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 청장'의 잇단 무리수, 경질 자초하고 문화재는 만신창이
멀쩡한 석굴암도 붕괴위기 조장, 원전비리 수준의 비리집단으로 몰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아마도 2013년은 문화유산계에서는 다시 돌아보기 싫은 해로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대략 20년 전을 기억하는 이 분야 종사자들은 1996년 이른바 가짜 거북선 총통 사건 이래 올해가 문화유산계의 최대 위기라고 입을 모을 정도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 방안을 두고 대혼란에 빠져드는가 싶더니, 한국미를 대표하는 국보 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 해외 반출을 두고서는 볼썽사나운 다툼이 벌어졌다. 이런 혼란은 급기야 화마에 휩싸였다가 화려하게 복구 완공을 알린 숭례문에서 곪아 터져 '총체적 문화재 관리체계 부실'이라는 논란으로 발전했다.
이런 와중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이를 '원전비리' 수준으로 표현했다. 한데 실로 놀랍게도 총체적 문화재 부실이라는 논란에 다름 아닌 국가의 문화재 정책을 총괄하는 문화재청장이 깊이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 경질을 자초하기에 이르렀다.
◇ '반구대 청장'의 등장과 반구대 논란
박근혜 정부 출범과 더불어 초대 문화재청장으로 울주 반구대 암각화의 맹렬한 보존운동가 변영섭 고려대 미술사학과 교수가 임명되면서 문화유산계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청장 임명을 반구대 문제를 해결하라는 뜻으로 안다고 밝힌 그는 청장 취임과 더불어 사연댐 수면 아래로 연중 자맥질을 반복하는 암각화 문제 해결에 '올인'하기 시작했다.
취임과 더불어 예정에도 없던 반구대 암각화 특별전을 밀어붙여 불과 1주일 만에 개막하는가 하면, 이 문제 해결을 울산시가 가로막고 있다면서 각종 공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그에게는 '반구대 청장'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비단 그 자신뿐만 아니라 문화재청 또한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사연댐 수위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시민에 대한 맑은 물 공급을 내세운 울산시는 대체 수원 개발 없이는 사연댐 물을 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런 대립은 변 청장 이전에도 10여 년이 넘게 지속된 해묵은 문제였다.
하지만 변 청장이 주도한 강공 드라이브는 그에 상응하는 더 강한 반발을 불렀다. 울산시는 물론이고 이 지역을 장악한 새누리당 국회의원과 그들이 속한 새누리당이 결국 울산시 편을 들어 사연댐 수위 낮추기가 아닌 다른 방식을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이러한 대립이 격화하자 결국 국무조정실이 나서 중재를 하기에 이르렀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직접 개입하기 시작했고 결국 국무조정실과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청과 울산시의 4개 기관이 문제 해결을 위한 MOU를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한데 그 내용이 문화재청으로서는 굴욕에 가까웠다. 이와 관련한 거의 모든 정책 결정권은 국무조정실로 넘겨줘야 했으며, 이후 정부는 암각화 구출을 위한 '카이네틱 댐' 건설방안을 확정했다. 이동식 임시 방수벽 시설인 카이네틱 댐은 사연댐 수위를 낮춰 암각화를 보호해야 한다는 문화재청 생각과는 거리가 한참이나 먼 것이며, 그 주변에 생태제방이나 차수벽을 설치해야 한다는 울산시 생각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사연댐에 질식한 것은 암각화가 아니라 문화재 전체라는 말까지 나왔다.
◇ 반가사유상 반출 논란
문화재위원회는 국보인 금동반가사유상에 대해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 개최하는 '신라황금' 특별전 전시를 위한 대여를 결정했다. 하지만 그 최종 결정권자인 변 청장은 이에 아랑곳없이 잦은 해외 대여와 그에 따른 훼손 우려 등을 들어 불가판정을 했다.
변 청장 주변에 포진한 문화재청 외부인사들과 변 청장을 지지하는 발언을 잇달아 신문 기고나 방송 출연 등으로 쏟아냈다. 이들은 이번 대여가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 발상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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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이 숭례문 복구공사 전반에 대한 1차 종합점검을 실시한 지난 10월 30일 종합점검단 관계자가 언론에 점검 부분 등을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DB >>
하지만 이 역시 극심한 반발을 불렀다. 무엇보다 이런 결정이 문화재위 심의결정을 번복한 것인 데다 그 소장기관이자 특별전 공동주최 기관인 국립중앙박물관이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 문제는 결국 유진룡 문체부 장관이 나서 나름 중재안을 제시하면서 일단락을 지었다. 그렇지만 반가사유상이 결국 미국으로 나갔다는 점에서 문화재청이나 변 청장으로서는 또 한 번 굴욕을 맛봐야 했다.
◇ 단청 훼손이 촉발한 숭례문 복구 부실 논란
두 사건을 겪으면서 그런대로 평정함을 찾아가던 문화유산계는 숭례문이라는 핵폭탄이 터지면서 쑥대밭이 되다시피 했다. 지난 5월4일,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5년여에 걸친 복구가 성공적으로 끝났음을 화려하게 알린 숭례문이 실은 부실 복구의 총체적인 결과물이라는 주장과 보도가 터진 것이다.
그 직접 계기는 단청에서 발생했다. 복구 완공식이 있고 나서 한 달가량 지나 숭례문에서 단청이 훼손되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터진 것이다. 나중에 드러났지만 단청은 이미 완공 직후에 발생했다.
이는 철저한 고증과 전통기법에 따른 복구를 표방한 문화재청에는 일대 타격이었다. 숭례문에는 단청 외에도 목공사(대목장), 기와(기와장과 번와장), 철물(철물장), 성벽(석장) 등의 분야에서 각각 장인이 투입돼 복구공사를 했다. 이 중에서도 실은 단청 분야가 문제가 가장 많다는 사실은 적어도 문화재 분야에서는 공개된 비밀이었다. 40년 이상 단절된 전통 단청기법을 되살리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기 때문이다.
한데 단청에만 국한되는 듯하던 숭례문 부실 복구 논란이 갑자기 커졌다. 변 청장과 가까운 주변 문화계 인사들이 숭례문은 단청뿐만 아니라 대목이나 석장, 기와 등의 여러 방면에서도 문제투성이라는 주장을 편 것이다. 이런 와중이 특정 언론이 이들 주변인사로 자문단을 꾸려 문화재 부실 문제를 시리즈로 다루기도 했다.
◇ 멀쩡한 석굴암까지 제물로…청장 경질 사태 불러
이렇게 되자 유럽 순방에서 돌아온 직후인 지난달 11일 박 대통령은 "문화재 행정 전반에 대해서 철저한 조사를 통해 문제점을 밝히고, 비위 관련자에 대해서 책임을 엄중히 묻고 또 제도적인 보완책을 마련할 것을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즈음해 문화재 관리 부실 문제는 계속 제기되고 급기야 석굴암과 팔만대장경판도 안전 문제가 심각하다는 보도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석굴암은 멀쩡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보도에서 위험 요소로 지적한 석굴암 내부 균열 중에는 신라 경덕왕 때 김대성이 석굴암을 창건하다가 생긴 균열도 있었으며, 팔만대장경판도 보도와는 달리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이내 드러났다.
이런 와중에 지난달 15일 변 청장이 전격 경질됐다. 처음에는 그의 경질은 숭례문 부실 복구 논란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실제 이유는 이런 일련의 문화재 사태 전개에 다름 아닌 변 청장 자신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논란을 수습하고 대응책을 내놓아야 할 문화재청장이 주변 인사들을 동원에 논란을 부추기고, 더구나 특정 언론사에 문화재청 내부 자료를 제공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결국 문화재는 만신창이가 되고, 그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원전비리에 준하는 비리집단처럼 매도된 해로 2013년은 기록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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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2/09 06: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