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되지 않은 친일재산- 환수 안된 노른자위 땅①

posted Nov 1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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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청주지법 민사항소1부(이영욱 부장판사)가 '친일파' 민영은 후손의 '땅찾기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청주시 승소 판결을 내리자 청주시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청주지방법원 앞에서 만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DB>>
 

친일재산조사위, 성과 불구 한계…"재조사 통해 환수 나서야"

 

<※편집자주 = 청주시를 상대로 '도로 철거 및 인도 청구 소송'을 제기한 친일파 민영은의 후손들이 최근 항소심에서 패소했다. 이번 판결은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 조사위원회'가 '국고 환수 대상'에서 제외한 토지라하더라도 친일 대가로 취득한 재산이라면 환수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자못 크다. 법원이 친일재산 조사위 결정을 사실상 뒤집은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향후 유사한 재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는 적지 않은 친일재산이 여전히 환수되지 않고 있는 실태와 대응 방안 등을 3회에 걸쳐 심층적으로 짚어봤다.>

 

(청주=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 "사법부의 사려 깊은 판단에 경의를 표한다", "사법부가 민영은의 친일 행각을 단죄했다"

 

민영은 직계 후손이 청주시를 상대로 낸 토지반환 청구 소송 항소심 선고 공판이 있었던 지난 5일 오전 청주지법 327호 법정을 나오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두 손을 높이 치켜든 채 '만세'를 불렀다.

 

대통령 산하 기관인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 조사위원회(이하 친일재산조사위)가 환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친일파 민영은의 재산을 법원이 환수 대상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친일재산조사위는 2010년 7월 4년간의 활동을 마감하면서 친일파 168명의 명의로 된, 여의도의 1.5배에 달하는 2천475필지, 13㎢의 땅에 대한 국고 환수 결정을 내렸다.

 

큰 성과를 거뒀지만 여전히 친일파의 재산이 전국 곳곳에 교묘히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친일재산의 범위를 폭넓게 본 이번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면서 향후 지방자치단체의 유사한 소송 제기나 친일재산 환수를 위한 시민단체의 후속 활동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 곳곳에 은닉돼 있는 친일재산…"샅샅이 찾아내야"

 

대표적 친일파인 이완용은 여의도 면적의 1.9배에 달하는 1천573만㎡를, 송병준은 여의도만한 857만㎡의 토지를 각각 소유했었다.

 

엄청난 대부호였던 이들은 1920년대부터 토지 매각에 나서 해방 전 대부분의 부동산을 처분했다.

 

이런 탓인지 이완용의 재산 가운데 국가 귀속 결정이 내려진 땅은 1만928㎡, 송병준의 땅은 2천911㎡에 불과했다.

 

충북에서는 31명의 친일파가 소유한 201만3천537㎡의 친일재산에 대해 국가 귀속 결정이 내려졌다. 경기·충남에 이어 3번째로 큰 규모였다.

 

그럼에도 자작 작위를 받은 민영휘 소유로 알려진 청주 상당산성 내 33필지 3만14㎡는 친일재산조사위의 심사 대상에도 오르지 않았다.

 

이 토지는 1948년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생기며 구성된 반민특위의 판단에 따라 이듬해 9월 국가에 귀속됐으나 1970년대 말 민영휘의 후손들이 소송을 제기, 승소하면서 귀속 대상에서 빠져버렸다.

 

충북도청 인근의 당산 42만3천㎡ 역시 메이지신궁봉찬회 조선지부 충북도위원을 지낸 친일파 민영은의 소유다.

 

이 토지 역시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조사위의 국고 환수 결정이 나지 않았다.

 

전국에는 이처럼 조사위 심의를 교묘하게 빠져나간 친일재산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는 것이 시민단체들의 분석이다.

 

제2, 제3의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 조사위를 구성,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친일재산을 샅샅이 조사해 환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 친일재산 조사·환수 상설기구 시급

 

2005년 말 시행된 '친일재산 국가 귀속 특별법'은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한 재산뿐만 아니라 이를 상속받거나 친일재산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증여받은 재산까지 포괄적인 귀속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완용·송병준이 해방 전 자신들의 부동산을 상속·증여·매각·양도 등의 방식으로 빼돌렸다면 이 역시 환수 대상이다.

 

그러나 조사위는 매각된 재산의 처분 경위를 일일이 추적하는 데 실패했다. 해방 후 60여년이 지난 상황에서 이러한 재산을 찾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친일재산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조사위는 친일파 후손들이 친일재산을 제3자에게 처분한 데 따른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도 제기했지만 8건에 그쳤다.

 

조사위는 이런 점을 염두에 둔 듯 2010년 7월 발간한 백서에서 "국가 귀속 결정을 내리지 못한 친일재산이 위원회 활동 종료 이후에도 발견될 수 있다는 점에서 친일재산의 처리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조언에도 친일재산 환수 문제를 추가로 다룰 만한 조직이나 기구는 여태껏 중앙이나 지방정부에 구성된 적은 없다. 필요성조차 거론되지 않았다.

 

조사위가 국고 환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청주시의 '알짜배기' 토지가 환수 대상에 오르게 된 것도 아이러니하게 친일파 후손들이 땅을 돌려달라는 '분별없는 소송'을 제기한 덕분이다.

 

만약 이들이 소송에 나서지 않았지만 청주 도심의 노른자위 땅은 계속 친일파 민영은의 소유로 남았을 것이다.

 

조사위에서 활동했던 한 공무원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한계가 있었다"며 "친일 문제를 다루는 상설 기구의 설치가 적극적으로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ks@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1/10 08:3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