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日 핵폭탄 투하는 오역이 불렀다"

posted Nov 0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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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이 쓴 '오역의 제국'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오역은 오해를 낳고 오해는 갈등을 부르며 갈등은 파국을 가져온다.

 

서옥식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이 최근 펴낸 '오역의 제국'은 오역 사례집으로 분류할 수 있을 정도로 교양서적은 물론 교과서, 성서, 영화, 가요, 외교문서, 언론보도, 저명인사들의 어록과 자서전, 인터넷 등지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되는 오역 사례를 풍부하게 소개한다.

 

연합뉴스에서 외신부장과 편집국장을 지낸 저자는 13년간 외신부(현 국제뉴스부)에서 일하면서 번역과 인연을 맺었다. 저자 스스로 오역한 기사를 썼다가 모욕에 가까운 꾸지람을 들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무려 10년이 넘는 기간 오역과 싸워야 했던 그의 개인 경험이 이 책의 산파 구실을 한 셈이다.

 

"기회가 되면 언젠가는 오역 사례들을 모아 책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광우병 보도 오역,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 오역, EBS 수능시험 영어교재 오역 등 오역 문제가 우리 사회 주요 이슈의 하나로 부각됨에 따라 책의 출간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됐다."('책을 내면서' 중에서)

 

저자는 오역 사례를 모으는 과정에서 국내에 널리 읽히는 번역물 대부분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오역이 많은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실제로 책을 읽다 보면 '설마 이것까지 오역이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역이 우리 주변 곳곳에 널려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대한 핵폭탄 투하, 독일의 미국 백악관 폭격포기, 미국의 베트남 전면적 개입, 현실 사회주의의 종말과 함께 동서 냉전체제의 해체를 앞당긴 베를린장벽 붕괴, 9·11 테러 등 인류의 역사를 바꾼 굵직한 사건들이 따지고 보면 오역이 빌미가 됐거나 오역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1945년 7월26일 미국 대통령 트루먼, 영국 총리 처칠, 중화민국 주석 장제스 등 연합국 수뇌들(소련 공산당 서기장 스탈린은 후에 서명)은 포츠담선언을 통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낸다.

 

연합국 측의 항복 요구가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일본 여론은 들끓었다. 정부의 자세를 밝히라는 요구는 점차 거세졌고, 결국 당시 77세의 스즈키 칸타로 총리는 7월28일 오후 4시 기자회견을 갖는다. 하지만 말실수를 하고 만다.

 

"우리는 (포츠담선언)에 대해 '모쿠사츠' 할 따름이다"라면서 '모쿠사츠'라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모쿠사츠'라는 말은 영어나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서구 언어로 그 뜻을 표현할 수 있는 적당한 단어가 없다.

 

'모쿠사츠'는 '논평을 유보하다'에서부터 심지어 '거부하다'라는 의미까지 있다.

 

스즈키 총리는 '논평을 유보하다'는 뜻으로 '모쿠사츠'라는 용어를 쓴 것이었지만 일본의 대외선전매체의 역할을 하던 도메이통신이 영문기사에서 '모쿠사츠'를 '무시한다'(ignore)로 옮기고 만다.

 

도메이 통신의 '무시하다'라는 표현은 연쇄 반응을 일으켜 서방 언론에 '거부하다'라는 뜻으로 바뀌었다. 격분한 트루먼 대통령은 사흘 뒤인 8월3일 원폭투하를 지시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미국은 '무조건 항복' 요구를 거부한다는 답변에 경악했고 결국 8월6일 히로시마에 이어 8월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138쪽)

 

저자는 오역이 독자와 원저자에 대한 '죄악'이자 역사와 사실을 왜곡하고 인간의 지식세계를 파괴하며 나라의 문화와 학문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고 강조한다.

 

도서출판 도리. 643쪽. 2만5천원.

changyong@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1/09 08:1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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