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일록이 악덕의 상징? 내겐 그냥 한국아저씨 같아"

posted Mar 28, 201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뷰어로 보기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연극 '노래하는 샤일록' 연출한 정의신
연극 '노래하는 샤일록' 연출한 정의신
(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 극작가 겸 연출가인 정의신이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기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4.3.28 ksujin@yna.co.kr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재해석한 재일교포 연출가 정의신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경계인'으로서의 삶과 애환을 그리며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사랑받는 재일교포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57)이 처음으로 셰익스피어와 만난다.

 

그는 다음 달 5~20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셰익스피어 희극 '베니스의 상인'을 각색, 연출한 '노래하는 샤일록'을 무대에 올린다. 국립극단이 올봄 준비한 셰익스피어 시리즈 중 두 번째 작품이다.

 

정의신이 셰익스피어 연출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왜 이제서야'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어울리는 구석이 많다.

 

셰익스피어는 희극과 비극으로 단정할 수 없고, 선인과 악인에 대한 편견을 깨부수며, 인간과 세상에 대한 폭을 무한대로 넓힌다. 경계인의 삶, 웃음과 울음이 공존하는 세계에 대해 늘 따뜻한 시선을 품어온 정의신은 이 같은 셰익스피어의 극 세계와 어떤 부분에서 교집합을 이룬다.

 

최근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어린 시절 '베니스의 상인'을 읽으며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았던 샤일록의 모습이 인상 깊게 남아 있었다"고 연출 배경을 설명했다.

 

'베니스의 상인'은 베니스의 부유한 상인이며, 친구를 위해 생명을 담보로 한 계약을 맺는 안토니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평소 그에게서 온갖 멸시와 모욕을 당한 샤일록은 돈을 빌려주는 대신 갚지 못하면 안토니오 몸에서 살 1파운드를 떼어내겠다는 조건을 내건다.

 

"샤일록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덕 고리대금업자의 대명사로 알려졌지만, 저에겐 어디에나 있을 법한 한국 아저씨처럼 느껴져요. 베니스 시민임에도 유대인이란 이유만으로 기독교인들에 의해 차별과 소외를 겪잖아요. 베니스의 '이방인'이죠. 고집스럽고 돈에 집착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게다가 나름의 자비를 베풀고자 시작한 '살 1파운드 계약' 때문에 돈도, 딸도 모두 잃게 됩니다. '악덕하고 돈밖에 모르는 샤일록', 그 뒤에 가려졌던 다양한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어요."

그가 새로운 해석을 입히는 인물은 샤일록 뿐이 아니다. 정의신은 원작의 큰 틀을 지키면서도 인물 구축과 상황 설정을 새롭게 했다.

 

목숨을 담보로 친구 밧사니오에게 돈을 꿔주는 안토니오는 친구에게 우정이 아닌 사랑을 느끼는 인물로, 남장을 하고 법정에서 '피와 살을 구별해내라'는 명판결을 내리는 포샤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신여성'으로 그려진다. 결혼으로 현실 도피를 꿈꾸는 샤일록의 딸 제시카는 포샤와 대조적으로 남성 의존적인 캐릭터다.

 

작품 속 어떤 인물에게서도 뚜렷한 선과 악을 찾을 수 없다. 그저 정의신은 지금까지 그래 온 것처럼 마이너리티에게 따뜻한 시선을 품고, 어떤 상황에서도 결국 삶은 이어진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래서 작품 제목도 '노래하는 샤일록'이다. "원작에서는 샤일록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으로 이야기가 종결됩니다. 그런데 전 샤일록의 그 이후의 삶이 궁금했어요. 결국 어떤 인생이든 살아냈을 것 같고요. 노래하고, 웃으면서 말이죠. 그런 보통 사람들의 희망을 대변하는 인물로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그의 작품에 늘 등장하는 유머 코드는 이번 작품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무대에는 베니스를 연상시키는 작은 다리와 운하가 등장하지만 '언제나, 어디에도' 있을 법한 제3의 시공간으로 꾸며진다. 이 역시 그의 무대에서 늘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의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자기 복제'라거나, 더는 새롭지 않다는 비판을 한다. 시대의 풍랑을 겪은 사람으로 보기엔 인물들이 지나치게 순수하고 인간미 넘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그는 "어쩔 수 없다"며 '허허' 웃는다. "두 나라의 경계인으로 살아온 제 삶의 이력은 작품에 녹아날 수밖에 없습니다. 제 관점 이외에 다른 무엇인가를 말하는 게 가능하지도 않고, 크게 의미도 없다고 생각해요."

 

가난한 재일 조선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가 결핍과 상처 입은 자들의 삶을 그리는 것은 어찌 보면 숙명 같은 일일 터다. 가족의 사랑, 이웃에 대한 배려, 소외인에 대한 관심을 말하는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마지막엔 기어이 '씨익' 웃고야 만다.

 

관객에게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메시지를 묻자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즐겁게 봐주세요. 또 그렇게 봐주셔서 언제나 감사합니다."

▲ 정의신 연출 '노래하는 샤일록'=2만∼5만 원. ☎ 1688-5966. 출연 박기륭, 윤부진, 김정은, 이윤재, 이동준 등.

 

sj9974@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3/28 08:00 송고


Articles

348 349 350 351 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