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소재문화재재단, 기업 도움으로 美박물관에서 기증받아
미국 전시중 태평양전쟁 때 美정부가 압류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가로·세로 각 3m가 넘는 18세기 조선후기 대형 불화가 약 100년에 달하는 해외 유랑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미국 버지니아주 노포크에 소재하는 허미티지박물관(Hermitage Museum & Gardens) 소장 조선시대 비단 채색 불화 1점을 문화재지킴이 미국계 기업인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의 도움을 빌려 돌려받았다고 7일 말했다.
재단은 이날 오전 국립중앙박물관 사진실에서 불화를 언론에 공개했다.
불화는 크기가 318.5㎝×315㎝의 대형이라 사찰 대웅전에서 후불탱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불화는 설법하는 석가모니 부처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그려 넣고 10대 제자들인 아난존자와 가섭존자를 석가모니 앞에 강조해 넣은 석가삼존도 형식이다.
조선불화 전문가들 분석에 의하면 이 불화는 석가모니 부처의 광배나 대의(大衣) 문양 등이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 양식이고, 삼존의 구도라든가 보살에 드러난 보관과 영락 장식을 볼 때 1731년 제작한 송광사 응진전 석가모니불도와 매우 유사한 점으로 미루어 제작시기는 1730년대로 추정된다고 재단은 덧붙였다.
하지만 종래 석가삼존도와는 확연히 다른 양식을 보이는 것으로 평가된다.
예컨대 기존 불화에서 아난존자와 가섭존자가 석가모니 부처 좌우 상단부에 작은 모습 등으로 묘사되는 것과는 달리 이 불화에서 두 사람은 석가모니 부처 하단 전면에 크게 부각된 데다 서로 대화하듯 한 모습으로 표현됐다.
조선불화 전문가인 김승희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과장은 "이 불화는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파격 도상이라 미술사적으로도 희귀할 뿐 아니라 학술적 가치도 매우 높다"면서 "아난존자, 가섭존자, 석가모니 부처의 좌우 협시불 등 등장인물의 섬세한 표정 묘사 등은 일찍이 조선 불화에서 보기 드문 수작에 속한다"고 말했다.
이 불화는 일제 강점기 초반 국내 어느 사찰에서 무단으로 뜯겨 일본으로 반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미술품상 야마나카상회에 넘겨졌으며 일부분에 대해서는 수리와 보수가 있던 것으로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어 불화는 1942년 미국 오하이오주 톨레도박물관(The Toledo Museum of Art)에 잠시 전시되면서 미국 내 미술관과 미술품 시장을 떠돌았다.
그러다가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개시된 태평양전쟁기 미국 정부가 미국 내 일본 재산의 몰수를 위해 설치한 '적국자산관리국'(Office of Alien Property Custodian, APC)에서 야마나카상회 소장 모든 미술품을 몰수하면서 이 불화 또한 같은 처지로 내몰린다.
미국 정부는 이렇게 몰수한 미술품을 모두 경매에 넘겼으며, 불화 또한 경매가 6천500달러에 1943년 뉴욕 경매시장에 등장했다.
유찰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1944년 최종 낙찰가 450달러에 허미티지박물관에 팔려간 것으로 재단 조사 결과 드러났다.
재단은 "식민지 시절 뜯겨진 불화가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제2차 세계대전의 회오리에서 일본의 적산(敵産·적국의 재산)으로 낙인찍혀 미국 정부에 넘어간 뒤 미국의 박물관에 팔려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불화는 전시공간을 찾지 못한 채 보관되다가 1954년에는 버지니아주에 소재하며 현재는 크라이슬러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꾼 노포크박물관(Norfolk Museum of Arts and Science)에 20년 장기 대여 형태로 전시되기도 했다.
1973년 허미티지박물관에 돌아온 불화는 둥글게 말려 천장에 매달린 채 40년간 보관돼 있었다.
그러다가 2011년 버지니아주박물관협회가 이 불화를 '위험에 처한 문화재 10선'에 선정하기도 했으며, 이 와중에 재단의 국외문화재 조사작업에서 존재가 확인하고, 이어 반환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반환 협상은 문화재청의 '한 문화재 한 지킴이' 사회공헌활동에 동참한 미국계 기업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Riot Games Korea)가 허미티지박물관에 박물관 운영기금을 기부하기로 함으로써 성사됐다고 재단은 전했다.
안휘준 이사장은 "반출 문화재가 해당 국가의 소장기관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뜻있는 기업의 후원과 함께 기증 형식으로 반환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며, 이는 앞으로 국외 문화재 반환 및 환수의 한 모델이 될 수 있다"면서 "불화는 마땅한 대상기관을 선정해 기증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재단은 이번 불화 조사과정에서 미국정부에서 강제압류한 야마나카상회 목록 일부를 확인했다면서 이에 대한 추가 조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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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4/01/07 10:1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