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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한 부실시공된 아파트 모습(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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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시작 때 중학생 아들, 이젠 서른살"…늑장 재판 전형
일부 승소 판결 나왔지만 '상처뿐인 영광'
(광주=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 아파트 하자와 관련, 시영아파트 주민들이 분양권자인 광주시를 상대로 낸 소송이 14년이 지나도록 '진행 중'이다.
소송 제기 당시 원고만 600명 이상인 사건인데다 하자 감정, 대법원 파기환송 등 복잡한 절차가 이어진 점을 고려하더라도 '늑장 재판'의 전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광주고법 민사 1부(이창한 부장판사)는 16일 광주 한 시영아파트 주민들이 광주시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시는 아파트 관리단에 4억6천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부실시공으로 인한 하자 책임을 일부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고인 주민들은 승소에도 웃을 수 없는 형편이다.
배상 인정액이 청구액(77억여원)이나 하급심(20억2천여만원) 인정액에 턱없이 못 미치는 이번 판결은 처음 소장을 접수한 지 14년 가까이 만에 나온 것이다.
그동안 과정은 이렇다.
▲2000년 6월 8일 소장 접수 ▲2003년 9월 25일 1심 판결(원고 일부 승) ▲2003년 11월 25일 항소장 접수 ▲2009년 9월 30일 항소심 선고(원고 패) ▲2009년 11월 11일 상고장 접수 ▲2012년 5월 24일 (광주고법으로) 파기환송.
주민 664명은 애초 무단 설계변경으로 지하주차장, 어린이 놀이터가 사라지고 부실시공으로 바닥 패널, 천장, 오수관 등에 문제가 생겼다고 주장하며 100억여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설계변경으로 인한 피해는 인정되지 않았지만 주민들은 소장을 접수한 지 3년 만의 1심 판결에서 20억2천여만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일부 승소 판결에 불복해 주민들은 곧바로 항소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재판 지연의 '진수'를 보여줬다.
항소심 접수일은 2003년 11월 25일이었지만 선고일은 2009년 9월 30일이었다. 단일 사건 재판에 무려 6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재판부는 하자 감정 검증으로 시간을 지체하고 관련 사건의 헌법재판소 위헌 소송 결과를 지켜보느라 2년 4개월을 흘러보냈다.
법관 정기인사로 재판부도 수차례 바뀌었다. 그나마 결론도 원고 패소로 뒤집혔다.
아파트 관리 권한이 광주시에서 광주도시공사로 넘어가 광주시의 배상 책임도 없어졌다는 취지였다.
대법원은 다시 3년 뒤 채권자 동의 없이 관리권을 이양한 근거가 된 조례는 무효라며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광주고법은 파기환송 취지대로 지난 15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주민들에게는 '상처뿐인 승리'였다.
그동안 소송에 지치고 이사한 주민들이 늘어나면서 재판에 참여한 주민은 664명에서 226명으로 줄었다.
주민들은 판결문을 받아보는 대로 상고를 검토할 방침이다. 재판은 만 14년을 채우고 15년까지 갈 수도 있다.
소송에 참여한 한 주민은 "소송 시작할 때 중학생이었던 큰아들이 이제 서른이 됐다"며 "재판 지연에 대한 불만도 있었지만 그랬다가 소송에 질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와 눈치만 봐야했다"고 말했다.
소송에 관여했던 한 변호사는 또 "각 심급을 거치면서 일부 재판에서는 하자가 있는지 없는지 실질적인 심리는 소홀히 하면서 시간만 보내고 갑작스럽게 결론이 났다는 인상도 받았다"며 "너무 늦은 권리구제는 그 자체로 권리구제가 아니라는 말처럼 일련의 재판은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고 비판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4/01/16 11:21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