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국민, 치졸한 대통령
'박근혜정권 퇴진 5차 범국민행동' 집회
오후 4시 상황
첫눈이 내리는 가운데 서울도심에서 '비선 실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5차 주말 촛불집회가 26일 시작됐다. 1천5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이날 오후 6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박근혜 즉각 퇴진 5차 범국민행동' 행사를 개최했다. 본 행사에 앞서 오후 4시께부터 세종로사거리에서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삼청로 세움아트스페이스 앞, 신교동로터리 등 청와대 인근을 지나는 3개 경로로 사전행진이 진행됐다.
청와대를 동·남·서쪽으로 포위하듯 에워싸는 '청와대 인간띠 잇기'가 사상 최초로 실현됐다. 서쪽 날개 끝인 신교동로터리는 청와대에서 약 200m, 동쪽 끝인 세움아트스페이스는 약 4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경찰은 이들 경로에서 광화문 앞 율곡로 북쪽에 해당하는 구간은 행진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최 측이 이에 반발해 낸 집행정지 신청을 전날 법원이 일부 받아들여 청와대 인근까지 행진이 가능해졌다. 이날 서울에는 오전부터 첫눈이 굵게 내리다가 행진 시작이 가까워질 무렵 잦아든 상태다. 우의를 입거나 우산을 든 참가자들은 "박근혜를 구속하라", "이제는 항복하라" 등 구호를 외치며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했다.
율곡로와 삼청로, 자하문로 등 청와대를 에워싸는 주요 도로는 행진 인파로 긴 줄이 늘어섰다. 주최 측은 이날 집회에 서울 150만명, 전국적으로는 200만명이 참가해 사상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주최 측은 오후 4시 기준으로 20만명(연인원), 경찰은 오후 4시30분에 11만명(순간 최다인원)이 모인 것으로 추산했다. 법원이 허용한 행진 시간대는 오후 5시30분까지였다. 아울러 주최 측이 창성동 별관·새마을금고 광화문지점·세움아트스페이스 앞·푸르메 재활센터 앞(신교동로터리)에 신고한 집회도 오후 5시까지는 할 수 있었다. 사전행진이 끝나고 광화문 광장에서 각계 시민들의 시국발언, 박 대통령 비판 영상 상영, 공연 등으로 본 행사가 열렸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5차 촛불집회가 열린 26일 서울 한복판에 농민들의 소도 등장했다. 경기 수원에서 소를 키우는 농민은 트럭으로 소를 싣고 와 이날 거리 행진에 참여했고, ‘박근혜 체포단’으로 명명된 시위대가 이 소를 행진 중간에 세웠다. 소의 등에는 빨간색 글씨로 ‘근혜씨 집에 가소’ ‘근혜씨 하야하소’ 등 ‘소’로 끝나는 문구가 적혔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사는 오현경씨가 소 등에 올라타 청와대 방향 행진에 참여했다. 오씨는 “박근혜 정부는 국민을 개·돼지만도 못하게 생각한다. 이 정부 들어서 개 돼지 등 동물도 욕먹는 사태가 많아서 가슴 아팠다”면서 “소는 위험한 동물이 아니고, 소도 지금 박근혜 퇴진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지금 대통령은 소보다 못하다"라고 말했다.
6시 30분 상황
이날 오후 6시 30분 집회 시작 30분 만에 군중은 80만 명을 돌파했다. 15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오후 6시30분 80만 인파가 광화문 북단에서 시청역(한화빌딩) 앞까지, 경복궁역에서 동십자각까지 가득 메웠다"고 알렸다. 시민들은 이날 오후 6시 본 집회에 앞서 1차 거리행진에 돌입했다. 이번 집회에서는 법원의 허가에 따라 청와대에서 불과 200m 떨어진 청운동주민센터, 삼청로 세움아트스페이스 등까지 행진이 가능해졌다. 사상 최초로 청와대를 동·남·서로 둘러싸는 집회가 열린 것이다.
퇴진행동 측에 따르면 오후 4시에 20만 인파가 둘로 나뉘어 광화문에서 청운동주민센터, 삼청동 방향으로 '청와대 포위' 행진에 들어갔고 5시 기준 35만명, 6시에 60만명으로 늘어났다. 퇴진행동 측은 이날 촛불집호에 서울 150만명을 비롯, 전국적으로 200만명의 참가를 예상했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였던 지난 12일 3차 집회 때 100만명(경찰 추산 26만명)을 크게 웃도는 숫자다. 경찰의 해산명령으로 내자동 로터리에서는 시민들이 질서정연하게 광화문 쪽으로 뒤로 빠졌는데 일부 신학생들이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오후 7시 상황
주최측은 이날 오후 7시, 서울 광화문광장 등에 운집한 집회 참가자가 100만명을 돌파했고 밝혔다. 주최측은 "사직터널방면에서 동십자각 안쪽, 청운동동사무소 안쪽까지 경복궁 앞 인도를 포위하여 꽉 채우고 있다"며 ""종로는 종각까지 인원이 차고 있고 서대문역 부근은 포시즌 호텔 앞까지, 시청은 광장을 지나 한화건물 앞까지 인파가 가득 채우고 있다"고 밝혔다. 주최측은 이어 "아직도 종로와 남대문 쪽에서 인원이 계속 들어오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오후 8시 이후
‘박근혜 퇴진’ 촉구 주말 촛불집회 참여인원은 26일 주최 측 추산으로 150만명을 넘어서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측은 이날 오후 9시 40분 기준 서울 도심 광화문 일대에 150만명이 운집했고, 지역 주요 대도시에서 열린 집회 참가자 수까지 더하면 190만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는 서울 도심에 가장 많은 참가자가 모인 것으로 집계된 지난 12일 3차 촛불 집회 당시 주최 측 추산 100만명(경찰 추산 26만명) 보다 많은 인원이다.
또 19일 서울 도심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모인 95만명(서울 60만명·지역 35만명) 역시 뛰어넘는 규모다. 경찰은 오후 7시 10분 기준으로 서울 도심 집회 인원은 26만명으로 집계됐다고 추산했다. 쌀쌀한 날씨와 서울에 첫 눈까지 내리면서 참가자가 전보다 줄어들지 모른다는 예상이 있었지만 기우(杞憂)에 그쳤다.
집회 참가자 규모 지하철 이용 승객 수
서울시에 따르면 오후 8시 기준 광화문광장 일대 집회 참가 인원은 166만 533명으로 나타났다. 광화문역·시청역·서울역·종각역·경복궁역 등 12개 역사 이용 인원은 총 102만 6232명(승차 37만 8624명·하차 64만 7608명)으로 조사됐다. 이는 지난주 집회(19일) 때보다 약 17만명 늘어난 수치다. 서울시는 하차 인원 64만 7608명을 기준으로 지하철 수송분담률 약 39%(2014년 기준)를 감안해 계산하면 다른 교통수단 등과 합쳐 총 166만 533명으로 추산된다고 설명했다.
주최 측은 이날 오후 8시 참가자들이 1분간 일제히 촛불을 끄는 ‘1분 소등’ 행사도 진행했다. 일순간 어둠에 잠긴 광장에서 참가자들은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구호를 연호했다. 오후 8시 10분쯤 주최 측은 경복궁역 내자동 로터리까지 2차 행진에 나섰다. 행진 선두 중 일부는 손에 횃불을 들고 행진에 나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경찰은 이날 280개 중대 총 2만 5000명의 경비병력을 투입해 청와대 인근 행진 및 집회 지점, 광화문광장 등에서 집회시위 관리를 했다. 별다른 충돌 없이 평화적으로 이어지고 있어 오후 10시까지 경찰에 연행된 집회 참가자는 없었다.
위대한 국민, 치졸한 대통령
시민들은 끝까지 비폭력·평화시위를 유지했다. 시민들은 가끔 일탈 행동을 보이는 소수 참가자들에게 비폭력을 강조하며 자체적으로 자제시켰다. 또 경찰버스에 꽃스티커를 붙이는 등 평화로운 항의 방식을 선택했다. 오후 10시께 본집회가 종료된 뒤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린 청운동 일대에서도 시민과 경찰 간 충돌 없이 평화롭게 집회가 이어졌다. 새마을금고 광화문지점 앞과 내자로터리에선 시민들이 3분 자유발언을 이어갔다. 이따금 구호를 제창할 뿐 별다른 물리적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경찰과 대치 중인 시민들도 경찰을 향한 비방 없이 차분히 시위에 동참했다. 일부 시민이 경찰을 향해 종이피켓을 던졌지만 주위 참가자들이 오히려 이를 저지하기도 했다. 삼청로 세움아트스페이스 앞에서도 폭력의 움직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전국 대학교 총학생회 중심으로 집결한 이곳에서 참가자들은 경찰이 설치한 폴리스라인을 지키며 시위를 이어갔다. 학생들은 자유발언, 구호와 노래제창을 반복하며 차분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아리랑 목동'을 개사한 '하야가'나 '이게 나라냐' 등을 부르며 피켓과 촛불을 높이 들었다. 가수 GOD(지오디)의 '촛불하나'를 다 같이 부르기도 했다.
대열이 붐비면서 폴리스라인이 흔들릴 때도 경찰은 침착하게 통제선 준수를 요청했고 시민들도 이에 응하는 등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민들은 "우리는 헌정사상 최초로 청와대 근처에서 평화시위를 하는 역사를 쓰고 있다"고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거리에 남아있는 쓰레기를 줍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눈과 비가 내려 땅이 젖은 상태였지만 거리는 대체로 깨끗했다. 경찰도 한몫했다. 경찰은 종전처럼 시민들을 자극할 수 있는 움직임을 최대한 자제했다. 압박과 경고보다는 설득과 설명을 통해 시민들에게 평화시위 보장 약속을 지켰다. 청와대 인근 내자동 로터리에 차벽 대신 병력을 배치하는 등 시민들이 흥분할 수 있는 요인들은 사전에 신중하게 배제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오후 10시40분께부터 율곡로 방면으로 행진을 시작,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되는 1박 2일 농성에 합류했다. 실로 아름답고 위대한 국민들이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치졸하게도 별 반응이 없다.
스포츠닷컴 사회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