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한 성장통…소설 '어쨌든 밸런타인'

posted Mar 1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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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밸런타인' 낸 강윤화 씨 < 창비 제공 >

 

 


제7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10대들의 고민과 상처를 대변하고 치유까지 도모하는 것이 청소년 문학의 본령이라고 한다면 강윤화(28) 씨의 첫 장편소설 '어쨌든 밸런타인'(창비 펴냄)은 이러한 본령에 충실한 작품일 것이다.

제7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이 작품에서 작가는 각자 다른 사정을 품은 여섯 주인공의 고교 3년을 통해 요즘 10대가 친구, 연인, 가족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를 섬세하면서도 담담하게 포착해 낸다.

 

무늬만 청소년 소설이지 결국에는 기성세대들이 바라본 '요즘 애들'의 일상과 심리에 대한 묘사에 그친 최근의 청소년 소설들과 달리 이 작품은 청소년들의 생활과 사고방식을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책을 내고 18일 서울 광화문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난 작가는 그 비결을 자신의 10대 친구들에게서 찾았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는 친구라고 부르긴 어렵겠지만, 제게는 10대 친구들이 굉장히 많다"면서 "그들에게서 들은 얘기에다 저의 학창시절과 청소년기의 느낌을 더했다"고 설명했다.

 

2009년 단편소설 '목숨전문점'으로 제16회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은 그는 첫 장편소설로 청소년 문학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몇 년 전에 치러진 교육감 선거가 계기가 됐다고 했다.

 

"그때 저는 투표권이 생긴 지 얼마 안 된 때라서 신나 있었어요. 근데 주변 사람들은 우리 애가 학교 다니는 것도 아닌데 왜 신경 써야 하느냐고 하더라고요. 새로운 교육감 아래에서 교육을 받을 아이들은 제가 앞으로 함께 살아갈 사람들이고 제가 자식을 낳으면 자식과 함께 살아갈 사람들인데, 왜 어른이 되는 순간 나랑 관계는 없다고 끊어버리는지 문제의식이 들었죠."

 

책에는 서로 없는 삶을 상상조차 못 한 소꿉친구 재운과 유현,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돼 버린 쌍둥이 형제 홍석과 진석, 같은 반이지만 말 한마디 나누지 않던 두 소녀 다정과 이수 등 여섯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른 사정들을 품고 있다. 가령 관심병 환자로 비치는 유현에게는 어린 시절 폭행을 당한 트라우마가 있고, 유현의 스토커로 놀림당하는 재운은 위태로운 소꿉친구의 곁을 지키려 애쓸 뿐이다.

 

다른 주인공들 역시 마찬가지다. 전형적인 모범생과 문제아로 보이는 홍석과 진석은 서로 애증에 가득한 채 상처만을 주고받는 쌍둥이 형제다.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는 다정 또한 실은 주변에 자신의 존재감을 심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동성을 좋아하기에 오히려 남자들과만 붙어 다니는 이수의 독백은 모든 주인공의 마음을 대변한다.

"문득 나를 걸레라 부르던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상한 애라 손가락질하고 뒤에서 수군대던 애들도 함께 떠올랐다. 언제나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닌데 내 생각과 마음을 감추는 데에 익숙해져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195쪽)

 

문학상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중견 소설가 오세란 씨는 "강윤화 씨는 작품에서 고등학교 3년 과정을 '겨울 세 번 거친다'로 표현했다. 흔히 인생의 봄으로만 여겨지는 이 시기를 겨울을 통과하는 시기로 상징화한 것"이라며 "현대 사회에서 청소년이라는 시기가 봄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한 주목할 만한 시선"이라고 평가했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때로 주저앉기도 하지만 조금씩 자신의 길로 나아간다. 퇴학을 당하거나, 졸업식에 참석하지 말라는 엄포를 듣거나, 대학을 포기하거나….

 

졸업을 맞이하는 주인공들의 장래는 밝아 보지만은 않는다. 그러나 밸런타인데이에 열린 졸업식장에서 다정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어디에서든 여기에서보다 크게 자라날 겁니다. 그러지 못할 것 같을 때에는 오늘 이 자리를 기억하세요. 그리고 그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움직였는지 돌아보세요. 앞으로 갔든 뒤로 갔든 제자리걸음은 아닐 겁니다."(269쪽)

작가가 작품에서 가장 애착을 느끼는 인물로 꼽은 다정의 "앞으로 갔든 뒤로 갔든 제자리걸음은 아닐 겁니다"는 말은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로 읽힌다.

 

"제 학창시절 때는 반 친구들과의 트러블이 제게는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아요. 근데 요새 애들은 관계 문제로 속상해도 싸우고 대화하고 표출하는 게 줄어들었죠. 입시가 중요한데, 시간낭비를 해선 안 되니까 그렇겠죠. 입시를 위해서 아이들을 소모시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사회는 입시 이후에 아이들이 어떻게 될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현재 자신의 고민을 또래들도 똑같이 하고 있는지 궁금한 10대들에게, 그리고 자녀가 요새 어떤 말 못할 고민과 상처를 안고 있는지 알고 싶은 부모들에게 일독을 권하고픈 책이다.

 

changyo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3/18 15:2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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