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가을 바람처럼 쓸쓸한 '런치 박스'

posted Mar 1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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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인도의 대도시 뭄바이. 주부 일라(님랏 카우르)는 소원해진 남편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정성스레 점심 도시락을 싼다.

그러나 그의 정성이 가득 담긴 도시락은 배달업체의 실수로 정년 퇴임을 앞둔 공무원 사잔(이르판 칸)에게 배달된다.

 

무료한 일상에 지쳐가던 사잔은 도시락 안에 편지를 써 보내고, 일라도 이에 화답하면서 둘은 기묘한 관계 속으로 빠져든다.

 

얼굴도 모르는 상태에서 편지를 주고받으며 싹트는 사랑. 이미 에른스트 루비치 감독의 '모퉁이 구멍가게'(1940)나 이를 리메이크한 노라 에프론 감독의 '유브 갓 메일'(1988) 같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익히 다룬 소재다. 게다가 인도 영화니까 춤과 노래가 등장하는 그저 그런 로맨틱코미디일 것이라는 편견마저 영화는 자극한다.

 

그러나 통속적이고 보편적인 내용을 소재로 했지만, 영화 '런치 박스'가 담는 쓸쓸함의 무게는 만만치 않다. 이제 죽음을 향해 직진하는 것밖에 남지 않았을 것 같은 한 남자와 남편의 배신과 아버지의 죽음을 맞닥뜨린 애 있는 여자의 사랑은 가을 바람처럼 소슬하고, 거리에 굴러다니는 낙엽처럼 서럽다.

 

영화 초반의 분위기는 흥겹다. 이제 막 싹터가는 사랑의 분위기가 스크린을 분홍빛으로 채색한다. 도시락 속에 담긴 편지는 각자의 일상을 담고 추억을 부르다가 결국에는 그들 각자의 러브레터로 변해간다.

 

영화는 도시락 속 편지가 러브레터로 변해가면서 감정의 밀도가 촘촘해진다. 늙어가는 모습이 추레해 여인 앞에 서지 못하는 남자의 자격지심과 겉도는 인간관계에 생의 의지가 마모돼 가는 여자의 헛헛함이 극의 후반부를 채운다. 그리고 그 쓸쓸한 정서는 엔딩에서 정점에 달한다.

 

사잔의 조수로 등장하는 셰이크(나와주딘 시디퀴)의 존재가 비교적 단선적인 영화에 다채로운 색깔을 입힌다. 거짓말과 꼼수로 똘똘 뭉친 이 영악한 존재는 때론 미움을 불러 일으키고, 때론 동정심을 자아낸다.

 

'슬럼독 밀리어네어'(2008)와 '라이프 오브 파이'(2012)에 출연해 국내 관객에게도 친숙한 이르판 칸의 무심한 연기에 자꾸 눈길이 간다.

 

영화는 로테르담영화제 각본상,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관객상 등 8개 국제영화제에서 12개 상을 받았다. 리테쉬 바트라의 장편 데뷔작으로, '내 이름은 칸'(2011)의 카란 조하르 감독이 제작자로 참여했다.

 

4월10일 개봉. 12세이상관람가. 상영시간 104분.

 

buff27@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3/18 13:49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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