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히너 작 '당통의 죽음' 11월 개막..소리꾼 이자람 등 출연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 예술가는 생명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루마니아 출신 연출가 가보 톰파(56)가 게오르크 뷔히너(1813-1837)의 희곡 '당통의 죽음'(Dantons Tod, 1835)으로 오는 11월 한국 관객을 만난다.
희곡 '레옹스와 레나', '보이첵', 소설 '렌츠' 등 네 편의 작품만을 남긴 채 스물넷의 나이에 요절한 독일 작가 뷔히너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다.
공연을 6개월여를 앞두고 출연배우의 오디션 등을 위해 한국을 찾은 톰파를 최근 서울 그랜드앰베서더호텔에서 만났다.
스물한 살 때 연극 연출가로 데뷔한 후 지금까지 수많은 작품을 거쳐왔지만, 그가 '당통의 죽음'을 무대화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통의 죽음'은 뷔히너의 다른 작품에 비해 연극으로 만들어진 사례가 적어요. 저 역시 스무 살 대학생 시절 희곡을 읽었지만, 그 후 이 작품과의 결정적인 연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해 한국에서 온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저와 함께 이 희곡을 무대화하고 싶다는 요청이었죠."
루마니아 클루지 헝가리어 극단의 예술감독인 톰파는 영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과 미국 등에서 작품 160여 편의 제작과 연출에 참여했다.
유럽을 주 활동 무대로 하는 그가 이번 제안을 망설임 없이 받아들인 것은 2011년 클루지 헝가리어 극단과 함께 내한해 '리처드 3세'를 공연한 경험이 주효했다고 했다. 한국 관객 특유의 섬세한 감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그다.
"다른 문화권에서, 환경에서 작품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도전이기도 합니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작업이죠. 하지만, 독일 희곡에 루마니아 출신인 제가 한국 배우·스태프와 함께 어떤 연극을 만들어 낼지 저 자신도 매우 기대가 됐습니다."
'당통의 죽음'의 연출에서 톰파는 한국 프로덕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고 했다. 소리꾼 이자람을 극 중 주요 인물로 배치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자람은 등장인물이자 내레이터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녀의 판소리는 작품에 또 다른 생명력을 불어넣을 겁니다.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토대로 한 '사천가', '억척가' 등을 통해 이미 서양 희곡과 판소리의 어울림을 확인했고, 이번 작품에서도 한국전통예술이 뷔히너 희곡과 성공적으로 조우하리라 봅니다."
'당통의 죽음'은 프랑스 혁명 마지막 국면의 공포 정치 시기를 배경으로, 당시 젊은 혁명가들의 사상적 고뇌를 그린 작품이다. 실존인물인 조르주 당통과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의 대립을 극화해 '혁명 영웅'의 이면과 혁명이 동반하는 학살·폭력에 대한 성찰을 던진다.
이번 연극에도 이러한 희곡 메시지의 정수가 포함된다.
공포를 수단으로 자유를 지키는 과정에서 자유가 부정되는 역설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자유를 이상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역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신의 자유를 지키려다 다른 사람의 자유를 희생하는 경우를 자주 보죠."
프랑스 혁명 그 자체를 논하는 자리는 아니라고 했다. 극의 배경을 현대로 바꾸고 희곡에 담긴 방대한 역사 관련 정보를 덜어낸 것도 이 때문이다.
"인물의 이름은 그대로 살리지만, 좀 더 보편적인 배경에서 극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특정 역사나 사건을 논하는 대신 인물의 관계에 주목하는 겁니다."
짧은 방한 일정 속에서 그는 100여 명 배우의 면접을 치렀다. 한 사람당 할애한 시간이 7분 정도일 만큼 정신없이 진행된 오디션이었다. 그래도 함께할 14명의 보석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6일 본국으로 돌아가는 그는 오는 9월 한국에 다시 온다.
"작품은 지금도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한국 배우·스태프의 에너지가 참 좋기에 저 자신도 매우 기대하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당통의 죽음' = 예술의전당 제작, 11월2일-17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5/05 11:55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