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일 "루저일 수 있지만 매력적인 캐릭터 연기했죠"

posted May 0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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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일 "루저일 수 있지만 매력적인 캐릭터 연기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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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령화가족'서 주인공 인모 역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실패를 안 하면 전진을 못한다고 하잖아요. 어떤이는 '인모'를 단지 '루저'로 보겠지만 저에겐 굉장히 흥미롭고 매력적인 캐릭터였습니다."

 

뻔뻔하고 능청스러운 교사(연애의 목적), 당최 속을 알 수 없는 의뭉스러운 인물(살인의 추억), 10대 소녀를 사랑하는 70대 노인(은교)에 이어 이번에는 허세만 남은 '흥행 참패' 영화감독이다.

 

개봉을 앞둔 영화 '고령화가족'(감독 송해성)에서 '인모' 역을 맡은 배우 박해일을 1일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극 중 인모는 가족 중 유일하게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이지만 영화감독 데뷔작에서 흥행에 참패하고 밀린 월세도 내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한 인물. 그만큼 짜증을 내는 장면도 많다.

 

"실제로도 촬영 기간 예민했어요. 인모라는 캐릭터에 주어진 상황 자체가 갈 길이 막막하고 막혀 있는 느낌이 크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죠."

 

보통 촬영이 끝나면 영화 속 캐릭터에서 벗어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마련.

 

"까칠한 말투도 최근까지 있었어요. 3개월 넘게 인모의 감정을 고민하면서 지내다 보니 일상에서도 날이 선 말을 가끔 던질 때가 있었어요. 오랜만에 부모님을 찾아 뵈었는데 영화인지 현실인지 잊어버리는 시점도 있었죠."

 

선하고 반듯한 이미지지만 유달리 '찌질한' 역할을 많이 한 그다.

 

"캐릭터에 대한 연민, 동정, 호기심, 즐거움이 더 동하게 될 때 선택하게 돼요. 요즘 들어 찌질하다는 표현을 많이 듣게 되는데 그게 흥미롭게 느껴졌다면 제가 거부감이 덜 생기는 캐릭터인 거겠죠. 실패하고 힘겨워하는 캐릭터에 조금 더 애정을 갖게 되는 건 제 개인적인 부분과 맞닿아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박해일은 "이번 작품은 시나리오와 송해성 감독이 매력적으로 다가와 선택했다"며 "큰 호기심이 생기고 해볼 만한 가치가 충족될 것 같으면 (작품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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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모가 처한 사회나 인생에서의 실패들이 안쓰럽기도 했고 인모와 나눠보고 싶었어요."

 

박해일은 송 감독이 순간순간 하는 얘기들이 인모를 연기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실제로 송 감독도 전작의 실패 경험을 언급하며 "실패한 영화감독이 나온다는 게 굉장히 좋았다"고 말한 바 있다.

 

"배우라는 작업을 하면서 제 기대에 못 미치고 큰 벽에 부딪혀 그 벽을 못 넘었을 때의 기분도 있고, 어릴 때 꿈이 좌절됐던 기억도 있고, 제가 영화를 해오면서 겪었던 감독이라는 직업의 기억들도 있잖아요. 이번 영화는 제가 영화를 찍는 건지 인모가 돼서 살아보는 건지 헷갈리는 지점이 있었어요."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흔히 잊고 지내기 쉬운 가족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되는 영화여서일까. 박해일은 "또 하나의 가족" 같았다고 했다.

 

"미술팀도 실제로 가족이 사는 집안을 만들어주려고 바닥에 전기보일러까지 놔줬어요. 일부러 바닥에 누워 있기도 하고 방에 들어가서 안 나오기도 했죠. 촬영이 끝나면 가야 하는데 집처럼 생각하고 꽤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게 다른 영화와의 차이죠."

 

백수 형 '한모' 역을 맡은 윤제문과 치고받고 싸우는 장면도 많았다.

 

"예전에 연극 무대에서 1년 넘게 같이 공연하다 보니 낯섦이 없었어요. 선후배 간에 긴장감도 있고 경직될 수 있는데 그런 선후배 간의 조심스러운 긴장감이 많이 빠진 상태에서 시작해 유연하게 연기할 수 있었죠. 한모 형 같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어서 편한 지점도 있었어요."

 

그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고 본의 아니게 힘들 때도 있잖아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가닥을 잡을 수 없을 때, 아무 이유나 계산 없이 들어갈 수 있는 데가 가족의 테두리 아닐까요."

 

박해일은 "팔다리 쭉 뻗고 예민하게 신경 쓸 일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했다.

 

"일로든 사회적으로든 상처를 받고 고민을 하는 시기가 있죠. 우울해질 때도 있고. 그럴 때 정말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은 가정일 수도 있고, 엄마일 수도 있죠. '고령화가족'은 그런 편한 품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냥 이런 가족의 모습을 편하게 봐주셔도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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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로 영화에 데뷔한 지 10년이 훌쩍 지났다. 지금은 그의 연기 인생에서 어느 지점일까.

 

"앞일에 대한 예상은 잘 안 하고 사는 타입이지만 지금 40대 선배 배우들 보면 속도를 내서 깊고 넓게 달려가는 게 보여요. 지금은 제가 '텀'도 길고 템포도 느리지만 앞으로는 저도 그분들의 집중력을 더 따라가게 되지 않을까요. 제 나이대에 고민거리들을 생각해보면서 찍을 수 있는 영화들을 해 나가야죠."

 

hanajjang@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5/01 15:02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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