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과 남.북.러 협력의 전망-
북 나진항, 유라시아 넘어 미래로 가는 관문
[류재복 대기자/스포츠닷컴]
‘북한 나진항을 통하는 길이 대륙으로, 남북화해로, 미래로 향하는 길이다.’ 지난 12월 20일 오후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사장 임동원)과 한겨레신문사가 한국교통연구원(원장 김경철)과 함께 연 ‘2014 나진-하산 교통·물류협력 포럼’의 결론을 요약한 말이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과 남북한·러시아 협력의 전망’이라는 부제 아래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이 포럼에서 참석자들은 지난달 13일 한-러 정상회담을 통해 현실화한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대한 남한 기업의 참여’가 많은 가능성을 지닌 사업이라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구상 실현뿐 아니라 남한 경제의 새로운 동력 창출이나 남북한 화해에서도 중요한 구실을 할 것이라는 얘기다. 다만 사업 초기의 불안정성 등을 제어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 연구기관들이 구체적인 로드맵을 짜고, 정부에서는 남북협력기금을 활용하는 등 국가적 차원의 지원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날 토론에 앞서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오늘 이 포럼은 내년 이후 우리가 어떻게 유라시아 대륙으로 나아가고 어떻게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강화 해 나갈지를 논의하는 자리”라고 말하면서 “대륙으로 이어지는 교통과 물류는 현재의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푸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축사에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도 “박근혜 정부가 취임 1주년을 맞고 있지만 남북관계는 한 치의 진전도 없이 현재의 계절처럼 엄동설한에 떨고 있다”면서 “오늘 국내 전문가들을 모시고 토론을 펼치는 이 행사가 남북 간의 화해와 협력을 다시 열어가는 기회의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동영 전 장관은 또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성공에는 5·24조치 해제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한국철도공사와 포스코, 현대상선이 참여하면서 대기업에 대한 5·24조치는 풀렸으나, 1300여 대북사업 관여 중소기업은 여전히 고사하는 기업이 늘고 자살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 전 장관은 박 대통령이 5·24를 해제하면 국내 정세 안정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경철 한국교통연구원 원장도 “현재 세계 각국은 그야말로 물류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물류의 원할한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경로의 확보와 수단의 다양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면서 “글로벌 시대에 국가 간의 무역은 필수요소이며 그 과정에서 물류시스템의 원할한 구축은 곧 그 국가의 경쟁력과 직결 된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는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북한동북아연구실장, 엄구호 한양대 교수(아태지역연구센터소장)와 지용태 한국철도공사 물류계획처장이 발제를 맡았으며, 신범식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교수, 조봉현 아이비케이(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류재훈 <한겨레> 온라인 국제판 에디터가 토론자로 나섰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북한의 나진항과 러시아의 하산항 사이 총 54㎞의 철도노선을 개보수하는 사업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만포, 웅산, 웅라 등 3개의 터널을 개보수하고, 연간 400만t급 나진항 화물터미널을 건설하는 사업이 포함된다. 북한과 러시아는 2008년 10월 나진-하산 철도 개보수를 시작해 지난 9월 개통식을 열었다. 남한의 기업들이 이 사업에 참여하게 된 것은 지난 11월13일 박근혜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계기가 됐다.
정상회담 이후 남한과 러시아는 이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한국철도공사와 포스코, 현대상선이 참여하기로 합의했다. 러시아와 북한이 각각 70%와 30%의 지분으로 공동 설립한 합작회사 ‘나선콘트라스’의 러시아 쪽 지분 중 절반인 약 34%를 이들 3개의 한국 기업이 인수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들은 총 1억2800만달러를 투자해 나진-하산 철도 현대화와 러시아가 개보수중인 나진항 3호 부두 개발·운영에도 참여하게 된다.
2007년 이후 멈춘 남북 철도 협력
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7년 6월 러시아철도공사(RZD)와 나진-하산 철도 개보수 참여에 합의했던 내용을 되살린 것이다. 당시 합의는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지지부진해지다가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발효된 5·24조치로 사실상 무효화됐다. 그사이 러시아와 중국은 북한과 훨씬 가까워졌다. 안병민 실장은 발제에서 “러시아가 2012년 북한이 지고 있던 부채 110억달러 중 90%를 탕감해줬다”고 밝혔다.
이는 부채를 갚지 않은 국가와는 경제협력을 하지 못한다는 국내 법의 제약을 풀기 위한 조처다. 그만큼 북한과의 경제협력이 절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러시아에 합법적으로 진출한 북한 노동자의 수가 이미 2만명이 넘고 있으며, 북한과 러시아는 올해 공동실무그룹 4차 회의에서 북한 노동자들의 러시아 파견절차 간소화 방안들을 논의하기도 했다.
안 실장은 “현재 극동 러시아 지역에서 진행되는 인프라 개발 사업에 북한 인력 투입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러시아가 중시하는 사업이 바로 나진항과의 철도 연결 및 터미널 개보수 사업이다. 이를 통해 러시아는 오랫동안 갈구해온 태평양으로 향하는 부동항을 실질적으로 얻게 된다. 러시아는 나진항에 있는 1~3호 터미널 중 3호 터미널에 대해 49년 이용권을 획득한 상황이다.
중국의 움직임은 더 발 빠르다. 중국은 이미 1호 부두에 대한 사용권을 획득한 상태이며, 이에 더해 4~6호 부두에 대한 신설권한도 따냈다. 또 훈춘과 나진을 잇는 고속도로 확장 사업을 2015년까지 완공하는 등 동북3성 진흥계획과 나진항 개발을 깊이 연계하고 있다.
이렇게 러시아와 중국이 나진항 관련 투자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나진항이 태평양으로 향하는 출구로서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와카바야시 동아시아무역연구회 이사장은 나진항의 중요성과 관련해, 일제 식민지 시절 일본이 ‘대륙으로 향하는 입구’로서 1935년 이 항구를 개발할 정도로 교통의 요지라고 강조했다. 동아시아무역연구회는 북한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 지역과 일본의 비즈니스 교류를 촉진하기 위한 민간기구이며, 미쓰비시상사·미쓰이물산 등 종합상사와 중소 규모 전문무역회사 등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나진항은 대륙-해양 잇는 입구 겸 출구
와카바야시 이사장은 “당시 일본은 나진항을 만주국의 수도인 신징(지금의 창춘)으로 가는 가장 빠른 루트로서 건설했다”며 “나진항은 일본이 군대나 물자를 만주로 보내기 위한 입구 항만이며, 동북 지역에서 생산된 곡물, 정어리 통조림 등을 세계에 수출하기 위한 출구였다”고 전했다. 따라서 지난 몇 년간 러시아와 중국은 북한과의 연대를 통해 태평양으로 향하는 출구를 적극 개발한 반면, 남한은 악화된 대북관계와 5·24조치 등으로 스스로 발목을 묶어 대륙으로 향하는 입구에 접근조차 못 해온 셈이었다.
남한 기업의 ‘나진-하산 프로젝트 참여’는 따라서 이런 문제점을 깨고 남한도 비로소 대륙으로 향하는 입구에 접근할 가능성을 연 셈이다. 참석자들도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한 결정’을 큰 가능성을 가진 사업으로 높게 평가했다. 안병민 실장은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 박근혜 정부의 주요 북방정책을 연결하는 첫번째 다자간 협력사업”이라고 의의를 평가했다.
해양세력 한국이 대륙에서 동력 찾는 계기
‘한국의 나진-하산 철도사업 참여의 함의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두번째 발제에 나선 엄구호 교수도 “해양세력 중심으로 성장한 한국이 이제 대륙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게 하는 한 계기”라고 평가했다. 엄 교수는 이와 함께 “한국도 러시아 철도에 대한 투자 의지가 있다는 긍정적 신호를 보낸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엄 교수는 특히 “러시아가 2020년까지 1만2000㎞의 고속철을 건설할 예정”이라며 “한국형 고속철이 러시아 극동 지역에 진출할 수 있다면, 한국에도 큰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진-하산 프로젝트’ 참여 기업을 대표해 발제에 나선 지용태 처장은 이번 사업이 특히 한국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연계를 위한 시범사업이 될 것이라는 점에 높은 점수를 줬다. 지 처장은 “한국종단철도와 시베리아횡단철도가 연결되면 한반도는 태평양과 유라시아대륙을 연결하는 다리 구실을 충분히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조봉현 연구위원도 “장성택 처형을 계기로 북한 경제의 중국 쏠림 현상이 완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런 추세에 맞춰 한국 정부도 나진항에 7~9호 부두를 남·북·러가 함께 건설하는 것 등을 통해 중국의 세력 확장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참석자들은 이 프로젝트가 이런 비전과 의의에도 불구하고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안병민 실장은 “단기적으로는 극동지역 석탄이 가장 중요한 화물일 것”이라며 “가장 가까운 석탄 산지조차 나진항으로부터 2000㎞ 이상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수송의 경제성을 맞출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엄 교수는 “국제적으로 10% 이상 투자하면 이사회에 대표를 파견하는 것이 관례”라며 “한국이 34%를 투자하는데도 러시아가 경영참여 보장에 대해 확정하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용태 처장은 “이 사업이 여전히 많은 리스크를 안고 있으며, 리스크 관리를 위해 정부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이 사업에 대한 남북교류협력기금 지원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경제적 이익 아우르는 로드맵 절실
신범식 교수도 토론에서 “나선 지구는 중국의 동진정책과 러시아의 남진정책이 부딪히는 곳”이라고 전제하고 “한국 정부로서는 정치와 경제를 용의주도하게 결합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이 사업이 “단순한 철도 연결뿐 아니라, 그 배경으로서 외교적·안보적 교류, 지역적 협력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참석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정부가 앞장서서 나진-하산 프로젝트가 한국종단철도와 시베리아횡단철도 연결 사업으로 이어지도록 구체적인 로드맵을 짜야 한다”(엄구호 교수)로 모아진다.
엄 교수는 이어 그런 로드맵은 “정치적 고려는 하되 경제적 타당성도 확보하는 실용적 사고에 바탕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관계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다. 엄 교수는 이와 관련해 “장기적으로 소위 3대 메가 프로젝트인 전기, 가스, 철도 사업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 경제적”이라고 지적했다. “가스관과 전선 부설에 철도 부지를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따라서 향후 한국종단철도 복원은 별도의 사업으로 추진할 것이 아니라 남북관계의 관리, 나아가 변화 수단으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북 투자 금지한 ‘5·24조치’ 풀어야”
‘5·24조치 해소가 북한을 지나 대륙으로 가기 위한 선결 과제다.’ 지난 20일 열린 ‘2014 나진-하산 교통·물류협력 포럼’ 참석자들은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성공을 위해서는 5·24조치 해소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0년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이명박 대통령이 발표한 5·24조치는 대북 신규투자 금지 등 북한과의 경제 관계를 스스로 단절한 조치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국내외의 분열은 차치하더라도, 이 조치는 스스로 남한 당국에 족쇄를 채움으로써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나 박 대통령이 지난 11월18일 국회에서 밝힌 ‘실크로드 익스프레스’ 등이 실현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5·24조치에서 휴전선 확성기 재설치 등 군사적인 부분은 이미 대부분 무효화됐다. 현재 오직 경제적인 부분에서 대북 투자를 금지하는 규정만 남아 있는 상태다. 류재훈 <한겨레> 국제판 에디터도 5·24조치가 유지되면 ‘나진-하산 프로젝트’ 참여 기업들마저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령 5·24조치로 북한 내에서 물건을 실은 배들은 남한의 항구에 들어올 수 없다. 따라서 현대상선 등이 나진항에서 석탄을 직접 싣고 오는 일도 불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우리 배가 공해에서 석탄을 환적해 들여와야 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류 에디터는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가 나진-하산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5·24조치를 유연하게 점진적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임동원 이사장(전 통일부장관)
김경철 한국교통연구원장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
와카바야시 히로유끼 일본 동아시아무역연구회 이사장
류재복 大記者 yjb08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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