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악몽 열흘째…'죽음의 도시' 타클로반을 가다(종합)

posted Nov 1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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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된 도시, 타클로반
파괴된 도시, 타클로반
(타클로반<필리핀>=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17일(현지시간) 오전 초대형 태풍 하이옌 강타로 건물의 대부분이 파괴되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필리핀 레이테주 타클로반 해안가 건물들이 처참하게 무너져 있다. 2013.11.17 hama@yna.co.kr
 

육로 통금 해제 속 구호물자 속속 집결…구조·방역작업 '시급'

 

공군 긴급구호팀, 교민·이재민 타클로반서 철수시키고 물자 전달

 

(타클로반<필리핀 레이테주>=연합뉴스) 고상민 기자 =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간) 오전 5시 필리핀 레이테주(州) 올목 시와 주도 타클로반 시를 잇는 국도.

 

지난 12일 발생한 정부와 반군의 총격전 이후 처음으로 뚫린 이 육로는 이른 아침부터 구호물자를 실어나르는 차량으로 붐볐다.

 

국도의 가드레일은 엿가락처럼 휘었고 도로 한가운데로 전신주와 야자수가 어지럽게 쓰러져 차량들은 100㎞ 이상의 구간에서 곡예운전을 하고 있었다.

 

며칠 전만 해도 간선도로 곳곳에서 약탈을 일삼던 반군·탈옥수들은 일시 종적을 감췄다. 적어도 낮 시간만큼은 정부 당국의 치안 기능이 작동했다.

 

지난 9일 초대형 태풍 '하이옌'의 직격탄을 맞은 타클로반에는 열흘 새 전세계에서 각종 구호물자와 인력이 모여들고 있지만 아직 '희망'을 말하기는 부족한 모습이었다.

 

공터에 방치된 시신들
공터에 방치된 시신들
(타클로반<필리핀>=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17일(현지시간) 오전 초대형 태풍 하이옌 강타로 건물의 대부분이 파괴되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필리핀 레이테주 타클로반에 아직 처리하지 못한 시신들이 한 건물 앞 공터에 방치돼 있다. 2013.11.17 hama@yna.co.kr
 

타클로반 주민 22만여 명 가운데 공식집계된 사망·실종자만 4천여 명이다.

 

식량·식수 배급은 그나마 원활해졌지만 시급한 의료 구호나 방역 작업이 이뤄지지 않아 2차 재앙에 대한 우려가 커 보였다.

 

곡예운전 끝에 진입한 타클로반 시내 곳곳에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오염됐을지도 모를 지하수를 거리낌 없이 마시고 있었다.

 

여기저기 포대에 담긴 시신이 때때로 내리는 소나기 아래 여전히 방치돼 있고 옷소매로 코를 막은 시민들이 시신 주위를 지나고 있었다.

 

피해종합상황실이 마련된 타클로반 시청 주변도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웠다. 이날 오전 시청 맞은 편 공터에서는 여태 방치된 시신 30여구가 겨우 수습되고 있었다.

 

타클로반에 내걸린 희망 메시지
타클로반에 내걸린 희망 메시지
(타클로반<필리핀>=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17일(현지시간) 오전 초대형 태풍 하이옌 강타로 건물의 대부분이 파괴되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필리핀 레이테주 타클로반 시청 인근에 'We will overcome this together'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적혀 있다. 2013.11.17 hama@yna.co.kr
 

종합상황실에는 쌀을 비롯한 각종 구호물자가 쌓여 있지만 배급이 원활하지는 않은 듯했다. 피해 신고 접수대는 실종 가족을 찾는 주민들로 온종일 북새통을 이뤘다.

 

주민 알가노(52)씨는 "태풍이 오던 날 딸아이를 잃어버렸는데 아직도 찾지 못해 도시를 떠날 수 없다"며 울먹였다. 그는 아이의 인상착의를 손으로 그린 전단을 주민들에게 나눠줬다.

 

한국과 터키, 미국, 일본 등 각국의 NGO들은 시청을 비롯한 시내 중심가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식량 배급·의료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굿네이버스 관계자는 "5인 가족이 2주 정도 먹을 수 있는 도시락 2천 키트를 1차 배급했다"며 "2차 배급 지역은 구호가 집중된 타클로반이 아닌 인근 팔로(Palo) 시 등으로 넓혀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시청 인근 세인트폴 병원에서는 한국서 파견된 해외긴급구호대(KDRT), 소방방재청 중앙119구조단, 한국국제협력단(KOICA) 직원 수십 명이 의료 구호 및 구조·방역 작업을 진행 중이다.

 

구호활동 벌이는 해외긴급구호대
구호활동 벌이는 해외긴급구호대
(서울=연합뉴스) 17일 오후 필리핀 타클로반에 파견된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가 타클로반시에서도 가장 피해가 심한 지역(54-A구역,마칼리니에타)에서 인명구조견과 함께 매몰 실종자 구조 수색을 실시하고 있다 . <<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KDRT) 제공 >> 2013.11.18
 

외교부 관계자는 "하루에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돌아가는 타클로반 시민만 400여 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알프레드 로뮤알데스 시장은 이날 오전 운동복 차림으로 시청에 들러 피해 및 구조상황을 보고받았다. 그의 아내는 1층에 있는 NGO 관계자들, 기자단을 찾아 "죄송하다. 도와줘서 고맙다"며 여러 번 고개를 숙였다.

 

타클로반 공항에는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의 탈출이 이어졌다. 주민 100여 명은 뙤약볕 아래서 언제 올지 모를 마닐라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공군 필리핀재난 긴급구호임무팀은 필리핀 세부 막탄공항을 거쳐 17일 오후 타클로반 공항에 도착했다.

 

공군 15특수임무비행단을 중심으로 46명으로 구성된 구호팀은 구호물자를 하역한 후 현지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우리 교민과 현지 이재민 등 100여명을 C-130 수송기에 태우고 세부 막탄공항으로 향했다.

 

구호활동 벌이는 해외긴급구호대
구호활동 벌이는 해외긴급구호대
(서울=연합뉴스) 필리핀 타클로반시에 도착한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원들이 현지 세인트폴병원에 현장활동본부를 설치하고 16일부터 본격적인 구호활동을 실시했다. 해외긴급구호대는 2차 피해방지를 위한 전염병 예방과 응급환자 진료에 중점을 두고 구호활동을 펼쳤다. <<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KDRT) 제공 >> 2013.11.18
 

우리 공군이 해외 임무 수행중에 해외 이재민들을 직접 수송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지에서 긴급구호 임무를 수행하는 공군 관계자는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타클로반은 곳곳의 길이 끊기고 마을 일부가 원래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부서지는 등 참혹했다"고 말했다.

 

또 타클로반 공항 역시 "원래 공항 여객청사였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건물이 파괴되고 언제올지 모르는 차례를 기다리며 지쳐버린 사람들의 모습에서 태풍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군 구호팀은 하루 2∼4차례 세부와 타클로반을 오가며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gorious@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1/18 17:16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