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리와의 삶 돌아보다…서영은 자전적 소설 출간

posted Feb 0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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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소설 발표한 서영은 작가
신작소설 발표한 서영은 작가
(서울=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서영은 작가가 4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신작 장편소설 '꽃들은 어디로 갔나'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2014.2.4 yangdoo@yna.co.kr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한국 문단의 거목이었던 소설가 김동리(1913~1995)의 세 번째 아내, 30대에 혜성같이 나타나 이상문학상을 받은 화제의 여성 작가.

 

그 서영은(71)이 장편소설 '꽃들은 어디로 갔나'(해냄)를 펴냈다. '그녀의 여자'(2000) 이후 14년 만에 내놓은 신작은 그녀와 김동리의 긴 만남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철저히 자전적이다.

 

서영은은 4일 오전 프레스센터에서 연 기자 간담회에서 "구도(求道)의 한 방편으로 문학을 해 온 제게 이 작품은 구도의 과정에서 한 획을 긋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소재는 자전적이지만 저 자신이나 김동리에 대해서 가능하면 사적 감정을 배제하고 오로지 작가로서 삶의 진실, 인간성의 깊이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서영은은 신작에서 마지막 여섯 페이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3인칭 시점을 취했다. 자신과 김동리를 둘러싼 상황을 객관화하고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궁극적으로는 사적인 이야기가 아닌 인간과 사랑에 관한 보편적인 이야기로 읽히길 원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실을 놓고 획득한 이 거리감이야말로 46년간 소설가로서 살아오며 도달한 하나의 경지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다"면서 "만약 작품을 통해 저의 존재가 느껴졌다면 제 소설 쓰기의 실패라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녀는 "이 소설은 1인칭의 고백체가 되기에는 너무나 큰 삶의 깊이와 인간성의 깊이를 담으려 한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신작의 중심축에는 세 인물이 있다. 젊은 아내 호순과 서른 살 나이 차가 나는 박 선생, 그리고 박 선생의 아내인 방 선생이다.

 

방 선생이 숨진 뒤 호순과의 사랑이라는 비밀이 세간에 알려질까 두려운 박 선생은 적막한 절간에서 조용히 혼례를 올렸다. 하객은 호순의 어머니와 이모뿐. 당시 김동리가 74세, 서영은이 44세였다.

 

서영은은 호순과 박 선생이 결혼생활을 한 3년여의 시간을 "불에 타는 아내의 시신을 묵묵히 끝까지 지켜본 사람 같은 말투"로 담담하게 풀어낸다.

 

신작 '꽃들은 어디로 갔나' 발표한 서영은 작가
신작 '꽃들은 어디로 갔나' 발표한 서영은 작가
(서울=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서영은 작가가 4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신작 장편소설 '꽃들은 어디로 갔나'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2014.2.4 yangdoo@yna.co.kr
 

"흘러간 시간을 회상할 때 많이 아프기도 하고 고통스러워서 몇 차례 덮으려 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을 반복하는 동안 객관화가 완전히 됐고 객관화를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이 따라줬기 때문에 작품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생의 가시밭길에 제 발로 들어간 그녀는 자신이 치렀던 인고의 시간이 떠오른 듯 간담회 도중 몇 차례나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그 관계 때문에 치른 대가가 혹독하기는 했지만 후회나 여한은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사랑은 목숨 같은 거야. 목숨을 지키려면 의지를 가져야 해"라는 김동리의 말이 주저앉고 싶은 자신을 몇 차례나 일으켜 세웠다고 소개했다.

 

"꽃은 아름다움의 절정이지만 식물에 꽃은 상처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꽃으로 나타낸 상처는 그것이 끝이 아니고 쓰러질 때 하나의 비애를 거쳐서 열매로 변환되는 것, 변환된 열매는 다시 씨앗으로 돌아가 그것이 꽃으로 순환되는 이런 흐름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런 면에서 사랑도 그 순환의 구조를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영은은 이 작품이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신작은 꽃이 져서 열매를 맺는 과정에 해당할 뿐이고 앞으로 펴낼 또 다른 권에서 그 열매가 다시 씨앗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담을 예정이다.

신작 막바지에 갑자기 3인칭 시점이 1인칭 시점으로 전환하는 것도 이후에 펴낼 작품을 위한 장치다.

 

"지금은 눈이 너무 아파서 그때까지 제 눈이 버텨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거기까지는 써야지만 꽃으로 상징되는 어떤 삶을 구도의 시작과 끝으로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녀는 "이 작품은 가장 아프게, 가장 나중까지 운 작가로서의 마음자세의 한 결과"라고 규정했다.

 

소설가 하성란 씨는 이 작품에 대해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가, 다리가 아파 무리를 따라가지 못하고 돌아온 아이가 쓴 이야기"라고 평했다.

서영은은 1968년 '사상계'에 '교(橋)'로 입선하고 1969년 '월간문학'에 '나와 '나''로 당선해 문단에 데뷔했다.

 

1983년 '먼 그대'로 이상문학상, 1990년에 '사다리가 놓인 창'으로 연암문학상을 받았다. '한국문학', '문학사상' 편집장을 지냈고 한신대 사회교육대학원, 추계예술대에 출강했다.

현재 이상문학상 등 여러 문학상과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신진 작가 발굴과 문학 발전에 힘쓰고 있다.

changyo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2/04 16:2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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