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석 "지존파 사건 통해 국가 시스템 질문"

posted Nov 2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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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 다이어리'로 장편 데뷔한 정윤석 감독

 

'논픽션 다이어리'로 장편 데뷔한 설치미술가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지존파 사건을 통해 국가라는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28일 개막하는 서울독립영화제의 장편 경쟁부문에 초청된 다큐멘터리 '논픽션 다이어리'를 연출한 정윤석 감독은 최근 서울 종로구 안국동의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굵직굵직한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정 감독은 지존파 사건부터 성수대교·삼풍백화점의 붕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형 판결과 사면까지를 아우르며 우리 사회의 상부구조를 파헤친다.

 

최근 인기를 얻은 '응답하라 1994'가 90년대의 가벼운 추억거리를 상기시킨다면 '논픽션 다이어리'는 독재의 파도가 물러가고, '개인'이라는 주체가 밀려오기 시작하던 혼란스런 90년대의 시대상을 묵직하게 담아냈다.

 

영화는 '지존파'로 알려진 청년들이 성폭행과 토막 살인을 저지른 '지존파 살인사건'으로 문을 연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담당형사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사건을 세밀하게 살핀다.

"뉴스 클립을 제외하고 참고할 자료가 거의 없었어요. 자료가 나온 건 정부기관이나 학계보다는 오히려 기독교 쪽이었어요. 지존파 활동으로 구속된 수감자들의 수기가 남아있어서 다행이었죠."

 

정 감독은 지존파 사건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5년에 걸쳐 사건을 전후로 한 사회적 맥락을 조사했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삼풍백화점 붕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형판결과 사면, 사형제 폐지 논란 등으로 논의가 확대되는 이유다.

 

"지존파 구성원들은 유행가를 좋아했던, 우리랑 감수성이 크게 다르지 않던 사람들이었어요. 그들도 저와 같은 시대에 태어나 시대의 부조리를 보고 자랐어요. 저는 영화에서 개인의 악행보다는 악이 집단화됐을 때의 위험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악이란 개인적 차원에서 발생하는가, 아니면 시스템이 악을 키우는 것인가에 대해 질문하고 싶었죠."

 

그런 맥락에서 그는 "지존파 자체도 문제지만 '지존파 적인 것'이 더 문제"라고 강조했다. 삼풍백화점 붕괴에서 드러난 기업가의 도덕적 해이, 수많은 인명이 학살된 5.18 민주화운동을 촉발한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단죄 실패 등 90년대를 규정짓는 사건들이 '지존파 적'이라는 것이다.

 

"지존파는 물론 나쁘죠. 하지만 지존파보다 지존파 적인 게 더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1990년대를 지존파 적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사실 몇 명을 죽인 지존파 구성원들보다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법원의 판결은 달랐습니다. 지존파는 기소 1년 만에 사형당했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은 사면받았죠. 솔직히 지존파의 폭력성과 (독재) 정권의 폭력성이 뭐가 다른지 모르겠어요."

 

설치미술가 출신의 영화 감독 정윤석

 

 

정 감독은 영화계보다는 미술계에서 먼저 이름을 알렸다. 지난 2009년 금호미술관이 매년 공모를 통해 젊은 작가를 발굴 지원하는 '금호 영아티스트'에 선정되며 미술계에서 주목을 끌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던 그는 대학원(한예종 영상원)에 진학해 영화를 공부했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기보다는 찍고 싶은 다큐멘터리가 있어서"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의 차기작은 펑크밴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음악 다큐멘터리 '밤섬 해적단 습격의 시작'이다. '논픽션 다이어리'가 국가란 존재를 질문했다면, '밤섬…'은 좀 더 각론으로 들어가 국가보안법을 중심으로 한 우리 사회의 '레드 콤플렉스'를 다뤘다.

 

"요즘 자기 삶과 정치를 분리해서 보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올바른 삶의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삶은 정치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제가 국가에 대해 질문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buff27@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1/28 06:57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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