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공원-역사의 숨결을 찾아서

posted Apr 2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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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오 기자/스포츠닷컴]

 

-사직단(社稷壇)은 호국호민(護國護民)의 살아있는 터-

 

서울시 종로구 사직동 1-28번지에는 조선 시대, 임금이 백성을 위해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 있다.

 

원래는 사직단이 맞는데 왜? 사직공원이라고 이름 붙여 졌을까?

 

일설에 따르면 일제치하에서 붙여진 명칭으로 조선 왕조의 명맥을 끊으려는 뜻에서 단(壇)의 신성함에서 공원(公園)이라는 일반인들의 휴식처로 만들려는 일본의 계책으로 전한다.

 

앞으로 국가 유산인 이 사직단이 하루빨리 제 명칭으로 돌아와 역사적 기념을 재조명해야 하리라고 본다.

 

조선 건국의 태조 이성계는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면서 1395년(태조 4)에 경복궁 동쪽에는 종묘를 서쪽에는 사직단을 설치하였다.

 

사직단은 홍살문이 설치된 두 겹의 담장으로 동쪽에는 사단이 서쪽에는 직단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사직단을 관리하기 위한 부서인 사직서와 제사를 지내기 위한 부속건물들이 있었는데, 1911년 한일합방 이후 일제에 의해 사직단의 제사가 폐지된 이 후 두 단만 남기고 주변을 공원으로 만들었다.

 

사직단은 서울뿐 아니라 지방의 주요 도시에도 설치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서울에 있는 사직단의 규모가 가장 크며, 서울과 지방에서 왕과 수령이 사직단에 제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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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사직단에 대해서 방문객에게 친절히 설명하고 있는 배종태 님)

 

농업과 유교가 국가 정책의 기본이었던 조선시대에서는 토지와 곡식의 신을 숭배하고 태조가 새 도읍을 정하면서 하늘과 땅에 호국호민(護國護民)을 고한 사직단은 종묘와 함께 조선의 산 역사물이다.

 

사직단 정문(보물 177호)은 사직단과 관련된 여러 시설들을 모두 포함하는 영역의 문이다.

1395년(태조 4)에 세워진 사직단은 토지의 신인 사와 곡식의 신인 직에게 제사를 올리기 위한 시설이다.

 

조선시대에는 제사 시설인 단과 제사 준비를 위한 각종 부속 건물, 사직단 관리 관청인 사직서 건물들이 하나의 영역을 이루고 있었다.

 

단의 정문은 신이 드나드는 방위로 여겨진 북쪽에 설치되는데 조선 초기의 자료에 따르면 사직단 영역 전체의 정문 역시 북쪽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에 태풍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문을 지금처럼 동쪽으로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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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사직단 앞을 가로지르는 사직로를 새로 만들면서 정문은 원래보다 14m 뒤로 물러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사직단 현장에서 근무중이던 배종태 님의 친절한 안내와 이곳 사직단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듣는 동안 저절로 잊혀져가던 조선시대의 역사와 이 땅에 깃든 민족혼이 일깨워져와 숙연한 마음으로 토지신과 곡식신이 현재(現在)하는 사직단 흙에 두 손을 얹고 조상들의 숨소리를 들어 보았다.

 

매년 9월 셋째주 일요일에 지내는 사직대제는 중요무형문화재 111호로 전주 이씨 문중 주관으로 열리는데, 이날엔 옛 전통에 따라 제례악, 일무(64명이 참가) 등이 펼쳐져 선왕 공덕을 기리고 나라와 백성의 평안을 기원하던 옛 왕조의 풍습을 볼 수가 있다.

 

서울시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내려 조금만 걸어가면 사직공원이 있다.

 

중요한 문화재로서의 사직단을 한번쯤은 직접 찾아가 점차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와 역사의식 고취와 청소년 교육에 활용해 보는 것도 상당히 바람직한 일로서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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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오 기자 smi544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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