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다문화음악방송 DJ 필리핀 여성 제니 김

posted May 0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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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음악방송을 하면서 필리핀에서 갓 시집 온 새댁이나 이주노동자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어 기쁩니다."

 

웅진재단이 디지털스카이넷과 함께 운영하는 다문화음악방송의 필리핀어 DJ로 일하는 제니 김(36) 씨는 2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일을 시작한 지 한 달 남짓 됐는데 벌써 수 백통의 문자와 전화를 받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새로 한국에 결혼 또는 노동을 목적으로 이주해 온 이들은 낯선 땅에서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데 자기 나라 음악을 듣고 자기 나라 DJ의 목소리를 들으면 외로움을 덜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제니 김 씨는 남부필리핀대학 호텔경영학을 전공했다. 이 학교에 비지니스영어를 공부하러 왔던 한국인 남편을 만나 2003년 함께 한국에 왔다. 결혼식은 2000년 필리핀에서 올렸다.

 

한국으로 온 이유는 아이를 한국에서 키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필리핀은 엄마의 나라로 잊어서는 안 되고 좀 더 크면 필리핀에도 가야겠지만 성장기는 한국에서 보내야 좀 더 큰 꿈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필리핀에서 태어난 아들은 벌써 초등학교 5학년이다.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는 엄마가 필리핀에서 왔다는 사실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적도 있지만 지금은 친구들에게 거리낌 없이 "우리 엄마 필리핀 사람이야"라고 이야기한다.

 

제니 김 씨는 한국에서 이미 여러 가지 일을 해 봤고 지금도 직장 네 곳을 다니는 '억척이'다.

 

다문화음악방송 DJ 외에 인천항만연수원과 산업인력관리공단, 서울 충정로에 있는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항만연수원에 오는 대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인력관리공단 등에서는 이주민들의 애로를 덜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적성에 안 맞아 이내 그만뒀지만 이주 초기에는 공장일도 했다. 이후 회사에서 영어로 된 문서를 수발하는 일을 거쳐 지난해 말까지 2년간 민병철어학원에서 영어강사로 일했다. 거주지인 인천의 외국인인력지원센터에서도 일했다.

 

어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 더 좋지 않으냐는 말에 그는 "돈도 많이 받고 좋기도 하지만 필리핀 이주민들을 위해 더 보람있는 일을 하고 싶어 그만뒀다"고 말했다. 필리핀어로 음악방송을 진행하는 중에 '잘 듣고 있다. 고맙고 행복하다'는 문자를 받는 지금이 가장 좋다.

 

직장을 네 곳이나 다니는 이유는 "한국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이다.

 

그는 또 직장 외에도 필리핀결혼이민자협회와 필리핀외국인근로자협회 등 필리핀인들로 구성된 5개 커뮤니티에 몸담고 있고 필리핀결혼이민자협회에서는 부회장 직함을 갖고 있다.

 

그는 "2006년까지는 필리핀에 돈을 많이 보냈다"고 밝혔다. 사촌동생 등 친척 2명을 대학에 보냈고 친어머니에게 집도 사드렸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그를 너무 어린 나이에 낳아 이모할머니를 엄마로 알고 컸다. 또 한국의 가족관계에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필리핀에서는 직계가족이 아니어도 모두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며 여유가 있으면 서로 돕는단다.

 

지금도 그는 매해 크리스마스 때면 일가친척 30명에게 각각 약 500페소(한화 약 1만5천원) 씩 보낸다. 그 정도 돈이면 필리핀에서는 '꽤 큰 용돈'이다.

 

한국에서 살면서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한국에서는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함께 밥을 먹는 것이 본받을 만하다"고 대답했다. 그 외에도 필리핀에서 온 이주민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필리핀에서는 큰 회사는 물론이고 구멍가게라도 주인과 종업원은 겸상하지 않고 먹는 음식도 다르다는 것이다.

 

필리핀에는 있지만 한국에는 없는 '좋은 문화'가 있느냐고 묻자 그는 잠시 망설이다 "한국인들은 돈이 있어도 없어도 계속 모으려고만 한다"며 "필리핀 사람들처럼 있을 때는 좀 쓰면서 여유있게 살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문화음악방송 DJ 제니 김 씨)

 

 

kjw@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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