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디지털포럼 참석차 방한
(서울=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 스위스 출신 영국 작가 알랭 드 보통이 건넨 명함엔 'THE SCHOOL OF LIFE'(인생학교) 창립자라고 적혀 있었다. '인생학교'는 살면서 부닥치는 수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통이 지인들과 2008년 런던 마치몬트 거리에 세운 학교다.
서울디지털포럼 참석차 방한한 보통을 2일 저녁 만났다. 보통은 "일상의 평범하고 사소한 문제에서 시작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한국에도 꼭 '인생학교'를 열고 싶다"고 말했다.
보통은 '더 나은 삶'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으로 글을 쓴다고 했지만 시중의 자기계발서에 대해서는 고개를 저었다. "인생엔 한 가지 해법이 있을 수 없는데 자기계발서는 즉각적인 해법을 제시한다"는 게 보통의 지적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 3일 기조강연 내용을 간단히 소개한다면.
▲교육에 대한 것이다. 지금 컴퓨터 같은 기술적 교육은 굉장히 잘되고 있지만 관계나 가족, 삶의 의미, 우울, 죽음과 같이 어떻게 살 것인가와 관련된 소프트한 교육은 잘되지 않고 있다. 신앙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준 시대가 지나가면서 삶의 방향성이 흐려진 것이다.
나는 문화에 답이 있다고 본다. 문화는 문학과 사진과 심리학 같은 모든 것을 칭한다. 문화를 엔터테인먼트의 일종으로 보거나 주말에 즐기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문화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기조강연에서는 이런 얘기를 하려고 한다.
-- 런던에 '인생학교'를 연 지 6년째다. 시민의 호응이 높은 이유는 뭘까.
▲오늘날 같은 시대에 잘 맞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는 개인의 기대치가 높다. 일을 해야 하지만 재미도 있어야 한다. 괜찮은 사람을 만나는 데 그치지 않고 환상적인 사람을 만나서 영원한 사랑을 하고 싶어한다. 개인에 대한 기대치도 높다. 누군가 만나 사랑하면서 부모도 돼야 하고 사회적 지위도 유지해야 한다.
아무래도 현대사회에서 가장 큰 두 가지 문제는 '사랑'과 '일'이다. 인생학교에서는 일상적이지만 인생에 굉장히 시급만 문제들에 대해 문학과 역사, 철학을 동원하면서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 언젠가 한국에서도 꼭 '인생학교'를 열고 싶다.
-- '인생학교'의 주제 중에는 평범하고 사소한 것들이 많다.
▲사소해 보여도 우리 삶에서 매우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것들이다. '주말에, 남는 시간에 뭘 할까'부터 '장모님과 어떻게 잘 지낼까'까지 평범해 보이는 것들이지만 정작 일상에서는 중요한 문제들이고 삶의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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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랭 드 보통 인터뷰
- (서울=연합뉴스) 배정현 기자 = 서울디지털포럼 참석차 방한한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이 2일 오후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3.5.3 doobig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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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는 '인생학교'의 강의 중 '섹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는 법'을 맡았는데.
▲섹스는 불행한 삶의 주된 이유다. 너무 많거나 적거나 잘못된 섹스가 인생에 큰 문제를 갖고온다.
그런데 섹스는 참 이야기하기 어려운 주제다. 런던 서점에서 행사를 했는데 사람들이 내 책을 안 사가더라. 서점 주인이 말하길 '누구도 섹스에 대한 책을 읽는다는 걸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거다. 결국 내 책은 전자책으로만 많이 팔리고 서점에서는 잘 안 팔리고 있다(웃음).
섹스에 대한 이야기는 오랫동안 금기로 여겨져 왔지만 나는 늘 섹스에 대해 써보고 싶었다. 400쪽이 넘어가는 책으로는 말고 120쪽 정도로 쓰고 싶었는데 '인생학교' 강의가 절호의 찬스가 됐다.
-- 간단한 교훈을 주고 빨리 다짐하게 하는 자기계발서가 인기다. 작가로서의 고민은.
▲삶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책을 읽게 한다는 점에서는 정말 좋은 일이다. 하지만 요즘 나오는 자기계발서가 좋으냐고 묻는다면 '노(No)'라고 말하겠다. 인생에는 대개 해법이 없는데 자기계발서는 즉각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인생의 해법이라고 한다면 내가 이런 고통을 겪는 유일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우리 모두가 함께 겪어온 문제라는 걸 인지하는 것 아닐까. 자기계발서는 '나만 왜 이렇게 돈이 없지?' '나만 왜 이렇게 행복하지 않은 걸까?' 이런 질문에 돈을 더 벌 수 있다거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만 답한다.
-- 지금껏 일과 사랑, 건축, 종교 등 우리 삶 속의 다양한 주제를 다뤄왔다. 요즘의 관심사는 무엇인가.
▲신간 '치유로서의 예술'과 '더 뉴스'를 곧 출간한다. '더 뉴스'는 뉴스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지혜를 추구하고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다뤘다. 요즘은 뉴스의 주기가 며칠 되지 않고 정말 짧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쓰면서 '현재'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것 같다. 마치 우리만 이렇게 특별한 시대를 살아가는 것처럼. 뉴스는 어떤 사실들에 대해 말해주지만 늘 놓치는 부분이 있다. 스마트폰을 치우고 균형 있는 삶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 지금까지 관심 가져온 주제들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던 주제는 어떤 것인가.
▲좋은 삶, 더 나은 삶이다. 이건 사하라 사막 이남의 국가들에는 해당하지 않고 영국이나 한국처럼 경제 발전을 이룬, 부유한 세계의 문제이다. 더 나은 삶이라는 기대 속에서 일과 사랑, 돈, 성공, 목적 같은 문제를 다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5/03 06:05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