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광개토왕비-한민족의 옛 기강 느낄 수 있어

posted Jun 1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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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광개토왕비-한민족의 옛 기상 느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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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전성기를 말해주는 광개토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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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총과 무덤 내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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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광개토왕의 아들, 장수왕의 능


광개토왕비는 한민족 역사 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장수왕(광개토왕의아들)이 서기 414년에 세운 것으로서 응회암(凝灰岩) 재질로 높이가 약 6.39m, 면의 너비는 1.38~2.00m이고, 측면은 1.35~1.46m로 면은 고르지 않고, 네 면에 걸쳐 1,775자가 화강암에 예서로 새겨져 있으며, 그 중 150여자는 판독이 불가하다.


이 비석은 조선 후기까지 금나라 황제의 비(碑)로 알려져 있었는데, 1880년대 이후 일본인학자에 의해 발견되었다.

원래의 비명은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비(國崗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婢)이며, 현재는 중국 지안현 통구에 유적지로 봉안중이며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가고 있다.


비문의 내용을 잠시 보면 세 부분으로 나뉘어 첫째 부분은 고구려의 건국부터 광개토왕까지의 역사를 묘비 제1면 1행에서 6행까지 에서, 둘째 부분은 광개토왕의 정복 전쟁을 기록하여 제1면 7행부터 3면 8행까지, 셋째 부분은 릉비의 건립 및 수묘인에 관해 제3면 8행부터 제4면 9행까지 기록하고 있다.


현장은 중국 정부에서 잘 관리하여 최대한 그 보존을 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으며, 단지 장군총과 장수왕릉 등 오랜 세월의 풍화로 유물이 톼화 돼 가고 있는데, 이에대한 보다 더 과학적인 보수와 보존책이 필요하다.


중국에선 광개토왕비를 호태왕비(好太王碑)로 부른다.


[스포츠닷컴 문화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