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아직 정신 못차리고 시민들 2만여명 “대통령 하야하라!”
청와대 '안종범·정호성' 압수수색 거부…검찰 반발
최순실이 국정에 개입했다는 '비선 실세'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29일 청와대를 대상으로 전격 압수수색에 나섰지만, 청와대가 협조를 거부하며 양측이 갈등 양상을 보였다. 검찰은 안종범 정책조정수석과 정호성 부속비서관 등의 사무실을 대상으로 전날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영장을 갖고 이날 오후 집행에 나섰다. 한웅재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장을 비롯한 검사와 수사관 수십명이 참여한 이번 압수수색을 통해 검찰은 대통령 연설문 등 청와대 문건 사태 진상을 규명하는 수사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었다.
청와대는 영장 집행 초기 "법률상 임의제출이 원칙"이라며 당혹감을 나타내면서도 수사에 일정 부분 협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검찰이 직접 사무실에 진입하는 대신 청와대 내부이기는 하지만 별도 건물인 연무대에서 자료를 건네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제출된 자료가 요구한 수준에 못 미친다고 판단한 검찰이 직접 안 수석과 정 비서관 사무실에 들어가겠다는 입장을 전하자 청와대는 '불승인 사유서'를 제출하며 더 이상의 압수수색 진행을 승낙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검찰은 청와대의 통보에 "수긍할 수 없는 조치"라며 정면으로 반발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오후 7시께 "검찰 압수수색이 (청와대의 불승인 때문에) 지장을 받게 됐다"면서 "영장이 제대로 집행될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국가 기밀 등을 이유로 더는 압수수색을 승인할 수 없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형사소송법상 해당 기관의 승낙 없이는 압수수색이 불가능하다.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이거나 공무원이 소지·보관할 물건 중 직무상 비밀에 관한 것임을 신고한 때는 소속기관 또는 감독관청의 승낙없이 압수하지 못하게 하는 형사소송법 110조(군사상비밀과 압수), 111조(공무상비밀과 압수) 때문이다.
다만 이 조항들은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승낙을 거부하지 못한다는 단서도 있어 청와대가 무조건 압수를 거부할 권리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사유를 들어 승낙을 거부할 수 있다는 '양면성'이 있다. 결국, 양측의 갈등은 과연 이번 사안이 '국가 중대 이익'에 관한 것인지의 입장 차이로 귀결된다. 검찰은 최순실 의혹이 국가의 중대 이익과 관련이 있다기보다는 최씨 주변의 '국정 개입'과 연관된 문제라는 입장이다. 반면 청와대는 이 과정에서 안 수석과 정 비서관의 업무 전반이 노출되는 등 부작용이 더 크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양측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검찰 입장에선 사실상 청와대의 승인이 없으면 더는 자료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청와대 역시 계속 압수수색에 불응하면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일단 검찰은 이날 밤 9시를 조금 넘어 수사팀을 현장에서 철수시키기로 했다. 내일 영장을 재집행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청와대가 경내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면 최소한 검찰이 요구하는 관련 자료들은 적극적으로 제출해야 한다는게 법조계 중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에서 앞서 일부 제출받은 자료는 압수수색 목적과 관계가 없어 별 의미가 없었다"면서 "청와대는 자료를 제대로 내놓지 않았다"는게 검찰 관계자의 설명이란 점에서 청와대가 아직도 성난민심을 제대로 읽고 있지 못한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민들 2만여명 “대통령 물러가라, 하야하라”
한편, 29일(토) 오후 서울 한복판의 거리에는 2만명 넘는 시민들이 모여 현 정부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개명 후 최선원) 국정농단 파문을 규탄했다. '최순실 사태' 이후 첫 대규모 시위로 올 들어 서울 도심 집회 중 최대 인파가 몰렸다. 시위대는 청계광장에서 집회 후 청와대로 행진하려다 경찰과 충돌했다. 수차례 몸싸움 끝에 광화문 광장까지 진출했으나 큰 부상자나 대규모 폭력사태 없이 5시간 만에 마무리됐다.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29일 오후 6시부터 서울 종로구 서린동 청계광장에서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시민 촛불 집회'를 개최했다. 기온이 7도 남짓으로 떨어진 싸늘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2만명 이상(주최 측 추산 3만명, 경찰추산 1만2000명)의 시민들이 운집했다. 청계광장은 물론 인근 광화문역 5번 출구, 서울 파이낸스센터 주변에서 350여m 떨어진 광통교 부근까지 발 디딜 틈 없이 시위대가 가득 들어찼다.
몰려드는 시민들로 집회현장 일대에서 일시적인 통신마비가 발생하고 일부 참가자는 인파에 밀려 다치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국정농단 사태를 빚은 '최순실 게이트'의 진상 규명과 대통령 해명, 정권 퇴진 등을 촉구했다. 사람들은 촛불과 함께 '박근혜 퇴진', '이게 나라냐' 등의 문구를 쓴 손팻말을 들었다. 집회 도중 줄곧 '박근혜는 물러가라',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정현찬 가톨릭농민회 회장은 개회사를 맡아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정치인, 정치꾼이 아니라 여기 모인 국민의 힘으로 독재자를 물리쳤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더 이상 국민을 고통의 도가니로 몰아넣지 말고 즉시 퇴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최가 민중총궐기 투쟁본부 (극좌세력) 시위였지만 시위대 구성은 다양했다. 시민들은 홀로 혹은 가족, 애인, 친구들과 같이 집회 장소를 찾았다. 여자친구와 함께 참가한 서울 시내 대학생 한모씨(21)는 "국정농단에 참담한 심정이 들어 주말이라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나왔다"며 "작은 촛불 하나하나에 우리나라가 제대로, 정상화되길 기원하는 소망을 담았다"고 말했다. 부인, 아이와 함께 참여한 김성운씨(37)는 "어쩌다 나라가 이 꼴이 됐는지 개탄스럽다"며 "답답하고 슬픈 마음을 참지 못하고 가족과 함께 길에 나왔다"고 말했다. 대학생 딸과 함께 나온 고영숙씨(51·여)는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모인 것을 보니 아직 희망은 있다고 생각한다"며 "지금 시민들의 염원이 꼭 높으신 분들한테까지 전달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성남시장과 노회찬 정의당 의원도 청계광장을 찾았다. 이재명 시장은 "대통령은 나라의 지배자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일하는 대리인일 뿐"이라며 "국민이 맡긴 위대한 통치권한을 근본도 알 수 없는 무당의 가족에게 통째로 던져버린 것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노회찬 의원은 "3·15 부정선거 주범 이승만은 하야했는데 지난 3년8개월 동안 부정 통치한 박근혜 대통령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며 "박근혜 대통령이 자리에 있는한 진실규명과 책임자처벌, 재발방지가 되겠느냐"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저녁 7시30분 집회를 마치고 행진을 시작했다. 청계광장을 시작으로 광교→보신각→종로2가→북인사마당까지 약 1.8㎞를 걸어갈 예정이었으나 행진 초반 청와대 방향으로 틀며 경찰과 충돌했다. 경찰은 이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집회 현장과 행진 구간 주변으로 60개 중대 경력 4800명을 배치했다. 경찰은 곧바로 종로1가 르메이에르 빌딩, 교보빌딩에 1,2차 방어벽을 세우고 시위대에 맞섰다. 각각 5~10분여 몸싸움 끝에 경찰 방어벽이 연이어 뚫렸고 시위대는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까지 진출했다.
저녁 8시 세종문화회관 앞 광화문 광장에서 3차 충돌이 시작된 이후 한 시간 여 대치 끝에 시위는 소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다행히 대규모 폭력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시위대에서는 가족·연인 단위 참가자가 많았고 폭력시위 물품을 동원하지도 않았다. 경찰 역시 강경 대응을 자제했다. 현 사태에 대한 국민적 실망과 분노가 팽배한 상황에서 살수차나 최 루액(캡사이신)을 투입했다가 자칫 부정적 여론을 더욱 자극할 수 있는 탓이다. 곳곳에서 충돌이 생기면서 시위대 1명이 연행되기도 했지만 큰 부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밤 10시30분쯤 세종문화회관에서 마무리집회를 시작하며 이날 시위는 5시간 만에 끝났다.
시위 불참여 시민들도 “대통령이 책임져야, 국정중단은 반대”
한편,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시민들중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나라가 이게 무슨 꼴인가? 나는 일부러 시위에 참여하지 않겠다. 좌파세력들 신이나 난리다. 하지만 나도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고 본다. 이번 사태로 국정중단 사태가 일어나거나 북한이 도발한다면 큰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위에 불참한 것이지 대통령이 책임없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강한 분노를 드러냈다.
스포츠닷컴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