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이 문 닫은 뒤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posted Feb 1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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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와정의 작품 '인형의 집으로 와요'
로와정의 작품 '인형의 집으로 와요'
 
 
 

아트선재센터, 오후 6시부터 여는 '6-8'展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벤 스틸러 주연의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박물관이 문 닫은 밤, 전시품들이 제멋대로 살아 움직이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코미디다. 낮에는 얌전히 있던 마야인과 글래디에이터, 카우보이는 밤이 되자 서로 싸워대고, 포악한 공룡 티라노사우루스는 주인공을 잡아먹으려 든다.

전시장이 문을 닫은 시간, 실제로 전시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의 새해 첫 전시 '6-8'전은 일반적으로 미술관이 모두 문을 닫는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2시간 동안만 관람할 수 있는 전시다.

'파격'은 관람 시간만이 아니다. 전시 작품들도 지정된 전시 공간을 벗어났다. 직원들도 평소에 쉽게 갈 수 없었던 건물 옥상과 기계실을 비롯해 미술관 입구와 한옥, 정원, 계단 등 아트선재센터 안팎 곳곳에 작품들이 배치됐다.

 

일반적인 전시와 달리 전시 동선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관람객이 원하는 대로 돌아다니며 다양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로와정(노윤희+정현석)과 리경, 염중호, 프로젝트 그룹 이악, 이원우가 전시에 참여했다.

 

로와정의 작품은 밤 조명을 따라 미술관을 한 바퀴 돌아보면서 만나볼 수 있다.

미술관 정문에 위치한 텅 빈 주차 요원 부스에서는 화려한 조명이 돌아가고, 맞은편 라이트박스에는 주어나 목적어가 곳곳에 빠진 문장이 나타난다. 정원으로 발길을 옮기면 실제로 심어진 나무의 그림자와 종이 나무의 그림자가 섞여 어떤 것이 진짜 자연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벽을 따라 놓인 집 모양의 조명에는 쪽방 할머니가 혼자 TV를 보는 모습이나 놀이터에 있는 우주선 모양의 미끄럼틀 등을 그려넣었다.

리경은 아트선재센터 정원에 있는 한옥에서 빛과 어둠, 사운드를 통해 신체와 공간이 일체가 되는 느낌을 선사한다.

염중호의 작품은 "작업인지 아닌지 모르고 지나갈 수 있는" 미술관 앞 식당의 환풍구, 기계실 등에 놓여 있다. 돌탑을 쌓아 소원을 비는 데서 착안해 작은 돌멩이를 쌓아놓고 먼지가 쌓이면 글씨가 더욱 선명해지도록 했다.

 

허리를 굽히고 '빨리' 지나가야 하는 기계실에 있는 작품에는 '빨리빨리', 인왕산이 바라보이는 옥상에 놓였다는 얘기만 듣고는 '우왕좌왕'하며 찾게 되는 작품에는 '우왕좌왕', 설마 저런 곳에 작품이 있을까 싶은 곳에 있는 작품에는 '헉'이라는 글씨를 남겨놨다.

 

좁은 기계실과 가파른 계단을 지나 마주하게 되는 옥상에는 이원우의 온실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다. 아니면 그 반대이거나'가 있다. 온실 안에는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안으로 들어가면 갑자기 세상이 사라지고 혼자 남은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밖에서 보면 온실 안으로 들어간 다른 관람객이 일순간 연기 속으로 사라진 듯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연기처럼 사라질 수는 없지만 연기 속으로 사라질 수 있게끔 했다"며 "일종의 슬랩스틱 코미디와 같은 상황을 염두에 뒀다"고 한다.

 

이원우의 작품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다. 아니면 그 반대이거나'
이원우의 작품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다. 아니면 그 반대이거나'
 

옥상에는 밴드 '삐삐롱스타킹'의 멤버였던 권병준과 김근채(이악)의 '서울 비추기'도 있다. 헤드폰이 연결된 손전등을 들고 이리저리 비추면 손전등이 비춘 방향에서 채집된 다양한 소리를 감상할 수 있다. "소리를 들려주는 등대"(권병준)와 같다.

 

음악·조형 미술·기계공학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구성원이 모인 이악은 이외에도 기계실에 정체불명의 벌레를 숨겨 놓거나 길바닥에서 주운 쓰레기로 고치를 만들고 수화기를 이용해 엘리베이터 앞을 안내데스크로 바꾸는 등의 작업을 선보인다.

 

작가들이 직접 말하듯이 쓴 작품 설명이 담긴 지도 한 장을 달랑 들고 작품을 찾아 이곳저곳 배회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미처 작품을 발견하지 못하고 스쳐 지나갈 수 있으니 주변을 잘 살피자.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된 건물 옥상에서 바라보는 주변 야경은 덤이다.

전시는 3월30일까지. 매주 월요일 휴관. ☎ 02-739-7068.

hanajja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2/13 11:12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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