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참모진 교체, 야3당 “조직적 은폐 시나리오” 의심
청와대, 우병우ㆍ안종범ㆍ문고리 3인방 교체…신임 민정수석에 최재경
박근혜 대통령은 휴일인 30일 오후, 최순실 비선실세 의혹 사태와 관련해 청와대 참모진 인적쇄신을 단행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이원종 비서실장과 안종범 정책조정ㆍ김재원 정무ㆍ우병우 민정ㆍ김성우 홍보수석의 사표를 수리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또한, 이재만 총무ㆍ정호성 부속ㆍ안봉근 국정홍보 비서관 등 이른바 '측근 3인방'의 사표도 전격 수리했다. 박 대통령의 참모진 교체는 지난 25일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한 뒤로 5일 만이다.
정연국 대변인은 이날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박 대통령은 현 상황의 엄중함을 깊이 인식하고 각계의 인적 쇄신 요구에 신속히 부응하기 위해 대통령 비서실 인사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정 대변인은 "대통령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전원이 사표를 제출했지만, 박 대통령은 국정상황을 고려해 비서실장, 정책조정ㆍ정무ㆍ민정ㆍ홍보수석의 사표를 수리했다"며 "아울러 총무ㆍ부속ㆍ국정홍보 비서관의 사표도 수리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이날 교체한 우 수석과 안 수석, 측근 3인방은 국민들과 여론, 여야가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 인적쇄신 대상으로 우선 거론했던 참모들이다. 특히 이들은 청와대 참모진 핵심 중의 핵심 인사로, 박 대통령은 정치권의 거센 쇄신요구에 화답하는 형태로 이들을 모두 교체함으로써 인적개편 구상의 첫 걸음을 뗀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대통령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하고, 최근 대통령 하야 등을 요구하는 집회와 시국선언이 잇따르는 등 민심 이반의 흐름 속에서 최 씨 사태와 직ㆍ간접적으로 연관된 모든 참모진을 교체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분석이다.
3인방 가운데 정호성 비서관의 경우 최 씨에게 대통령 연설문이 사전유출됐다는 JTBC 보도과 관련해 본인의 e메일 아이디가 유출된 문건의 작성자 아이디와 같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다. 또한 안봉근 비서관은 제2부속 비서관 재직 시절 최 씨의 박 대통령 순방 관련 의상구매 의혹, 청와대 내부 사이버 보안 등을 관리하는 이재만 비서관은 연설문 사전유출 의혹과 관련해 각각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안종범 수석과 우병우 수석도 미르ㆍK스포츠 재단 및 최씨 의혹 등과 관련해 야당 뿐만 아니라 새누리당에서도 집중적인 공세를 받았다. 이와 함께 박 대통령은 교체로 공석이 된 수석자리 가운데 우선 신임 민정수석에 최재경(54ㆍ경남 산청) 전 인천 지검장을, 홍보수석에 배성례(58ㆍ서울) 전 국회 대변인을 각각 내정했다.
최 민정수석은 대검 수사기획관, 법무부 기조실장, 대검 중수부장, 전주ㆍ대구ㆍ인천지검장 등을 역임한 수사분야 전문가다. 사시 27회로 대구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거쳤다. 배 홍보수석은 KBS 기자와 SBS 라디오 총괄부장을 지냈고, 국회 대변인 등을 거친 홍보 전문가다. 경기고와 서강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정 대변인은 "박 대통령은 신임 비서실장과 정책조정ㆍ정무수석의 후속 인사는 조속히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종 문체부 제2차관 사표 제출
김종(55)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제2차관도 30일 사의를 표명했다. 김종 차관은 30일 "현재 상황에서 업무 수행이 어렵다고 생각했다"며 "문체부 직원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있기 때문에 사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2013년 10월 문체부 제2차관에 선임된 김종 차관은 3년간 재직하며 '현 정권 최장수 장·차관'으로 불렸다. 취임 이후 장관이나 제1차관보다 오히려 더 막강한 파워가 있다는 평을 들었고 특히 소관 업무 가운데 하나인 체육계에서는 '체육 대통령'이라는 별칭까지 붙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인 최순실 사건과 관련해 최순실 측근에게 인사 추천을 했다거나 K스포츠재단, 미르재단 등의 설립에 관여했다는 등의 의혹을 받았다. 하지만 김 차관은 "최순실을 본 적도 없고 유선상 연락한 사실이 없다"며 "만일 그런 사실이 드러나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항변해왔다. 이날 청와대 민정수석 등 비서실 개편이 단행되면서 김종 차관은 사직서 제출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 "청와대에서 상자 7개 이상 압수물 제출…최순실 곧 소환“
한편,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60)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30일 청와대 협조 아래 상당량의 압수물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과 30일 오전까지 검찰과 갈등 양상을 보였던 청와대 측이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수사팀 관계자는 30일 "청와대가 검찰 압수수색 집행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상자 7개 이상 분량의 압수물을 제출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검찰이 요구한 압수물을 적극 제출하겠다는 게 청와대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전날에 이어 이날도 안종범 정책조정수석비서관과 정호성 부속비서관 등 사무실에 강제 진입하지 않고 공식 행사나 회의 장소로 쓰이는 연무관에서 자료를 임의제출 받고 있다. 안 수석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및 800억원대 기금 모금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정 비서관은 최씨에게 박근혜 대통령 연설문을 비롯해 청와대 기밀 문건을 대량 전달했다는 의혹을 각각 받고 있다. 검찰과 청와대는 전날 1차 압수수색 과정에서 집행 방식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검찰은 제출된 자료가 미진하자 당사자 사무실에 직접 들어가 필요한 자료를 갖고 오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국가기밀 등을 이유로 '불승인 사유서'를 제출하며 맞섰다.
청와대가 검찰의 압수수색을 거부한 법적 근거는 형사소송법 110조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에는 그 책임자의 승락 없이는 압수 또는 수색할 수 없다'는 조항, 111조 '공무원이 소지·보관하는 물건을 직무상 비밀로 신고한 때에는 소속 공무소의 승낙 없이는 압수하지 못한다'는 조항 등이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수긍할 수 없는 조치"라며 이례적으로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이날 검찰 요구 자료를 순순히 내놓음에 따라 양 기관 간 갈등이 일단 수면 아래로 누그러지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여론의 거센 압박에 밀려 검찰 압수수색에 협조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꾼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검찰은 이날 오전 영국에서 전격 귀국한 최씨의 소환 일정과 관련해 "필요한 시점에 부르겠다"면서도 "가급적 빨리하겠다"고 밝혀 이르면 31일 소환 가능성을 열어놨다. '긴급체포 등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정치권 일각의 지적에 대해선 "수사에도 절차가 있다"며 당장 긴급한 조처를 하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증거인멸 또는 말맞추기를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이미 상당 부분 조사돼 있다"며 수사에 큰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는 검찰이 주변 조사나 증거 확보를 통해 혐의를 특정한 뒤 최순실 본인을 소환해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고 처벌하는 수순을 염두에 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최순실의 최측근이자 '문화계 황태자'로 불리는 차은택(47)도 조만간 입국해 검찰 조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체류 중인 차씨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이르면 이번 주 중 귀국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편, 검찰은 이날 최씨를 10년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고영태(40)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다시 불러 조사하고 있다. 고씨는 27일 밤 검찰에 자진 출석해 2박3일간 조사를 받고 전날 돌아갔다. 검찰은 고씨와 함께 장시간 조사를 받은 이성한(45) 미르재단 전 사무총장도 곧 다시 소환할 방침이다.
최순실 귀국에 야3당 “조직적 은폐 시나리오 가동 아니냐?”
국정농단 파문을 일으킨 '비선 최순실'이 30일 귀국한 데 대해 야3당은 일제히 증거인멸 우려를 제기하며 최 씨와 검찰을 겨냥해 공세를 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최순실 입국에 검찰수사관이 동행했다고 한다. 검찰이 범인 은닉과 증거 인멸에 공모한 사건이 벌어진 것인가. 과연 누구의 지시인가"라며 "어쩌다 이 나라가 이 지경인가. 대통령이 은폐를 작심하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을 일"이라고 꼬집었다.
같은 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2~3일 흐름을 보면 진상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는 시도가 너무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관련 당사자들이 입도 맞추고 행동도 맞춰서 뭔가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움직여가는 흐름이 포착되고 있다고 규정한다"고 최 씨 등이 증거인멸을 시도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민주당 내 대권주자들도 증거인멸 우려를 드러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국민과 함께 엄중하게 지켜보겠다. 진실축소와 은폐는 역사의 심판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부겸 의원은 "즉시 신병을 확보해 말 맞추기나 사실 은폐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며 검찰을 압박했다.
국민의당도 이번 검찰 수사과정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이날 정국대응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국민의당은 이 각본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 의해 작성되고 지금 현재 일련의 진전은 우병우가 진두지휘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며 "우병우 지휘 하에 최순실 일탈 행위로 입 맞추기하는 것 아닌가. 증거인멸을 하고 있다고 우리는 파악한다"고 꼬집었다.
안철수 전 대표는 이날 팬클럽 주최 '국민희망 비상시국 간담회'에서 "최순실이 귀국할 때 체포하기는 커녕 국가 공무원이 의전 담당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만약 사실이라면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직무유기"라며 "당장 최순실을 긴급 체포해 공정한 수사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최 씨를 체포하라고 요구했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는 긴급상무위를 열고 "청와대가 총괄하는 조직적 은폐 시나리오가 가동되기 시작했다"며 "비서실 총사퇴 지시와 청와대 압수수색 퍼포먼스까지, 일사불란한 출구전략 쇼가 벌어지고 있다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고 최 씨의 갑작스런 귀국 등이 의심스럽다는 평을 내놨다.
스포츠닷컴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