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섭 단편소설집 들고 돌아온 소리꾼 이자람

posted Feb 0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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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섭 단편소설집으로 돌아오는 젊은 소리꾼 이자람(사진제공=두산아트센터)
주요섭 단편소설집으로 돌아오는 젊은 소리꾼 이자람(사진제공=두산아트센터)
 
 

두산아트센터서 '판소리 단편선 주요섭'…"기막힌 여성심리 묘사에 빠져들었죠"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젊은 소리꾼 이자람(35)을 지켜보는 눈동자가 많다.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의 희곡을 판소리로 탈바꿈시킨 그의 '사천가'와 '억척가'는 매회 전석 매진과 기립 박수를 이끌어내며 국악계의 한 '현상'으로까지 떠올랐다.

 

대본, 작창, 연기까지 모두 해내는 그는 언제나 무대 위에서 관객을 저 끝까지 후벼 파고야 만다. 국악계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그의 이름이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이 '젊은 예인'의 새로운 창작 작업에는 더 많은 눈동자가 쏠릴 수밖에 없다. 브레히트 이후 그가 새롭게 꺼내 든 카드는 '사랑방 손님'으로 친숙한 작가 주요섭(1902~1972)이다.

 

주요섭의 단편 소설 '추물'(1936)과 '살인'(1925)을 판소리로 풀어낸 '판소리 단편선 주요섭'이 오는 20~22일 두산 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두산아트센터가 젊은 예술가들의 새로운 시도를 지원하기 위해 매년 개최하는 '두산 아트랩' 공연 중 하나로, 워크숍 형태로 관객과 먼저 만난 뒤 정식 공연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최근 두산아트센터 연습실에서 만난 그에게 왜 주요섭인지부터 물었다. 그가 내놓은 답변은 "이유를 잊게 할 만큼 너무도 재밌었다"는 것이었다.

 

"처음 주요섭을 선택했을 때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짧은 길이의 판소리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브레히트를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추물'을 읽으며 그 이유들을 다 잊어버렸어요. 어떻게 그 시절의 남성 작가가 이토록 여성 심리를 기가 막히게 써내려갔을까 신기했어요. 어디서 듣기도 어려운 이야기, 그러나 지금 이 시대의 나도 공감할 만한 그런 내용이었죠. 이유 같은 건 다 잊고 푹 빠져들었습니다."

 

주요섭은 1920~1940년대의 격변하는 한국 사회 속의 다양한 삶, 특히 여성의 삶을 섬세하고 맛깔나게 그렇지만 날카롭게 담아낸다. '추물'은 소설 속 표현대로 '서방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되는' 외모를 지닌 추녀 '언년이'의 이야기를, '살인'은 '열흘을 굶어서 사람이라도 잡아먹을 듯이 눈이 뒤집힌 에미 에비에게 보리 서 말에 팔려서' 결국 창부가 된 '우뽀'의 삶을 그린다.

 

1920~40년대의 이야기지만, 이를 토대로 '지금, 여기의' 우리들의 삶과 고민을 접목시키는 것이 전작에서 확인한 이자람의 특기. 그는 브레히트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국의 뚱뚱한 백수 처녀 '순덕'을, 전쟁의 한가운데 던져져 억척스럽게 변해가는 여인 '김억척'을 탄생시켰다.

 

그는 이번 작업에 대해서도 "현재진행형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특히,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것이 잘못 자리 잡혔고, 그것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발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사천가'와 '억척가'에서 남인우 연출과 힘을 합쳤던 그는 이번 작품에서는 극단 '양손 프로젝트'의 박지혜 연출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

 

"'양손 프로젝트'는 소설을 연극화하는 작업과 빈 무대에서 배우만이 살아있는 양식을 큰 줄기로 하는 팀이에요. 어떤 부분에서는 판소리와 무척 닮아있죠. 게다가 박 연출의 공연과 배우들을 평등한 관점에서 '지켜봐 주는' 방식에 완전히 반해버렸어요. 판소리 무대에서도 소리꾼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하고, 그 무대를 함께 '지켜봐 주는' 역할이 꼭 필요하죠."

 

그는 극단 '양손 프로젝트'에 '당신들의 아름다운 작업을 존중한다. 그 작업에 해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내용의 편지까지 남겨가며 박 연출을 잠시 "빌려왔다"고 말했다. 박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 공연의 전 과정에 관여하는 드라마트루그(극단 상주 비평가)를 맡아 이자람의 대본 작업에 객관성과 논리성 등을 촘촘히 엮어주고 있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작가와 작창자로만 나서고 직접 연기를 하진 않는다. 그가 이끄는 '판소리만들기 자'의 일원인 소리꾼 이승희, 김소진이 각각 '추물'과 '살인'에 출연한다.

 

후배 소리꾼들에게 그들만의 작품을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위해서도 약간의 숨 고르기가 필요했다고 말하는 그다.

그는 "그간 두려움이 너무 컸다"고 털어놓았다. 커다란 빛이 그만큼의 그림자를 만들어내듯, 전작의 큰 성공은 그에게 그만큼의 부담으로 다가왔다.

 

"너무도 많은 관심이 어떤 식으로든 저 자신을 특별한 사람으로 여기게 하더라고요. 난 대단해, 아니야 난 안 대단해, 난 엄청난 걸 이뤘어, 아니야 뭘 이뤘다고, 난 이것을 감당해야 해, 왜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해, 등등이요. 아주 '생쇼'를 한 거죠.(웃음) 그래서 인터뷰도 오랫동안 안 했어요."

 

숱한 자기연민과 고민 끝에 그가 도달한 답은 "그냥 연습하고 작업하며 열심히 사는 것"이었다. "그게 내가 가장 건강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하루를 꽉꽉 채워 보낸다. 대본 작업만으로도 충분히 정신이 없을 텐데, 오후 6시부터는 밴드 연습시간을 갖는다. 그는 인디밴드 '아마도 이자람밴드'의 보컬로도 활약 중이다. 오는 3월부터는 뮤지컬 '서편제'에도 출연해 아버지에 의해 눈을 잃은 '송화' 역을 연기한다.

 

이토록 다재다능한 그는 이번 주요섭을 시작으로 계속 '판소리 단편선'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이번에는 후배 소리꾼들을 위한 작품을 쓰고 있지만, 다음에는 자신을 위한 작품도 써보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앞으로 작업이 벌써 궁금해진다.

"다음 작품이요? 아직 비밀인데…(웃음). 제 책상에 지금 딱 두 가지 작품이 꽂혀 있어요. 톨스토이 단편집이랑 '라쇼몽'을 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집이요. 힌트가 될까요? 하하."

sj9974@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2/02 07:1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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