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참사> 재난안전관리 정책 홀대받고 실행력 '제로'

posted Apr 2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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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는 해양안전 정책은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의 운명에 따라 부침을 겪었다. 사진은 23일 정부세종청사 해양수산부 모습.
 

(세종=연합뉴스) 유경수 박용주 이지헌 차지연 기자 = 그동안 정부의 정책과제 우선순위에서 재난안전관리는 뒷전이었다.

 

위기 조짐을 미리 파악하고 사전에 대비책을 마련하는 일은 대체로 성과가 눈에 띄지 않는 데다 당장 일이 벌어지지 않으니 시급하지도 않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각 정부부처가 그 해 어떤 정책에 집중할지를 보여주는 업무계획에 잘 담겨 있다.

 

최근 몇년 간 부처별 업무계획을 살펴보면 재난안전관리 관련 정책과제는 한구석에 조그맣게 자리 잡거나 아예 생략된 경우가 많았다.

 

업무계획상 추진과제로 선정되더라도 이행력이 담보되지 않아 추진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현 정부는 출범 당시 국민안전을 중대 가치로 내세웠지만 정작 지난 1년여간 경제활성화 대책 마련 등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에 바빴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양사고 대책 국토부가 맡으면서 '변방에'

 

세월호 참사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는 해양안전 정책은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의 운명에 따라 부침을 겪었다.

 

대표적으로 해양안전 정책은 2008년 MB정부 조직개편으로 해수부의 해양 업무가 국토해양부로 편입된 뒤 업무 우선순위에서 뒷전으로 밀리면서 추진동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토부 통합 이전인 2007년 해양수산부 업무계획은 '해양안전관리시스템 선진화'를 주요 정책과제로 삼고 수 페이지에 걸쳐 기존과제 추진성과를 비롯해 우수 선원인력 양성, 선진형 해양안전 및 보안관리 체제 구축 등 정책방향을 설명했다.

 

이듬해 해양 업무를 이관받은 국토부의 업무계획은 해양안전 관련 언급이 단 몇 줄 수준으로 짤막해졌다. 단일선체 유조선 운항금지, 해역 안정성 평가, 통항분리대 재설정 등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반면, 4대강 사업과 경인운하 사업, 보금자리주택 등 MB정부의 대표적 토건사업이 그 해 업무계획의 대부분 분량을 차지했다.

 

2009년과 2011년에는 국토부 업무보고에서 해양안전 관련 언급이 아예 사라졌다. 주요 토건사업에 부처의 무게중심이 쏠려 해양안전 정책은 뒷전으로 밀린 것이다.

 

물론, 2012년 첫 국가해사안전기본계획을 수립한 성과도 있었다. '대형사고 제로화', '사망자 20% 감축' 등을 목표로 해양 안전 관련 단기 계획이 아닌 중장기 계획을 짰다는 데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전문가 의견수렴을 거쳐 200쪽 분량의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공표했으면서도 보도자료조차 내지 않았을 정도로 부처 내에서 무게감이 없었다.

 

세월호 참사로 나타났듯 추진 성과도 미흡했다. 2013년의 경우 어선 등의 사고 감소로 전체 해양사고가 전년 대비 12.1% 감소했지만, 화물선, 유조선 사고는 오히려 각각 8.1%, 25.6% 증가했다.

 

올들어서만 여수와 부산 등 2곳에서 유류 유출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해경도 대형 해양사고에 대한 대비가 소홀했다. 여객선 등 다중이용선박에 관한 관리 방침은 원론적인 수준을 되풀이하는 데 그쳤다.

 

해경의 2010∼2011년 업무계획을 보면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 사고에 대비한 내용은 없고, 어선이나 해수욕장 구조 등에 관한 사항만 담았다.

 

2012년 업무계획에서는 대형 해양사고와 수심 40m 이상 침몰사고에 대응하기 위한 '특수구조대테러단' 신설을 추진한다는 방침을 밝혔으나 결국 신설이 무산됐다.

 

여객선 등 다중이용 선박에 대한 안전관리 매뉴얼 제정, 해상교통질서 저해사범 단속 등 원론적인 계획이 반복적으로 제시됐지만, 세월호 사고에서 힘을 발하지는 못했다.

 

◇일반 재난관리 대책도 부실…원론대책 반복

해양 안전사고 뿐만 아니라 다른 일반적인 재난안전사고와 관련한 위기관리 대책 마련도 총체적으로 부실했다.

 

세월호 참사에서 우왕좌왕한 대응 사태를 빚은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컨트롤 타워 부재 문제는 이전부터 수차례 지적돼왔음에도 성과없이 표류하고 있는 상태다.

 

재난안전 관리를 총괄하는 안전행정부(2013년 이전에는 행정안전부)의 업무계획을 보면 재난대응체계 관련 정책이 상대적으로 적고 부처 핵심과제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그나마 마련된 추진계획들도 이행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행정안전부는 2010년 업무계획에서 '선제적 재난관리 강화' 과제 하에 단계적으로 유관기관 합동상황실을 구축해 신속한 상황보고와 대응을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또 사회적 재난은 물론 자연 및 인적 재난까지 총괄적으로 정보를 수집해 분석하는 역량을 강화한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따라 안행부 종합상황실과 소방방재청 재난·소방상황실을 통합한다는 방침이었지만 아직까지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을 다루는 상황실은 따로 있는 상태다.

 

세월호 참사 대응에서 보듯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총괄 지휘 역할을 못한 채 허둥지둥하면서 '골든 타임'(사고 발생 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유효기간)을 놓쳤다.

 

경찰·소방 등 기관별로 운영 중인 무선통신망을 통합·연계하는 '재난안전무선통신망'(재난망) 구축하는 사업도 몇년째 지연되면서 추진이 흐지부지된 상황이다.

 

2011년 업무에서는 재난지휘체계 일원화를 위해 표준운영절차(SOP)를 만들어 재난현장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지난 세월호 침몰 초기 해경과 안행부, 중대본 간 지휘체계의 혼선은 여전했다.

2012년과 2014년 업무계획에서는 아예 재난대응체계 개편과 관련한 내용이 사라졌다.

 

정부부처를 총괄하는 총리실도 재난안전관리 분야에 소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총리실은 작년 10월 박근혜 정부 국정과제와 관련해 블로그에 올린 '총체적인 국가재난관리체계 강화'라는 글에서 "국가재난관리는 정부의 일차적 기능"이라며 총체적 국가재난관리조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지난해 국무조정실 업무보고에서 26개 부처가 112개 국정과제를 보고한 것을 종합하면서도 재난·재해나 대형 사고에 대한 부분에는 따로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올해 역시 ▲국민중심 국정과제 ▲비정상의 정상화 ▲정부규제 혁신 ▲선제적 국정현안 등 4대 핵심전략을 제시하는데 그쳤다.

 

◇"섣부른 시스템 개편보다 정확한 원인분석 우선해야"

전문가들은 컨트롤타워 부재 등 정부의 미숙한 재난안전사고 대처를 한 목소리로 질타했다.

 

김상대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부 교수는 "탑승자 정보부터 구조자 정보까지 계속 발표 내용을 번복하면서 정부가 신뢰를 잃어버렸다"며 "담당 공무원이 전문성이 부족한 부분부터 손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방재학회장인 정상만 공주대 교수는 "초반에 해수부가 됐든 해경이 됐든 위기대응 시나리오에 따라 처음부터 끝까지 대응해야 했는데 우리는 지휘부 3곳에서 혼선을 빚었다"며 "대형 사고가 나면 컨트롤타워를 총리로 격상하는 시스템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섣부른 시스템 개편보다는 정확한 원인분석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덕훈 동국대 경영대 교수는 "초동대응이 부실하고 공조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은 시스템이 없어서가 아니다"라며 "대형 사고가 났다고 무턱대고 매번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고 상위기관을 만든다고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그동안 마련한 매뉴얼 등이 왜 잘 지켜지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고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래야 정확한 해법이 나오고 올바른 정책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pan@yna.co.kr,

charg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4/24 05:59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