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 굳게 닫혔던 하얀 색 정문이 서서히 열렸다. 탑승자들의 신원확인과 휴대전화 수거 등 보안 절차를 거치느라 10여분을 멈춰섰던 버스가 그제야 다시 움직였다. 높은 담 위로 철조망이 둘러쳐진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이하 합신센터)의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경기도 시흥시 조남동에 위치한 합신센터. 국정원이 운영하는 탈북민 수용 시설인 이곳이 지난 4일 언론에 처음 공개됐다.
2008년 개관 이후 비(非)보도를 전제로 기자단 대상 견학 프로그램이 진행된 적은 있지만 국정원이 32개의 언론매체 기자들을 공식 초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인적이 드문 시내 외곽의 6만1천14평 부지에 들어선 합신센터는 해외에서 입국한 탈북민들이 거치는 첫 '남한살이' 공간이다.
강제북송과 인신매매의 위험 속에서 남한에 발을 내디딘 이들은 이곳에서 가족사와 탈북 배경 등에 대한 조사를 거쳐 신원을 확인받은 뒤 하나원(남한 사회에 나가기 전 교육을 받는 곳)으로 가게 된다.
대통령 훈령 28호에 따른 국가보안목표시설 '가'급으로 분류되어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이곳을 국정원이 취재진에 공개하기로 한 것은 최근 불거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과 무관치 않다.
국정원은 이곳 합신센터가 간첩 피고인 유우성씨의 동생 가려씨에게 강압과 폭행을 가해 유씨가 간첩이라는 '허위 자백'을 받아낸 장소로 부각되면서 '미국의 관타나모 수용소와 다를 바 없다'는 비난까지 제기되자 기자들에게 시설을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국정원은 이날 공개 행사에서 그간 언론과 시민단체의 보고서 등을 통해 알려져온 합신센터에 대한 정보가 실상과 다르다는 것을 설득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안내에 따라 방문한 곳은 수용 탈북민이 조사 중 기거하는 독방을 비롯해 기초 조사가 진행되는 1인 조사실, 추가 의혹이 있는 탈북민을 대상으로 기무사령부 등 유관기관과 함께 조사를 하는 합동조사실, 전염병을 앓는 탈북민을 대상으로 하는 격리 조사실, 의무실, 도서실, 어린이 놀이방 등이었다.
특히 10평 크기의 독방은 TV와 냉장고, 수납장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어 눈에 띄었다. 이곳에 기거하는 탈북민들은 조사 이외 자유시간에는 DVD를 보거나 책을 읽을 수 있다. 지난해 가을부터는 밖에서만 열 수 있었던 출입문 개폐 시스템을 출입증 카드를 이용해 스스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바꿨다고 국정원 측은 설명했다.
조사실에서는 탈북자 한 명당 하루 평균 5∼6시간의 신문이 진행되고, 필요에 따라서는 신문 내용을 녹화해 2∼3개월간 보관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간담회에서 국정원이 소개한 수용 탈북민 5명은 "선생님(센터에서 탈북민들이 조사관을 부르는 말)이 정말 잘해 주신다. 전혀 불편함이 없다"고 입 모아 말했다.
40대 탈북민 A(남)씨는 "(폭행이 있다는 말은) 거짓이라고 생각한다"며 "선생님들이 친절하게 대해주고, 존댓말을 사용한다. 이런 조사를 받을 때 북한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고 말했다.
앞서 가려씨는 조사 과정에서 '오빠 유씨가 간첩이라는 사실을 자백하라'는 추궁에 시달렸으며, 시계나 달력조차 없는 독방에 감금된 채 취조를 당해야 했다고 폭로했다.
시민단체들은 합신센터가 탈북민의 정착을 돕는다는 본래 목적과는 달리 간첩 색출을 목적으로 '강제 수사'를 하고 있고, 장기간 인신구속과 변호인 접견불허 등으로 인해 탈북민의 인권이 침해되는데도 어떠한 법제적 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다는 지적을 제기해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이번 공개 행사는 국정원이 자기 합리화를 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라며 "국정원 의도에 따라 진술할 수밖에 없는 수용 탈북자의 인터뷰도 신뢰하기가 어렵다. 국정원은 마치 합신센터에서 인권침해가 없는 양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정원은 "변호인 접견권을 침해했다는 법원의 최근 결정에 대해서는 재항고를 통해 다시 판단을 받아보고 그 결과에 따를 것"이라며 "CCTV를 통한 조사실 모니터와 녹화 등과 관련된 원칙과 지침도 마련하는 등 개선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4/06 09: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