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선 들국화…전인권 "절실해지면 다시 피어나겠죠"

posted Jan 1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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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故주찬권 1주기 추모 공연 계획…"전인권밴드로 음악 활동"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들국화는 새 앨범이 팬들과 함께 즐길 '축제'가 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27년 만에 원년 멤버가 뭉친 앨범 '들국화'는 발매 한 달여를 앞둔 지난 10월 주찬권(드럼)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슬픈 잔치가 됐다.

밴드에서 전인권(보컬·60)과 최성원(베이스·60)의 투닥거림을 조율해준 주찬권의 빈자리는 꽤 컸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들국화의 잰걸음도 멈춰버렸다.

 

"앨범 내고서 이렇게 돼 허전하고 허탈한 기분이에요. 아무렇지도 않던 (주)찬권이가 갑자기 떠나니 빈자리가 크죠. 그 친구가 없으니 저와 (최)성원이가 어색해졌어요. 찬권이 삼우제(三虞祭) 때 얘기하며 뜻이 다른 걸 알게 됐고 이후 못 만났네요."

 

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한 전인권은 담담하지만 가감 없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갈색 선글라스 사이로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팀 해체라고 대놓고 얘기하진 않았지만, 속내와 상황은 충분히 읽혔다.

"해체란 말은 불편해요. 이별은 더 싫고요. 지금은 남은 둘이 팀에 대해 절실하지 않아요. 힘들고 절실하면 우린 빛날 정도로 어울리는데…. 하지만 일회용으로 돈 좀 벌자고 그럴(활동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우리가 음악적으로 다정해지는 것도 현재로선 어렵고요."

 

음악계에선 '한국의 비틀스'로 불리는 들국화에서 전인권과 최성원을 존 레논(보컬 겸 기타)과 폴 매카트니(보컬 겸 베이스)에 비유해왔다. 레논과 매카트니에겐 불화설이 따라다녔지만 매카트니는 지난해 인터뷰에서 이를 일축했다.

 

전인권도 "밴드는 사소한 것부터 음악적인 견해 등 안 다투는 팀이 없다. 싸우면서도 붙어서 해내는 게 밴드"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린 구심점을 찾아야 하는데 그걸 못 찾고 있다"며 "언젠가 둘이 친해질 수 있는 것이고 무지 절실해질 수도…. 오는 10월 찬권이 1주기 추모 공연을 위해 8~9월께는 (제주에 사는 성원이를) 만나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 "3~4월부터 전인권밴드 활동…공연하고 신곡도 발표"

 

들국화는 그간 멤버들이 각자 음악을 해온 터라 전인권은 젊은 친구들과 '전인권밴드'를 결성해 이르면 3~4월께부터 활동을 이어간다.

 

들국화 앨범에 대한 후배들과 팬들의 아쉬움이 커 작은 공연장에서 이번 신곡도 노래할 계획이다. 또 자신이 만들어둔 미발표곡 8곡 중 남미 록 스타일의 밝은 곡 '사람답게'를 전인권밴드의 싱글로 낼 계획도 갖고 있다.

 

"멤버들은 25살, 30살 차이가 나요. 요즘 젊은 친구들의 실력은 눈부시죠. 전인권밴드의 공연에선 친한 후배인 원더걸스 예은, 김그림과 '잼'(Jam·즉흥연주)을 하듯 놀아보고 음악적인 교류가 깊은 게이트플라워즈의 염승식도 종종 나타날 겁니다. 후배들은 노련미와 감성은 우리와 다르지만 힘이 있습니다."

 

그는 지산록페스티벌(2012), 펜타포트록페스티벌(2013) 등에서 공연하며 젊은 세대와의 교감에 매력을 느꼈다. 또 과거의 들국화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아 이들에게 젊은 기운을 불어넣고 싶다고도 했다.

 

"지산에서 '사랑한후에'를 부를 때 '젊은 친구들이 좋아할 수 있는 아픔이 있구나'란 걸 느꼈다. 펜타포트에서는 어린 친구들이 들국화의 과거 곡도 다 알아 놀랐어요."

 

◇ "들국화 새 앨범은 한마디로 감성과 경험"

 

들국화의 이번 앨범에는 후배들이 넘보지 못할 관록이 만개했다. 지난해 조용필이 19집에서 동시대 트렌드를 흡수했다면 들국화의 음악은 1985년 1집에 뿌리를 뒀다.

 

전인권은 "앨범을 한마디로 말하면 감성과 경험"이라고 강조했다.

 

애초부터 세 멤버가 어떤 방향으로 해보자는 건 없었다. 각자 곡을 쓰고 편곡했는데 '한길'로 통했다. 전인권은 "우리가 '꼬장'을 타고났는데 그 근본이 같기 때문"이라고 웃었다.

 

합주 형태로 녹음을 진행했고 정원영(키보드), 함춘호(기타), 김광민(피아노), 한상원(기타) 등이 힘을 보탰다. "정원영의 역할이 컸다. 밴드 스타일의 음악에서 그는 최고의 실력자"라고 극찬했다.

 

신곡과 과거 히트곡 등 19곡이 담긴 앨범에서 '걷고, 걷고', '노래여 잠에서 깨라', '하나둘씩 떨어져' 등 다섯 곡의 신곡은 그늘졌지만 거침이 없다. 초기 음악이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파괴력을 보여줬다면 이번엔 지난 30년간 켜켜이 쌓인 인생의 단층이 보인다.

 

'노래여 잠에서 깨라'는 전인권(작사)과 최성원(작곡)의 합작품.

 

전인권은 이 곡의 노랫말에 대해 "내가 마누라도 잃고 카지노에서 돈도 잃고 아무것도 없을 때 마누라가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많은 사람이 내 노래를 다시 느꼈으면 좋겠다고 쓴 가사다. '사랑한후에'는 사랑 노래로 볼 수 없으니 이 곡은 처음 쓴 사랑 노래"라고 말했다.

 

주찬권이 작곡하고 전인권이 가사를 쓴 '하나둘씩 떨어져'는 녹음 당시 후렴구를 완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주찬권이 떠난 후 전인권은 '그대 어디로 갔나, 숨은 듯 어제오늘 (중략) 어디에 있나, 난 울고 있을 뿐'이란 가사를 채워넣었다.

 

김민기의 곡을 리메이크한 '친구'는 주찬권을 기리며 삼청동 자택에서 다시 녹음했다.

 

그는 "난 그간 이 곡을 반항적인 노래로 생각했다"며 "시대 저항의 느낌이 강해 '삑사리'(음이탈)도 내며 불렀는데 친구가 떠나서인지 다른 감정으로 다시 불렀다. 진짜 마음이 아플 때 담담해지지 않나"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사람은 떠났는데 영혼이 남아있다'는 어느 시구처럼 찬권이가 간 다음 날 탑골공원에서 설렁탕을 먹는데 내가 찬권이 흉내를 내고 있었다"며 "더 먼저 떠난 (들국화 원년 멤버로 1997년 캐나다에서 교통사고로 별세) 허성욱에 대한 기억도 요즘 많이 떠오른다"고 덧붙였다.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은 '걷고, 걷고'를 꼽았다.

"고생해보니 절실함이 생기더군요. 고생을 피하지 않으니 오히려 편하고 재미나요. 이 노래 가사처럼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 모두 어쩌면 축복일지 몰라'요. 슬픈 얘기지만 희망적이기도 하고."

 

놀라운 대목은 수차례 마약으로 구속돼 옥고를 치르며 갈라지고 탁해졌을 법한 전인권의 보컬이 한층 단단하게 터져 나온다는 점이다.

 

"2006년부터 노래를 그만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간간이 돈을 벌려고 노래했지만, 서서히 노래를 안 해 5년가량 쉬었죠. 그러면서 모든 게 달라졌어요. 특별한 비결은 없고 마약을 끊어서인가? 하하. 아니 간절해졌기 때문이죠. 옛날에는 공연하며 좋은 걸 몰랐는데 비로소 노래하며 희열을 느껴요. 자신감도 생겼고요."

 

◇ "할아버지 된 게 좋아…음악인은 매일 연습하는 김연아 돼야"

 

슬하에 1남 1녀를 둔 전인권은 오는 9월 환갑을 맞는다.

그는 "환갑이 올해인가? 옛날부터 그랬지만 한두 살 낮춰주면 좋지"라며 웃었다.

 

지난해 2월 첫 손녀를 얻은 그는 "할아버지가 된 게 너무 좋다. 손녀가 아주 예쁘다. 그래서 딸이 손녀를 데리고 1주일에 최소 두 번을 찾아온다. 딸은 아버지가 음악 하는 게 힘들어 보였는지 손녀가 음악 하는 걸 안 좋아하더라"고 했다.

그는 이날 젊은 세대에 뒤처지지 않은 '반전' 일상도 들려줬다.

 

"스마트폰으로 매일 들국화를 검색해 기사를 본다", "사위가 알려줘 음원사이트에서 음악을 듣는다", "아이튠즈에 들국화 새 앨범을 발매했는데 자메이카에서도 '좋다'는 글이 올라왔다", "유튜브에 내놓았을 때 뒤지지 않는 밴드 사운드여야 한다"….

 

돌출 발언과 기행 등으로 대중의 편견이 있던 그는 가족들과 생활하며 무척 안정돼 보였고 규칙적인 생활로 2㎏가량 체중 감량도 했다.

 

"전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어린 애죠. 하하. 요즘은 오후 4시에 저녁을 먹고 오후 8시에 취침해서 새벽 2~3시에 일어나요. 다이어트 때문에 너무 배가 고파 밤만 되면 괴롭거든요. 새벽에 일어나면 연습을 하죠. 노래를 한다기보다 세 개로 된 비트를 계속 들으며 감각을 익히는거죠."

 

인터뷰에 이은 저녁 식사 자리에는 전인권의 곁을 묵묵히 지켜준 아내도 함께했다. 그는 금주 중이라며 아내가 따라주는 콜라를 마셨다.

 

"음악 하는 사람은 건강해야 하고 머리도 좋아야 해요. 또 모두 김연아가 돼야 합니다. 김연아는 4년마다 찾아오는 한 번의 승부를 위해 매일 같은 걸 반복하며 연습하잖아요. 우리도 그래야 음악이 후퇴하지 않고 세계에 나갈 수 있다고 장담해요."

 

그리고는 미국 유명 클럽에서 오디션을 보고 공연하고 싶다는 생각도 밝혔다.

그는 "모든 매너리즘을 버리고 세계 시장에 내놓아도 꿇리지 않는, 진짜 좋은 음악을 하는 게 꿈"이라며 "세계적인 게 아니면 '쪽팔린다'. 그게 들국화다운 것"이라고 했다.

 

이어 "들국화를 한 걸 후회한 적이 없다"며 "방탕할 때는 들국화 생각을 안했지만 들국화가 내게서 멀어진 적도 없다. 들국화는 나의 존재 자체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mimi@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4/01/11 06:0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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