적 기능이 있기는 하지만 철저하게 계급중심적이고 좌파정치 목적적이라는 것입니다.

 

요즈음의 민중문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60년대 실패한 프랑스 좌파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가 신좌익사상비판 연재물을 처음 발표한 것입니다. 당시 노무현정권 시절 문단에서는 제가 눈에 가시더군요...이번 대선 때 그 떨거지 모 민중미술가의 행태를 보세요,,,그게 예술입니까?   쓰레기이지....

 

개념적 사상적 노선이 뚜렷해 특징을 가진 듯 하지만 인간의 한없는 자유로운 예술적,미학적 서정을 철저히 두 이데올로기의 정치목적에 종속시켜 예술자체의 존재가치와 미학적 특성을 무력화시키는 한계를 가지기에 예술정신 자체를 철저히 타락시키고 노예화시키는 천박성을 띄게되므로  

 

①현실감각의 천박성과 문예 비평정신의 결여 ②예술본령에서의 이탈 ③예술적 형상성의 조악등이 지적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상공부를 깊이, 넓게하면 할수록 저는 이들 사상이 얼마나 유치하고 쓸모없는 공상이며 결과가 악마인지 철저히 느낀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인간사회의 문제야 많지만 인간의 생각으로 인간의 사회를 오만하며 공학적으로만 어설프게 제어하고 재단한다는 사고자체가 얼마나 위험하고 더 피곤한지 저는 나이가들수록 더 처절해집니다.

 

젊은 청춘의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연구와 공부를 더하면 할수록 어린시절 사상서 책 한권 달랑 읽고 세상을 향하여 떠드는 일이 얼마나 유치하고 바보스러운지 깨달아야 하는데  저는 사상시를 쓰는 사람일수록 다른 쟝르를 무시하거나 오만하게 볼 것이 아니라 겸손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희도 어리고 젊은 시대, 386들이 거의 대부분 원전도 아니고 달랑 일본 번역판 마르크스를 읽고 얼마나 거만하고 오만했습니까?

 

저의 경우는 고등학교때 아버님이 경제학을 전공하셨던 분이라 집에 원전이 있었던 고로 '잉여가치론, 과 자본론을 읽었었는데  대학입학 당시 데모를 하면서도 항상 저만의 정신적 분열과 의구심이 깊이 들었었지요.  아버님은 막스베버, 사무엘슨, 하이예크책이 많으셨습니다. 아버님은 케인지안이기도 하고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하셨는데 성장론자였지요.

 

고등학교때 아버님에게 경제이론을 묻고 논쟁하던 일이 생각납니다. 한평생 섬유사업을 하신 분인데 그때 저는 마르크스를 처음 이해하기 시작할 때였으니 괴리가 많았지요....아버님의 조언은 나중 남들보다 훨씬 일찌감치, 대학졸업 하자마자 PD계열의 사상노선을 과감하게 버릴수 있었던 계기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천만다행이고 하늘의 축복입니다. 벌써 20여년이 흘러갔군요...

 

1980년대 국내에서  김수행 교수가 런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서울대에서 교수생활을 하며 출판한 자본론이 한글판 최초였으니 당시 저희때는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지요.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첫 출간한 때가 1867년이고 제가 태어난 때가 1967년이니 꼭 100년 전의 어떤 점에서는 선생이고 원숭이 사상이기는 합니다.

 

제가 원숭이라고 부르는 것은 멍청하게 유물론에만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고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이 점이 인류 사상들 중에서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큰 맹점, 오류의 점이라고 저는 원전을  처음볼 때나 지금이나 같은 생각을 합니다. 

 

저는 세계적인 마르크스 연구자로 컬럼비아 대학의 '로버트 터커 박사'를 들고 있으며 우리시대의 마르크스 연구자로는 저와 뉴라이트를 처음 설계한 황성준 박사 정도라고 봅니다. 황박사가 서울대 정치학과 재학시와 PD운동을 하다 유럽의 마르크스주의자들 보다 더 사회주의를 깊이 연구하고자 동유럽으로 구소련으로 들어가서 KGB에 영향을 받은 정말 깊이있는 마르크스주의자였습니다.

 

하지만 황형은 구소련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하는 조교생활을 시작하자 마자 구소련과 동유럽이 무너지는 사태를 몸소겪고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겪고 전향해 다시 모교에서 국제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아 저처럼 자유주의 전도사가 되었지요...

 

주체사상파는 무식한 북한 아류이고 나머지는 늙으나 젊으나 일본 번역판 베껴무스 딸랑이들일 뿐입니다. 주체사상의 설계자 북한의 故황장엽 선생이 남한으로 망명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남한의 주사파 대부 강철서신의 김영환씨도 우리 자유주의 진영으로 전향한 지가 오래됩니다. 지금은 북한에 자유를 전파할 지식인 중 최선봉에 서 있고 북한민주화 운동에 매진하고 있지 않습니까? 

 

모르는 사람이 좌파들의 글들을 읽어보면 처음에는 "혹"하고 인기도 있고 실제 그쪽도 젊은 글들은 심성이 매우 아름다운 작품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이 읽어보면 작가들이 점점 더 무슨 시심(詩心)이 비인격, 열등감, 증오가 점철된 ,다중인격의 걸레들 뿐입니다. 저는  갈수록 그렇게 느낍니다.

 

이의 영향을 받았는지 대선전 "나꼼수"가 탄생하는 일들과 그 행태들을 보십시오...이들이 무슨 국가와 민족문화를 설계합니까?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입니다. ^*^  저희때에도 경제학은 케인지안 뿐이었습니다. 간혹 슘페터나 다른 금융이론이 소개될 정도로 알고 있고 온통 마르크스가 유행병이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지성계가 그때 얼마나 열악했습니까?  저는 맑고 참신한 글로칼(글로벌+래디칼) '민족적 자유주의'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류문화를 보십시오. 그것은 해방 후 세계각지에 그동안 뻗어나간 미주동포, 유럽동포, 중국으로 진출하는 우리의 한상(韓商)들, 지구촌 각지의 우리 동포들의 힘도 큽니다. 소년시절 제 어느 선생님이 이스라엘 젊은이를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아랍과 전쟁이 났는데 하버드의 어느 이스라엘 젊은이는 당장 총들고 전투하러 고국으로 달려가는데 아랍 젊은이는 그냥 공부를 하더랍니다.

 

교수가 아랍 젊은이에게 조국의 전쟁에 대해서 묻자 그는 '자기는 관심없다'고 말하더랍니다. 제가 잠깐 보스턴에 있었을 때, 대한민국이 위기에 봉착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물었더니 우리 젊은이들도 뉴욕의 동포들도 이스라엘 젊은이와 같은 심정임을 토로한 적이 있습니다.

 

아니 우리 동포들과 해외의 젊은이들은 이스라엘 보다 더한 애국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잘만 활용해도 지구 최고의 "글로벌 한민족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민족은 지금 글로벌 시대를 살아도 해외에서 어느민족보다 민족유대가 강한 민족입니다.

 

저는 해외에 나갈 때 마다 그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저는 젊은 청춘들에게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이제는 정말 마르크스 책들은 굵기만 굵고 쓰잘데 없습니다. 정 호기심이 나거나 비판을 위하고 싶은 친구들은 한번 읽고 버릴 책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문제들을 잘보고 밝은 미래를 설계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직도 80년대 사고에 머물러있는 제또래의 몇몇 친구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한심하고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아직도 문학작품으로써 좌파쪽의 글이 젊은이들에게 '혹'하고 잘팔리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 소설이라는 것이 상상과 허구의 세계 아닙니까?  좌파사상의 맹점과 해악을 지적하고 독자들의 정신적 고충을 긁어주는 품격있고 좋은 작품들의 출현도 저는 기대하는데 저는 시를 쓰는 입장에서는 시는 소설과는 또 다른 측면이 있어서 제 겪은 철학의 경험으로 볼때 제 양심을 속일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시인은 쟝르를 초월해 정말 시인자신의 인격과 정서, 서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인간이기에 시인도 오욕칠정이 있지만 잘 다스려야 하고 무엇보다 시인이 갖추어야할 중요한 자질 중에 하나가 가장 기본적인 시심(詩心  : 시를 짓는 근원적인 시인의 마음상태)이라고 봅니다. 어릴적 엄청난 문제아가 이런 말을 하니 거참 ^*^, 무척 쑥스럽네요...

 

하지만 문제아가 문제우량아(文製優梁兒)가 될수도 있고 그도 본인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이를 강조하는 이유는 사상시쪽도 비판도 비판이지만 공부나 연구후 그 시상(詩想) 자체의 감흥이 서정시의 형태로 쓰이기도 하기 때문이며 비판도 확실한 대안있는 비판, 누구를 위한, 개선의 여지를 주는 사랑이 담긴 지적이나 회초리가  되어야지 그게 아니어서 사상시를 쓰는 사람이 잘못되면 타인의 영혼을 말살하는 정신적 살인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엄청난 충격을 겪으며 전향을했던 자유로운 정신적 , 사상적 선택으로 자유주의나 다른 자기만의 철학을 쌓아가든 자신에게 당당하고 꼿꼿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훌륭한 거목(巨木)들이 될 수 있고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일들도 우리 지성계가 열악했으며 그나마 경제적, 문화적으로 압축고도 성장을 하면서 겪었던 일이지만 지금 저는 우리도 문화,예술의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 시인들도 문화예술인들도 선배들의 고생스럽고 훌륭한 업적들을 이어받으면서 얼마나 치열하게 더욱 정진해야 하겠습니까? 실제 저도  등단후 시로는 문학상들을 받아 보아서 첫번점은 찍은 것 같고 정말 구체적으로 더 겸허히 노력하여 진정 제대로된 소설로 미주나 유럽문화 출판시장을 진출할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스스로 영,불,독어 외국어를 꾸준히 연마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에도 우리사회의 개선을 위해서 이들 이외에 배울만한 좋은 사상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무한한 예술의 자유창작의지가 결과가 악마인 특정하게 유치찬란한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면 되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썩은 도그마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고귀한 자유예술정신을 악용하는 전형입니다. 김지하 시인이 왜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 만드는데 일조했겠습니까? 늙어서 치매가 걸렸다구요? 천만에 만만에 말씀입니다.

 

제가 전에 비판한 자신들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신좌파사상가 “아드르노와 호르크하이머”도 “神의 우상을 부수고 등장한 인간의 이성이 새하나님이 되어 인간의 정신인 자유를 억압한다. 이성을 새하나님으로 만들지 말라.. 이것의 우상도 부수어라”라고 설파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자기들 사상으로도 김정일, 김정은 독재는 질타하고 부수어야지요..

 

귀족노조의 전제적 정치행태, 통진당의 부정선거의 행태, 애들 배굶기고 실패한 무상급식, 찌절한 전교조의 편협한 역사왜곡, 계급정치화 문제들 부수어야 맞지 않나요? 민족 팔아가며 무슨 되먹지도 못한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졸스런 문화권력, 이제는 썩어빠진 정신적 철통 밥그릇 부수어야 맞지 않나요?

 

김지하 시인의 말씀처럼 자라나는 새싹을 가로막는 것은 물론 숲에서 아무 쓸모없는 쑥부쟁이 맞습니다.“ 아무런 사상적, 구체적 정책적 대안과 철학적 지조도 없이 새정치 팔면서 나선 안철수 교수 메타포로 표현하면 ”허황한 개념이거나 엄밀하게는 개념없는 깡통“ 아닌가요?

 

물론 저는 아드르노와 호르크하이머도 기본적 사상본질이 변증법적 유물론이라 그것을 비판했기에 하는 말입니다. 이들은 자기들 말대로 아무리 진보해도 근본적인 통찰과 사회적 대안이 항상 없습니다. 너무 무책임하지요..그것이 이번 대선을 통해 극명하게 나타났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고 봅니다.

 

시창작에 있어 초기에 쉬르레알리즘을 공부한 저로서는 그 무한한 창작의 공상과 상상의 자유세계를 정치경제 사상적으로는 하이예크를 비롯한 ‘자유주의 사상들’에서 찾았습니다. 자유주의 사상들 하나하나가 유럽에서 미국에서 그전의 철저한 사상사적 고찰과 경제적 반성에서 탄생한 것들입니다.

 

이런 점들이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자유경제원이 처음이니까 1990년대 초반이니 얼마나 우리 지성계가 열악합니까? 자유,자유하니까 사람들이 우파든 좌파든 진정으로 ‘자유주의 사상’을 잘 모르는데 자유주의 사상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저멀리 보이는 숲의 나무들이 자유롭게도 뿌리가 공간점유 소유권을 가지며 물과 빛의 광합성 경제선택생활을 하며 살아가 듯 가장 자연스러우며 친환경적인 천부인권의 현대적 사상입니다.

 

제가 소개한 20여편의 자유주의 사상들의 핵심들이 바로 최초로 나찌즘, 파시즘, 군국주의, 전체주의, 특히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본질을 파악 그 단점, 맹점들을 맹렬히 지적하고 분쇄한 사상들 아닙니까? 제가 쉬르레알리즘의 철학을 버리고 그 창작기법만 빌어 쓰는 이유도 랭보까지는 모르겠으나 바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지만 ‘파블로네루다’ 같은 칠레의 찌절한 녀석이 사회주의자이고 사회주의에 이용당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우리 좌파는 제대로된 좌파도 아니고 대부분이 짜깁기 베껴무스들 아닙니까? 초현실주의를 떠드는 인간들도 원전도 읽어보지 않고 어디서 줒어듣고 왈왈거리는 군상들뿐이라 저는 인정하지도 않지만 말입니다. 이런 점들에 대하여 무엇이 명품인지 짝퉁인지 구분과 선택은 어려운 말 할필요없이 간단합니다.

 

북한인권,기아문제, 핵문제를 보세요...지금 좌파들은 꿀먹은 벙어리입니다. 아는 척 하지만 쉬르를 떠드는 문학교수가 자기 시를 쓰면서 자작곡을 작곡하는 능력과 실력이 있습니까?.. 남의 책이야 누구나 읽지요,, 하지만 이런 점도 사상의 본질을 스스로 캐보지 않아 비판능력이 없고 쉬르기법으로 多作을 하지 않았기에 그런 것입니다.

 

사상감상시에서 저의 사상연재물 250여편 구상은 저도 기가 질리고 처음에는 저도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편씩 꾸준히 쓰거나 소개하며 글이 모이다보니 이룰 수 있겠더군요.. 저의 경우 평소에는 직업 때문에 쓰지 못하고 토,일요일 휴일에 평균 한편씩 쓰거나 연재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벌써 고대부터 근대초까지 왔더군요..

 

철학사나 문학사도 예전 읽어보기는 했지만 이 통합사상사가 끝나면 덧붙일것 같습니다. 그러면 “<철학,문학,정치학,경제학,사회학,법학 통합사상사>” 로 한 300여편이 될 것 같은데 앞으로 한 일,이년이면 제가 직접 초고를 쓸수 있는 윤곽이 완성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완성되면 사회에서의 전문경험을 얹어 진짜 위대한 고전사상가들처럼 크고 훌륭하게 내용있는 저만의 창작물인 드라마나 사상소설도 쓰고 싶은 욕심이 납니다. 서정시를 좋아하시는 형님께서 후배들에게 하실 말씀도 계시다면 저도 듣고 싶군요

 

산해천:

 

공감합니다. 대단하십니다. 후배지만 존경스럽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엄회장님 덕분에 요즈음 애독자가 좀 늘었다하시더군요. 저도 바쁜 시간이외 한가로운 시간에 시사 잡지를 읽느니 맑은샘님의 연재물 읽기가 더 즐겁습니다. 오늘 이곳에 와보니 술맛도 좋고 맑은샘님 서재에서 글향기가 가득합니다.

 

저는 “시를 쓰고자 한다면 어떤 시를 쓸까하는 의문에 객관적으로 시의 종류를 구분짖는 일에 앞서기보다 자기중심적인 세계를 먼저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맑은샘님의 창작노력을 높이 삽니다. 이러한 노력이 초보적이면서도 시인의 궁극적인 시를 쓰기위한 가장 근본이 되는 바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아직 나의 세계를 만들지 못했다고 생각하므로 항상 겸허한 마음으로 나의 주어진 환경들과 부딪치며 끊임없이 나의 세계를 구축하여야 한다고 여깁니다.

 

따라서 시를 쓴다는 것은 머나먼 여정을 떠나는 혼자만의 일인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렇게 작심을 하면 시를 쓰는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나의 시에 접하는 독자들에 대한 의식에서 나오는 두려움 같은 시심을 이루는데 방해요소를 어느 정도는 걷어낼 수 있었습니다. 정제된 글에 몰입하기 위한 시창작 당시에 조건이라고 굳이 말하고 싶습니다.

 

시가 읽혀지는 매체인 책이나 여러 가지 미디어는 매체의 특징에 따라서 느낌이 다르게 형성될 수 있지만, 결국엔 시가 담아내는 메타포는 독자에게 공통적으로 걸러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의 시대에서 인터넷 시대로 인터넷 시대에서 주머니 전자책 시대로 그때마다 매체는 변화하고 있지만, 시에 대한 사상과 표현되는 뜻은 계속 이어져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릇 시인, 작가라면 변화하는 시대에 편승하여 매체를 최대한 이용하려고 하는 행위가 언제나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부러 첨단의 매체들의 장점을 부정하고 대중이나 독자들을 외면하는 편견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책으로 읽어주는 독자는 점점 줄어들고 스마트폰이나 작은 넷북이 대세인 시대에 어찌보면 작가들의 글들을 보고 듣고 감상할 수 있는 일들을 만들어 내는 일 또한 작가들의 일이기도 합니다. 인터넷 시력이 10년 차로 접어들고 있는데, 저도 그동안 훌륭한 시인들과 옛 시인들의 깊이있는 작품들을 접할 수 있으면서 시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발로 쓰는 시, 마음으로 쓰는 시, 펜으로 쓰는 시, 자판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올리는 시, 위성을 통하여 시를 올리는 스마트폰, 커뮤니티를 통하여 전달하는 시, 등등 각기 다르지만 변위된 매체를 이용하여 문학이 통합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며, 이에 따라서 대중과 독자들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청소년들이 책을 보고 공부하며 시를 감상하고 시의 뜻을 헤아려야 하는 것이 단순히 시험 범위에 국한하는 사장된 문학이 되게 하지 말고, 새로이 등장하는 매체를 이용하여 확장하는 문학을 대중에게 알려줄 이유가 충분히 있다고 여겨집니다.

 

문학, 미술, 음악이 우리 생활속에서 통합적으로 동시적이고, 다발적이며, 확산적이고 일체의 공감을 부여하고, 사회적 이슈를 생산하기도 하며 신선한 작가와 작품을 탄생시키기는 시대를 접하고 있습니다.

 

대세인 흐름에는 항시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며 변태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에 더욱이 부정적인 흐름으로 가는 추세가 있다면 막고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사회정화적인 역할을 하기도 해야 하는 일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봅니다.  눈 덮힌 경치가 기가막히는군요...자주와도 될까요? 자 밖에 나가 우리 시나 한 수씩 지어 보며 마실까요?

 

맑은샘:

훌륭한 견해이십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이제 제 졸시와 졸글들을 애독해 주시는 분들이 점점 늘어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언제나 환영입니다. 자 그리해 볼까요? 시제를 “마음의 길”로 해 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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立春大吉

                             산해천

아련히

밤에 보았던

푸른 시절

 

아침까지

방망이질하는 가슴이

저기

살같이 뛰어

봄 하늘

진달래 먹는 산에 있오

 

어슬렁 어슬렁

개꽃

게우는 한철 보이오?

 

손톱새

가시

찔려

쌔빨간 몽울이

펑펑 솟은 밤

 

연인 발소리 뒤섞이는

나즈막한 오솔길에

어랑어랑 어울려

 

겨우내 얼어붙은

지느러미가

멀리 하늘에 풀어지고

곤두박질하는

봄 기운이 들어오고 있오

 

그대

뜰 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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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의 꽃

 

                                맑은 샘

 

사악(邪惡)한 망토가 걷혀지고

가면(假面)이 거두워질 때

노래 부르리

독수리들의 눈에

더러운 민주로마의 시체가

널부러져 있네

불멸(不滅)의 정점(頂點)이 오는

아름다운 영광(榮光)의 어느날

나 고향가는 편안함에 묻히리

영혼(靈魂)의 침탈(侵奪)을 결코 묵과할 수 없어

프로스트의 시를 베껴 부르는 간계(奸計)의 패배자들이여 !

마지막 그날까지

온몸, 정신다해 쓰러져 죽더라도

내 사랑 푸른자유 위해

까맣게 타더라도

결코 숭고한 인생과 영혼(靈魂) 내어줄 수 없어

나 언젠가 불멸(不滅)의 정점(頂點)에서

포연 자욱한 안개속 까마귀들 날아도

한 송이 들꽃으로 피빛붉게 피어 

가슴 시리도록 푸른 노래 머금고

내 고향 편히 묻히리

 

 

Flower in the Battleground

 

The evil cloaks dispelled and

When the mask dispelled

I will sing a blue freedom song

It was dirty democratic Rome's corpse in the eyes of the eagle

To the peak of Immortality comes beautiful one day of glory

I'm going back home

I can't pass pillage of soul

Loser ! you dared to call the poetry of Frost copied

To the last day though I am die

My love for blue free

Although my body burn black

I never give my sublime aspiration and life

One day in the midst of an immortal

Althought, crow flies in a battlefield dense thick with gun smoke

I am get to be a wild flower of red

My chest ache because, I have blue song

I will be buried the comfort of my own home

 

 

 Fleur dans le champ de bataille

 

Les mauvaises manteaux dissip?s et
Lorsque le masque dissip?
Je vais chanter une chanson de libert? bleu
Il ?tait sale cadavre de Rome d?mocratique aux yeux de l'aigle
Pour le sommet de l'immortalit? est beau jour de gloire
Je vais ? la maison
Je ne peux pas passer le pillage de l'?me
Perdant! vous avez os? appeler la po?sie de gel copi?
Pour le dernier jour que je meurs
Mon amour pour le bleu libre
Bien que mon corps ? br?ler noir

Je ne donne jamais mon aspiration et de la vie sublime
Un jour, au milieu d'un immortel
Althought, ? vol d'oiseau dans un champ de bataille ?pais et dense avec un pistolet fum?e
Je peux ?tre une fleur sauvage de rouge    

Mon mal au cœur parce que, je n'ai chanson bleue
Je serai enterr? le confort de ma propre ma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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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음악 : Renato Bruson-"Di Provenza il mar, il suol", 1976

"Di Provenza il mar, il suol", Opera, La Traviata, Composer, Giuseppe Verdi,

*클릭 : https://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60Oz4n1zo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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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담자>

 

*필명 : 山해川 / 본명: 전재표(全宰杓) / 한국신춘문예 시부문 신인작품상으로 등단/

1961년생/ 現在 소호아트갤러리 / (www.sohoartgallery.net) 대표 / 한국신춘문예 시부문 등단,  現스포츠 닷컴 문화부장:

 


<맑은샘 프로필>

 

*성별 : 남(男)

*본명 : 권병찬

*필명 : 맑은샘

*생년 : 1967년 생

*본적 : 부산출생

*하는 일 : 언론인, 시인, 작가

 

*경력, 직업 :  부산 내성고 3회 졸

                 1991년 부산대 졸

                 World bank publishing Group .seoul agent

                  (전) 한국IBM, SSO(software service organization)개발팀

                  (전) 한국일보, 미디어기획팀 차장,

                                     기획특집팀 차장                 

                  (전) 서울경제, 특집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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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한국일보, 정책특집팀 부장

                  (현) 스포츠닷컴 국제,정치,경제부 객원기자

                  (현) <사>대한민국 장인(匠人)예술협회 이사

                  (현) 한국신춘문예협회 정회원

                  (현) 문학창작카페 "맑은샘 푸른숲 포엠피아" 대표

                  (현) 미'캘리포니아 얼바인시 초청 장인(匠人:Master)예술작가,시인

                                                            --시학,시창작 교수          

                 

                   

시력 : 17년,*초기: (故 조태일 언론인,시인 -시 창작강의)로 詩作입문,  *습작기 : 故 김봉운 시인(중앙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등단)의 프랑스 surrealism사사 ,*"한국신춘문예" (겨울숲길, 눈위의 발자욱, 피톤치드 향)으로 시부문 당선, 등단 

              *창작기- 시인 라이너 쿤체(Riner Kunze 독일)-시창작 사사, 

                         소설가 론로젤(Ron Rozelle, 미국)-소설쓰기 사사 

                            

 *맑은샘 작품 : *기사, 언론칼럼(정치,경제사상 칼럼) - 맑은샘의 신 좌익사상 비판

                     연작 외 다수    

                    *문예 에세이-똘주릉 할아버지 이야기( 새로운 문학 사상사를 위한

                        문학,철학,정치학,경제학,인류학,사회학, 법학 인문통합사상사

                           연작 연재중 ) 

                    *문예에세이 - 맑은샘의 시 창작 강의 1강-39강 발표.

                    *시 - 겨울숲길, 혈서의 회고, 지식인론(之食人論), 눈위의 발자욱,

                           피톤치드 향 , 타란튤라, 어린 콘도르에게, 푸른밤에 물으리,

                           빤스가 날아간다  외 다수

                 *단편소설- (예술성장소설) '샤론의 연주' 발표  

                               (사회비평소설) '하늘의 DNA' 연재중  

 

상훈:    *한국신춘문예(韓國新春文藝)협회", "<사>대한민국 장인예술(匠人藝術)협회,                   한국다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대한민국문화예술발전진흥회, 무궁화애국회

                  주관 "문학대상(文學大賞)"수상

 

           *외교부 후원, 재외동포재단, 미주한인재단, 세계한인재단

              (World korean foundation)주관

               "2013 세계한인大賞(문학-시)부문大賞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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