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공정함이 아닌 인재를 원한다
블라인드 채용이 배경과 연줄이 작용하지 않는 공정한 채용이라는 인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이를 도입한 민간기업들의 방점은 금수저 타파나 정의사회 구현에 찍혀 있지 않다. 그보단 화려한 스펙에 가려 놓칠 수 있는 인재, 회사에서 더 잘 일할 사람을 뽑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지난달 처음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한 구인구직 플랫폼 기업 사람인의 문경철 인사팀장은 기존의 채용 방식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가 고민한 결과였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 무분별한 스펙 쌓기 경쟁으로 인한 신입사원들의 고학력 스펙이 업무 성과와 직결되지 않는다는 문제제기가 계속 나왔습니다. 특히 요즘 모든 업계에서 공통적으로 입사 1년 내 퇴사율이 30% 가까이 될 정도로 이직률이 높아 인재를 어떻게 뽑아야 하느냐는 고민이 커졌죠.” 이상돈 센터장은 “학력만 토대로 사원을 뽑는다면 스티브 잡스나 토머스 에디슨 같은 인재는 설사 지원을 해도 뽑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주요 정보통신(IT) 기업들 사이에 블라인드 채용 열풍이 불고 있는 것도 학력과 실력 사이의 낮은 상관관계를 절감한 결과였다. 기존 그룹 공채가 바다에 그물망을 던져 한꺼번에 물고기 수백 마리를 건져 올리는 ‘그물망 형 채용’ 이라면 이제는 필요한 직무에 능력과 기술을 지닌 인재를 콕 찍어 뽑는 ‘작살 형 채용’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채용 시장에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실제로 경험한 이들에게 블라인드 채용은 장점이 도드라진다. 장기 효과를 판단할 근거는 아직 부족하지만, 우선 합격자들의 배경이 다양해졌다. 지난해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한 국토정보공사의 경우, 올해 입사자 93명의 출신 대학은 총 59개로 2013년 36개 학교에서 73명의 신입사원을 배출한 것보다 다양성이 현격히 증가했다. 입사지원서에서 사진, 주소, 학력, 어학성적 등을 빼 스펙에 의한 진입 장벽을 낮추는 대신 기술자격증이나 직무 관련 지식과 경험 등으로 평가한 결과다. 2015년부터 일부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한 롯데그룹의 경우 유도선수 출신 프로그래머(롯데정보통신), 사회체육학을 전공한 광고기획 직무(대홍기획), 조선해양공학을 전공한 영화관 운영 직무(롯데시네마), 가정교육학 전공 홈쇼핑 PD(롯데홈쇼핑) 등 과거보다 훨씬 다양한 배경의 신입 사원이 들어왔다.
스포츠닷컴 이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