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화두는 ‘국민 일자리
와 개헌’
‘국민’과 ‘일자리’, 즉 먹고사는 경제 문제가 새해 대통령 기자회견을 가득 채웠다. 지난해 2차례 국회 시정연설과 비슷한 추이다.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올해 첫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국민’과 ‘일자리’였다. ‘국민’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64회 등장했고, 국민 다음으로 ‘일자리’가 14번 사용됐다.
지난해 청년 실업률이 9%로 사상 최대치를 찍고, 또 새해 벽두부터 최저임금 급상승에 따른 채감 물가 상승과 일자리 단절이 사회 이유로 떠오르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다. ‘지원’(11회) 이나 ‘소득’(6회) 같은 단어도 마찬가지다. 영세 자영업자와 소기업을 중심으로 채용을 줄이는 움직임을 인식,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자영업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가 다양한 대책을 마련중임을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의 상징 단어인 ‘혁신’도 9차례 등장했다. 혁신의 대상으로는 ‘재벌’(2회)와 ‘적폐’(2회)가 함께했지만 그 빈도는 높지 않았다. 반면 동반자라는 의미가 담긴 ‘기업’이 9차례 사용됐다. 일자리 창출의 핵심인 기업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다. 정치 사회적 메시지로는 ‘개헌’과 ‘안전’이 꼽혔다. 모두 9차례 등장한 ‘안전’은 세월호 참사로 등장한 새 정부에서 비슷한 유형의 재천 화제 참사가 발생한 것에 대한 반성과 함께했다.
남북관계도 ‘남북’와 ‘북핵’, ‘한반도’ 등과 함께 강조됐다. 모두 10회 언급된 ‘한반도’는 평화와 비핵화를 강조했다. 최근 물꼬를 튼 남북대화 움직임과 별도로, 북한의 비핵화가 한반도 정세의 핵심이라는 의미다. 한편 문 대통령은 지난해 2차례 국회 연설에서 일자리와 경제를 가장 많이 언급했다. 추경안 처리를 당부하는 첫 시정연설에서는 일자리가 44회, 청년을 33회 사용했다. 정기국회 개회와 함께 열린 11월 시정연설에서는 ‘혁신’이라는 새 단어와 함께 ‘성장’을 17회 언급하며 경제의 비중을 높혔다.
개헌 이야기에 대해 문 대통령은 오는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하겠다는 약속에 변함이 없음을 천명했다. 그러면서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투표를 하려면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국회가 책임 있게 나서서 개헌 합의를 이뤄주기를 촉구한다"며 "필요하다면 정부도 국민의 의견을 수렴한 국민 개헌안을 준비하고 국회와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는 최대한 국회의 합의를 기다리겠으나, 국회 합의가 여의치 않다고 판단되면 정부가 나서서 개헌안을 만들어 발의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앞서 지난해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국회 개헌특위에서 국민 주권적 개헌방안이 마련되지 않거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그때는 정부가 개헌특위의 논의 사항을 이어받아 자체적으로 특위를 만들어서 개헌안을 마련할 수도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6월 지방선거까지 불과 5개월밖에 남지 않은 데다 국회 논의가 여전히 공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날 문 대통령의 발언은 지난해 100일 기자회견 때보다 정부 개헌안 마련 가능성을 좀 더 강하게 시사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애초 지방선거 때 개헌투표를 함께하자는 것은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 등 지난 대선 때 주요 후보들의 공통 공약이기도 했다. 다만, 홍 대표는 최근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투표를 하겠다는 공약을 뒤집고 국회가 합의해 연말까지 개헌안을 마련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는 지난 대선에서 모든 정당과 후보들이 약속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한국당이 지난 대선공약을 번복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도 보인다.
또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길"이라며 "이번 기회를 놓치고 별도로 국민투표를 하려면 적어도 국민의 세금 1천200억원을 더 써야 한다"며 경제적 이유도 내세웠다. 정부 개헌안을 마련할 경우 국회에서 어느 정도 합의된 사안 위주로 1차 개헌을 하고, 추후 2차 개헌을 하는 '단계적 개헌'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와 관련해 정해구 정책기획위원장은 지난달 “문 대통령이 단계적 개헌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문 대통령은 '합의되는 데까지 (개헌을) 하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며 "국회에서 정부형태 같은 것은 합의가 안 되는 가능성도 염두에 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문 대통령이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자치분권과 기본권은 합의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합의되는 데까지 1차적으로 (개헌을) 하고, 정부형태 같은 문제는 선거제도 문제도 있으니까 나중으로 미루든가 하는 2차 개헌도 생각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개헌 드라이브와 함께 주목할 부분은 문 대통령이 신년사의 첫머리에서 '삶의 질 높이기'를 언급한 점이다. 이는 지난해 국정농단의 여파로 무너진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아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국민적 염원에 따라 적폐를 청산하는데 진력했다면, 집권 2년 차인 올해는 삶의 질을 끌어올려 국민이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 문 대통령은 지난 연말부터 새해 국정운영의 최우선 목표를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경제 정책에 두겠다고 천명해 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정책기획위원회 출범식 축사를 통해 "모든 활동의 초점을 국민의 삶의 질 개선과 더불어 잘 사는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맞춰달라"며 "정부 정책이 국민의 삶을 바꾸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또 새해 무술년(戊戌年) 신년사에서도 "국민의 삶의 질 개선을 최우선 국정 목표로 삼아 국민 여러분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변화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삶의 질 개선을 위한 경제 정책을 가장 먼저 언급한 데 이어 최저임금 인상,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지급 등 손에 잡히는 변화들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면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경제 정책에 포커스를 맞추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삶의 질 개선과 직결된 경제 정책이 신년 기자회견의 첫머리에 배치된 것은 문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삶의 질 높이기는 문 대통령이 청와대 내에서도 강조하고, 국무위원들을 만나서도 강조하는 부분"이라며 "결국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언급하기로 하셨다"고 설명했다.
스포츠닷컴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