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역사박물관(관장 주진오)이 제주4‧3 70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특별전 ‘제주4‧3 이젠 우리의 역사’를 개최하며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연계 행사로 4‧3토크 콘서트를 개최해 4·3이 대한민국의 보편적 역사로 다가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2일 오후 3시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층 중앙홀에서 양조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과 김종민 전 4‧3위원회 전문위원이 참여한 토크 콘서트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 - 제주4‧3 우리의 역사가 되기까지>가 제주국제화센터 송정희 대표의 사회로 열렸다.
이번 행사는 박물관이 우리 현대사의 주요사건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들을 초청해 올해 다섯 번에 걸쳐 진행할 토크 콘서트 기획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의 첫 시작으로, 이날 양 이사장과 김 전 위원은 1988년 제주지역 유일 언론사였던 제주신문에서 처음 시작된 4‧3특별취재반에 함께한 순간부터 4·3특별법 제정과 진상조사보고서 작성 등 4·3의 진실이 드러나고 우리의 역사로 보듬어지기까지의 여정과 고난,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민주화의 봄은 언론계에도 퍼져나갔고, 지하에 갇혔던 제주4·3을 본격적으로 꺼내들어야 한다는 의지로 시작된 보도는 1989년부터 1999년까지 10년 동안 무려 5000명이 넘는 4·3증언자 채록과 500회 가까운 연재로 이어져 한국언론사의 신기록을 세웠다.
양 이사장은 “처음 취재할 때는 거의 입을 닫았다. 그런데 그런 의식을 변화시킨 사건이 있었는데, 1988년 12월부터 시작된 광주 5‧18청문회였다. 그 장면을 텔레비전을 본 제주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우리가 겪었던 일에 비하면 저것은 사건도 아니었다’면서 말문을 열었다”고 회고했다.
김 전 위원은 ‘가장 기억에 남는 4·3증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8살에 경찰에 의해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5살과 3살 동생을 한꺼번에 잃고 집마저 불타 시신도 수습하지 못한 분이 계셨다”며 “그런데 그분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내 나이가 15살이었다면…’이었고 그 의미가 15살만 됐어도 가족들을 그렇게 보내지 않았을 테고, 하다못해 불에 탄 가족들의 시신이라도 수습할 수 있었다는 의미라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다”고 증언했다.
양 이사장과 김 전 위원은 4·3의 정명에 대해 “우리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보면 대개 열흘 안팎에 벌어진 사건이 대부분이지만 제주4·3은 무려 7년 7개월간 제주사회 전체에서 벌어진 일이다. 처음에는 탄압의 국면이 있었고, 항쟁의 국면이 있었고, 초토화시기가 되면 탄압이니 항쟁이니 하는 말을 무색케 하는 수난의 국면이 펼쳐졌다. 이 모든 국면을 포함할 수 있으면서도, 가족사를 모두 넘어서는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라야 4·3의 정명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전 위원은 “올해가 4·3 70주년이다. 당시 갖난 아기가 70살이 되고 10살 소년이 80살이 되는 시간이 지났다. 여러분들이 제주에 오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제주의 해안가, 중산간 숲길, 올레는 굉장히 아름답다. 이 아름다움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4·3 당시 깡그리 불타버려서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폐허를 열 살 소년 소녀들이 고사리 같이 여린 손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고 지켜온 아름다움이다. 4·3 그 자체는 상당히 참혹했으나 극복의 역사는 제주의 자랑스러운 역사이다”고 70주년을 맞는 4·3을 평가했다.
양 이사장은 마무리 발언에서 "4·3이 70주년을 맞으면서 광화문 문화제가 열리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전시를 하고, 모든 종교들이 화해와 치유의 운동에 같이 참여해줬다"며 "4·3 배지도 처음에 4만 3천개를 만들었는데 지금까지 68만개가 배포될 정도로 달라졌다"며 4·3의 전국화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70주년 4·3추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안내한 양 이사장은 “문 대통령이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자’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상당한 힘을 얻었다”며 “4·3의 해결을 위해 미국의 책임 문제 등 남은 과제를 푸는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날 토크 콘서트에서는 4‧3 관련 영상도 함께 소개되었는데, 다랑쉬굴 발굴 현장과 제주공항 유해발굴 사진 등이 소개될 때에는 여기저시서 탄식이 나왔다. ‘북한공산당의 사주아래’라고 잘못 기록된 국사 교과서를 수정하고, ‘오라리사건’ 취재를 통해서 미군정의 조작을 파헤치는 과정, 보수세력의 4‧3역사 부정 소송을 당당히 대응해서 승소하는 과정을 소개할 때에는 박수도 터져 나왔다.
이날 주진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장은 "저희 박물관이 4‧3 70주년 특별전을 제주 이외 지역에서는 처음 개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이 전시를 한 이후 관람객이 평소 보다 두 배 늘었다"며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4‧3과 같은 전시를 한다는 것을 보면서 박물관이 국민들에게 다가가고 아픔의 역사를 공유하려는 시도로 생각해 주시는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