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엄원지
[특별취재팀/스포츠닷컴]
화엄굴과 은수사 그리고 탑사에 깃든 자연의 숭고한 이야기-
[1]
한국에는 명산(名山)과 영산(靈山)이 많다.
그 중의 한 산이 바로 마이산(馬耳山)이다.
전북 진안지역에 위치한 이 산은 암,수 산으로 이루어져 예부터 신령한 산으로 세간에 전해져 왔다.
진안(鎭安)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이 태백산맥의 줄기를 타고 내려오다가 교차하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데,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 곳이 편안해야 세상이 편안하다”는 뜻으로 불리워 졌다고 한다.
수많은 선지자, 예언자, 수행자로 불리는 도인(道人)들이 이 산에서 일각(一覺)을 이루었고, 수많은 애국지사, 의사(義士), 장수들이 이 산에서 일음(一音)을 듣고 세상을 구할 고귀한 뜻과 계시를 가슴에 품고 하산(下山)했다.
북쪽으로는 수마이봉(667m)이 양(陽)의 기운을 받아 식물이 번성하고, 남쪽으로는 암마이봉(673m)이 있어 음(陰)의 기운으로 식물은 건조하고 약했으나 수와 암의 에너지를 바람따라 구름따라 지기(地氣)따라 주고받음으로써 우주의 상생 이치인 음양의 조화를 스스로 영위하고 동서남북 중앙의 오행을 자생(自生)하여 산을 찾는 속세의 탐욕한 사람들에게 자정(自 靜)의 계기를 주며, 자연의 섭리를 알고자 하는 수행자들에게 깨우침의 기회를 마련해 준 성스러운 산이 바로 마이산이다.
백두와 태백보다는 작은 산이지만 양 쪽으로 세운 말의 귀처럼 지형을 이루고, 마두(馬頭)산과 떨어져 마치 세상의 평원을 달리다가 세상을 벗어난 우주의 소리를 듣기위해 잠시 머리에서 떨어져 나간 두 귀 인 듯, 마이(馬耳)의 모습은 멀리서 보기만 하여도 어떤 영감(靈感)이 교차한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이 산 전체의 맥(脈) 흐름이 묘한 풍수를 지니고 있다.
마령면(일명:말고개)에서 서쪽으로 2Km로 내려가면 커다란 바위봉이 있는데 가까이 가서 바라보면 신기하게도 말의 머리처럼 생겨 이를 마두봉(馬頭峰)이라고 하는데, 묘한 것이 말의 귀가 없는 것이다.
사라진 그 두 귀가 바로 3Km 전방의 마이봉(馬耳峰)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산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이야기가 태조 이성계와 이갑룡 도인의 설화이다.
이성계가 아직 고려 장수로 있을 때 이 마이산 터에서 수련 기도하던 어느 날, 꿈에 신령으로부터 왕권을 의미하는 금으로 만들어진 자(금척:金尺)을 받고 후일 왕이 될 것이라는 최초의 계시를 받았다는 설화이다.
또 한 가지는 이 산에 터를 잡고 있는 탑사(塔寺)를 창건한 이갑룡 도인의 행적이다.
이갑룡 도인(1860~1957)은 지금으로부터 100여년전 전북 임실 사람으로 조선 왕조 효령대군의 16대 후손으로 30여년간 이 마이산에 거(居)하며 신묘한 탑을 쌓아올린 전설적인 근대 인물이다.
이 마이산에 얽힌 대표적인 설화도 중요하지만 화엄굴과 은수사, 탑사에 깃든 마이산의 정기(精氣)와 신비는 수만년, 수천년의 자연과 세월의 풍화 속에도 아직 고적(孤寂)히 남아 있음을 직접 가보지 않고서는 다 느낄 수가 없다.
[2]
필자가 마이산을 찾아간 이유는 필유곡절이 있다.
2012년 1월 초, 어느 날 새벽에 비몽사몽 간에 꿈을 꾸었는데 ~
산중 어떤 동굴 안으로 들어가니 거기에 백발이 성성한 한 노인이 말하기를 “자네 왜 이제사 오는가?” 하지를 않는가?
평소 태도가 자신만만한 필자는 “뉘신데 내게 그런 말을 합니까?”하고 반문하자, 노인장 말이 “내가 이갑룡인데 이리 와 보게”하며 동굴 밖으로 나를 인도하는데 산 아래 굽이 굽이 계곡이 보이는 것이었다.
산 아래를 바라보니 묘한 것은 햇살의 기운이 왕성하여 온 산이 밝은데 유독 한 계곡만이 어두컴컴하여 한 눈에 보아도 그 지역이 습한 기운이 가득하여 나무와 풀이 보이질 않았다.
노인이 산 아래 그 어두운 곳을 가리키며 “음~ (쯧쯧) 빨리 왔어야지, 일단 저기를 가보고 다시 내게 오게나” 하는데 그 순간 나는 비몽사몽의 꿈을 깬 것이었다.
하도 기이하고 또 “내가 이갑룡인데~”하는 그 음성이 확연하여 바로 PC를 켜서 인터넷에 ‘이갑룡’을 검색하니 놀랍게도 마이산의 이갑룡 도인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 것이다.
필자가 살아오면서 ‘이갑룡’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뿐만 아니라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음성이 너무도 생생하여 인터넷 검색을 해 본 것이지만 꿈 속의 그 분이 마이산의 이갑룡 도인인지 아닌지는 당시 그 아침, 혼란스러웠지만 여러 가지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에 필자는 뭔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마이산’을 가야겠다고 작정을 하고 바쁜 일정을 조율하여 계획을 잡게 되었다.
마이산 도립공원은 남부주차장 매표소와 북부주차장 매표소가 있다.
일단 전주시에서 소속 기자들을 만나 가야했으므로 길안내는 그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1월 17일 아침에 서울 한남대교를 지나 고속도로에 몸을 실었다.
새해 1일 새벽에 태백산 천제단에 새해기원 기도산행을 했던 필자에게 최혜빈 기자가 못마땅한 눈치를 주었지만 전주에 있는 소속 기자들을 신년교육도 시킬 겸 해서 같이 가자고 공무(公務)를 핑계되어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
서해안 고속도로는 가끔씩 달려볼 기회가 있었는데 항상 느끼는 바가 차량도 많질 않고 쾌적한 도로주행감(感)을 받는 것이었다.
평소 경부고속도로를 달려서 구미, 대구, 부산을 가곤 하는 필자는 이 서해안 고속도로의 시원한 도로주행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호남에서도 전북은 늘 생각하는바가 예술과 문화가 전통적이고 사람들 또한 ‘선비와 장수의 고장’이라는 개념이 있던 터라 눈에 비치는 모든 풍경이 조용하면서도 품격있게 느껴졌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전주시 덕진공원 앞.
도착하니 주부인 김은영 기자와 전북대 재학생인 이보미 기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김기자가 식사를 대접한다고 하고, 전통 음식의 고장인 전주시에서 평생 처음의 식사를 하는 의미있는 식사식(?)을 갖게 되었다.
역시 서울이나 부산에서 느낄 수 없었던 다양한 종류의 반찬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마친 우리 일행은 바로 마이산 도립공원을 향해 출발하였다.
전주시에서 진안 쪽으로 가는 국도는 이미 눈이 녹아 주행이 편했고, 필자는 짧은 시간에 깜빡 잠이 들어 바깥 풍경을 놓치는 우(遇)를 범했다.
눈을 뜨니 벌써 차량이 흰 눈 쌓인 산 사이의 도로로 들어서고 있었다.
마이산 북부주차장에 정차하고 우리는 등산화에 우선 아이젠을 채우고, 옷매무새를 춥지 않게 다듬고, 간단한 준비물을 챙긴 카메라와 배낭을 지고 매표소를 지나 드디어 마이산 안에 발을 내디뎠다.
눈 쌓인 산길엔 올라가는 계단이 잘 정비되어 있었고, 평일이라 그런지 방문객들이 띄엄띄엄 있어서 산은 조용하고, 그 고적한 분위기가 제대로의 산행을 예감하게 했다.
역시 겨울 산행은 봄, 여름, 가을 산행에서와는 다른 차원의 멋과 맛을 느낄 수 있다.
더구나 사람들의 말과 발걸음 소리가 적적(寂寂)하다면 더할 수 없는 겨울산의 운치를 만날 수가 있다.
지난 1월 1일 새해 첫 아침 태백산 산행에서도 체험했지만 산을 오를 때, 쉽게 즐겁게 산을 오르는 비법은 먼저 호흡과 발걸음을 잘 조율해야 한다.
필자는 지난 20여년간 단전호흡과 복식호흡 등의 심호흡법을 잘 활용해 오고 있는데, 이것은 평소 생활에서도 내 건강을 지켜주는 가장 중요한 건강법이지만 특히 겨울 산행에서처럼 기온도 차고 숨이 가프고, 또한 평소 운동량이 적은 도시인에겐 필수적인 호흡법이다.
산을 들어서는 시작부터 천천히 아랫배를 내밀고 들여보내는 단전이나 복식 호흡을 하며,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천천히 걷는 식의 가파른 산을 올라가는 등산 족법(足法)인 것이다.
급히 올라갈 필요도 이유도 없다.
세명의 기자들이 숨을 가파하고 힘들어 할까 싶어 이 점을 강조했지만 저들이 이 단전호흡과 복식호흡의 좋은 점을 과연 알 수 있으려는지 의문이었다.
필자는 평소 운동도 거의 안하고, 식사도 제때를 잘 거르며, 낮과 밤이 없이 일하고 작품하는 생활습관이 25년 가까이나 돼서 몸이 정상인 아닌데도 특별히 몸에 병 없이 잘 견뎌가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단전호흡 덕이 아닌가 싶다.
위장이 탈이 나도, 머리가 아파도, 신경이 거슬려서, 심지어는 외상을 입어도 병원에 간다는 생각 이전에 먼저 이 단전호흡을 하면 된다는 고정 관념을 갖고 있는데 필자가 이만큼이라도 세상의 무게를 잘 지탱하고 살아가는 힘은 단전호흡에서 나오는 에너지의 힘이라고 하겠다.
더구나 이런 명산, 영산에 와서 하는 단전호흡은 정말 보약 중의 보약임은 더 두말할 필요없는 명론이다.
긴 계단을 올라가는 길목마다에 흰 눈이 쌓여 간간히 소나무에 핀 눈꽃에 순백의 영혼들이 짧은 낮잠을 자고 있었고, 갈수록 가까이 보이는 수마이봉의 숨소리가 오랜 세월 속에서도 신의 음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정상에 오르니 화엄굴이 150m, ‘은수사 탑사 금당사 남부주차장’, ‘북부주차장 마이사’ 안내표지판이 있는 간이 휴식터가 나타났다.
이곳에 도착해서야 우리가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한 곳이 북부주차장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게는 잘 된 일이었다.
필자가 꼭 찾아보고 싶은 곳이 화엄굴이었는데 남부주차장에서 올라가면 탑사와 은수사를 거쳐 정상에 있을 화엄굴을 찾아 올라와 다시 내려가야 했는데, 사실은 먼저 화엄굴을 보고 왠지 모르게 신비한 굴(屈)의 기운을 먼저 접하고 싶은 필자의 뜻이 저절로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내심 기뻐하였다.
마음같아서는 화엄굴을 먼저 가고 싶었으나 일행들을 기다리게 할 수가 없어 일단은 산 아래 쪽 은수사와 탑사를 먼저 다녀온 뒤, 필자 나름의 목표한 바를 실행하리라고 생각하고 올라온 길 반대편 쪽으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은수사(銀水寺)는 조선 초기에는 상원사(上元寺)라고 하였고, 조선조 숙종 때 이후 절터만 남아있었는데 무명(無名)의 스님이 정명암(正明庵)이라 하여 다시 사찰을 지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다시 정명암도 사라졌고, 1920년도에 ‘이주부’라는 분이 다시 중창하여 은수사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은수사’는 태조 이성계가 부근의 샘터에서 나오는 물이 “은같이 맑다”고 말한 데에서 따와 지어진 이름이라고 전해지는데, ’대엄광전‘ 바로 뒤에 지긋한 미소를 머금고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예부터 ‘미륵불’이라 불리어 온 커다란 바위가 있어 그 압도적이고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더해지고 있다.
은수사는 원래 조계종단 소속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조선 초기의 석상과 삼신할미상이 발견, 출토되었고 마이산 줄사철군락(천연기념물 제380호)와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제386호)등이 있다.
우리나라 산을 여행하다 보면 보통 이름난 절 주변은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고, 크게 중창하여 인위적인 멋이 많이 보이는데, 이곳 은수사는 그 역사와 전통으로 비추어 볼 때 너무도 소탈하고 한적스럽다.
그래서 더욱 멋스럽고 산사(山寺)의 분위기가 나며, 아직도 마이산의 태고(太古)적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듯한 조용함을 느낄 수 있다.
대엄광전 앞에는 국내 최대 크기라는 법고가 있는데, 누구든지 이곳에서 이 법고를 두드릴 수 있도록 돼 있어 그 의미가 대단하다.
필자는 마음을 가다듬고 심호흡과 함께 작은 소리로 ‘소망’을 담은 기도와 함께 이 북을 처음에는 세 번을 두드리고, 나중에 다시 올라오면서 여덟 번을 두드렸다.
천천히 그러면서도 힘있게 두드렸는데 맨 마지막에 울려 퍼지는 북소리의 여운이 산골짜기를 빠져나가 세상으로 퍼져 나가는 환청(幻聽)을 하였다.
이제 운수사를 뒤로 하고 조금 밑으로 하산하면 “마이산 하면 ‘돌탑’이 생각난다”는 사람들의 말처럼 그 유명한 이갑룡 도인의 탑사가 있는데 우리 일행은 기념촬영을 넷이서 하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었다.
서서히 아래에 탑사가 보이면서 좁은 계곡사이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원과 돌탑들이 눈에 들어 왔다.
흔히 인터넷상으로 보던 모습들이었지만 눈 쌓인 탑사의 겨울풍경은 거의 본 적이 없었기에, 역시 겨울산의 흰 눈과 거센 바람이 어우러져 넘어갈듯 하면서도 그대로 서 있고, 그대로 서있는듯 하면서도 흔들리며, 오랜 세월을 묵묵히 살아온 ‘돌탑’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마이산 북부주차장보다 남부주차장에서 더 가까운 거리에 있는 탑사는 이갑룡 도인의 혼이 곳곳에 깃들어 있는 신비한 절이라고 할 수 있다.
일설에 의하면 1885년 경부터 30여년간 120여기의 돌탑을 쌓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80여기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전국 명산을 돌면서 한두개씩 돌을 가져와 음과 양의 이치로 돌을 하나씩 얹어 완성한 돌탑은 하나같이 ‘세상의 죄를 자신이 대속하고 사람들의 평안을 기원하며’ 쌓았다고 전한다.
또한 전해져오는 이야기에는 이갑룡 도인은 축지법(縮地法)과 팔진법(八進法 또는 八陣法: 숫자 8을 밑으로 해서 0부터 7까지를 사용하며, 가끔 컴퓨터에서 16진법 대신에 사용되는 기수법)에 능해서 하루에도 먼 읍과 산을 절 마당을 걷듯 쉽게 왕래하였고, 15~20m 돌탑을 밤이면 공중부양하여 쌓기도 하였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탑사에 전해져 오는데, 현장에 가서 탑들을 가만히 바라보면 불가사의한 사실로 느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에 온갖 풍랑에도 쓰러지지않고, 사람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쌓았다고 믿기지않는 돌탑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필자가 탑사를 찾은 오후는 여느 때보다도 차갑지 않은 기온에 바람마저 조용해서 마이산 산행은 아주 적격의 겨울 산행이었다.
이곳 마이산 탑사와 은수사는 ‘역고드름’이 생기는 지역으로도 유명한데, 마침 탑사 마당에 떠놓은 정안수(원래 정화수:井華水) 한그릇에 역고드름이 올라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필자는 이 순간을 놓치질 않고 카메라에 담았다.
‘역고드름’은 과학적인 근거로는 영하 7도 정도에서 생성되며 물에 불순물이 적을 때와 적당한 바람이 불 때에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아무튼 마치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모습’으로 숙연히 위로 치솟은 그 모습은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보는 이의 마음 속에 신비로움을 더해 주었다.
소원을 갖은 사람이 밤새 정안수를 떠 놓고 기도를 하면 역고드름이 생겨 그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예부터 전래되어 왔는데, 마이산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다시 우리 일행은 왔던 길로 발걸음을 재촉해야만 했다.
북부주차장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다시 은수사를 거쳐 화엄굴 입구까지 거슬러 올라가 반대편 쪽으로 하산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3]
은수사를 다시 올라가니 흰 눈 덮인 산야에 저멀리 천연기념물 380호인 줄사철나무 군락이 보였다.
마이산이 이 군락의 북방한계지역이라는데 은수사 뒤 쪽 가파른 벼랑사이로 그 푸른 모습을 의연히 지키고 있어 고찰(古刹)의 맑은 겨울 정기가 사뭇 느껴져 왔다.
필자는 대엄광전(대웅전) 앞 큰 법고를 여덟번을 더 두드리며 마음 속에 들어 있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고집(古執)들을 떨어내 버리려는 듯 경건하게 힘차게 두드렸다.
북소리가 짧으면서도 길게 은수사 마당을 휘돌아 계곡을 타고 세상으로 빠져나가는 환청 속에서 가슴으로 부터 응얼진 삶과 세상의 한(恨)같은 것들이 시원하게 뚫려나가는 쾌감을 느끼며, 세상의 어둡고 습한 사람들의 평안을 소망하는 기도도 잊지않고 작은 소리로 되뇌었다.
세상은 음양오행의 이치에 따라 움직이며, 또한 기(氣)의 작용으로 서로 상생(相生)도 하고 상사(相死)도 하는 법임을 평소 느끼고 살아가는 필자는 아직도 전혀 깨우치지 못하고 미망(迷妄)의 늪을 헤매이는 터라 옛 도인들이 수련하고 깨우침을 받은 산의 정기는 말할 수 없는 구원의 한 길인 것이다.
이러한 터에서 기도와 함께 북을 두드린다는 것은 나름대로의 진지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은수사를 뒤로 하고 다시 정상을 향해 계단을 오르니 시간이 벌써 제법 되어가고 있었다.
필자에게는 이제 ‘화엄굴’ 탐사가 남아 있었다.
세명의 기자들이 손도 얼굴도 꽁꽁 얼어 있어서 먼저 하산하여 북부주차장에서 기다리도록 한 뒤, 필자 혼자서 화엄굴로 향했다.
그 옛날, 태조 이성계와 이갑룡 도인 등 마이산을 찾은 수많은 선지자들이 분명 이 굴에서 심신의 수양과 도(道)에 대한 해답을 갈구하며, 일각(一覺)을 이루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기에 그 굴을 가보지 않고서는 오늘 이 마이산의 정수(精髓)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가파른 암벽을 잠시 올라가니 그 곳에 7~8m 길이, 4~5m 정도의 높이로, 길게 자리잡은 동굴이 의연하게 긴 겨울의 침묵을 지키며 고고(孤高)하게 앉아 있었다.
설경(雪景)에 갇힌 듯
침묵조차 잃어버린 듯
그대로 그 자리에
수행자가 되어버린 그대여
천년의 세월이
바람과 구름을 일으키고 갔어도
세간(世間)의 인연 줄이
그렇게 수없이 찾아왔어도
귀찮다는 투정 말 한 마디 없이
아이처럼 해맑게 살아온 순결한 그대여
오늘
또 한 나그네 있어
감히
마이(馬耳)의 비밀을 알고자
불현 듯 한 생각 들고 찾아왔으니
그대 가슴 안에 숨겨진
하얀 눈꽃의 이야기를
내게도 들려주지 않으려는가.
-화엄굴 1 /엄원지-
더 이상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긴 침묵이 그 곳에 있었다.
눈을 감고 단전호흡을 제대로 하기 위해 심신을 잠시라도 집중하였다.
이 기행문에서 밝히는 필자만의 수련 비술이 있는데 그것은 명안법(明眼法)이라고 스스로 이름붙인 수련법이다.
아주 쉬운 발공(發功)이면서 무언가 깨우침을 얻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한 과정이 있다.
필자도 끝까지 가보지 못한 아직은 수준이 낮은 단계인데 초보 과정에서도 벌써 스스로 무언가를 느끼는 명상의 첫 번째 과정이다.
눈을 감고 혀는 입천장을 향하여 붙이며, 허리를 곧게 세우고 바로 단전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앉은 자세는 편하게 앉으면 되며, 두 눈을 감은 상태에서 안으로 두 눈을 뜨고 앞을 응시하는 것이다.
두 눈앞에 빛과 그림자가 나타나는데 그 중에 흰 것이든 검은 것이든, 그것이 선이든 면이든지 한 점을 끝까지 추적하며 집중하는 수행법으로 계속 하다보면 커다란 빛의 세계가 열리는데, 첫 단계에서는 어떤 특정 대상 즉, 풍경이나 사람 얼굴이나 등등이 보이며, 두 번째 단계에서 무아(無我)에 들게 된다.
그런데 기실은 세상 종교나 철학에서 말하는 무아도 필자의 생각엔 유아(唯我) 속의 한 부분이다.
우리가 심신을 갖고 있는 이상엔 참으로 유무아 일체(有無我 一體)이지, 무아와 유아를 다로 구분할 수 없다고 본다.
이러한 서술의 목적은 필자의 수련법을 알리려는 것이 아니고, 삶을 아름답게 하는 좋은 길은 서로가 공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지금 이 문화기행을 집필하고 있는 취지도 이와 같은 맥락이므로 독자 제현의 이해를 구한다.
세상에는 도인도 많고 선지자도 많으며 기이한 사람도 많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 자연 속 설경(雪景)에 묻힌 한 티끌같은 눈송이보다 더 뛰어난 도(道)는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다.
그래서 그 옛날 태조 이성계도, 이갑룡 도인도 이 성스러운 자연, 마이산으로부터 맑은 정기를 받고 그 당시로는 세상이 뒤집힐 왕권의 계시라든가, 돌탑의 신비로움 같은 전설을 만들어 놓은 것이리라.
화엄굴 안쪽에는 석간수가 흐르는데, 예부터 득남수(得男水)라 불리워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치성을 드렸다고 하는데, 지금은 무분별한 사람들의 치성과 무속 활동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음양이치상으로도 여름에는 차가운 기운이 감돌고, 겨울에는 훈훈한 기운이 감도니 생체 에너지를 활성화하는 신비한 자연의 섭리가 인간의 가장 중요한 탄생을 돕는 것은 당연하리라.
이 화엄굴의 냉천(冷泉)과 온풍(溫風)은 지나가는 나그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고, 이 약수를 한 모금 들이키며 지나온 세월의 노고를 잠시라도 쉬어 간 옛 사람의 발자취가 저절로 가슴을 숙연하게 하였다.
필자는 이 화엄굴 입구에 앉아 잠시간만 명상에 들었는데 어디선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필자의 모자를 치며 날아드는 바람에 눈을 떴다.
한 마리 산새가 입구 옆 역고드름 위에 앉아 있었다.
남들이 믿든 안믿든 간에 괴이한 현상을 이 마이산에서 체험하게 된 것이다.
2005년도 10월달에 태백산을 처음 갔을 때에도 반재 길목에서 한 노인의 에너지를 피부로 느끼는 체험을 한 적 있는데, 이번에는 이름모를 새 한 마리(참새 크기 2배 정도 되는)가 명상에 빠진 내 머리를 치며 그것도 역고드름 위로 날아가 앉아 있다니---.
그것은 말로서는 다 표현하지 못하는 나만의 무엇이며, 우연의 일치인지 필연의 일치인지 모르는, 이 화엄굴을 기억하는 가장 뚜렷한 인연이 되었다.
아무튼 난 한동안 그 기이한 현상에 무언가 의미를 부여하려는 부질없는 순간을 보내고, 눈 앞에 펼쳐지는 설경을 잠시간 바라보고 있었다.
여태껏 저렇게 가늘고 평화로운 흰 눈을 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어린 시절, 세 살인가 네 살인가 때에 어머니 등에 업혀 눈길을 걸어가던 기억이 불현듯이 떠올랐다.
어머니의 품처럼 고즈넉하고 평안한 흰 눈이 화엄굴을 향해 소리없는 바람에 날려 쏟아져 들어왔다.
한겨울이면 화엄굴 입구는 암벽의 낙석 위험으로 입산통제구역으로 팻말이 붙어져 있다.
독자들은 이를 유념하여 필자의 기행문에 개의하지 말기를 당부드린다.
시간상 수련 겸 탐방, 취재는 이만하고 돌아서야 했다.
하산 길은 심신이 가볍고 너무도 편안했다.
북부주차장에 도착하니 김기자의 따뜻한 커피 한잔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은 역시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하는 것이다.
두 귀가 우뚝 선 수마이봉과 암마이봉을 바라보며 오래도록 겨울 마이산의 정경을 가슴에 품고자 기억을 새기는 하산 길목에서, 태조 이성계가 고려 장수 시절 마이산을 두고 읊었다는 시 한수를 음미해 보았다.
天馬東來勢已窮 (천마동래세이궁)
천마가 동쪽으로 달려와 지쳤는데
霜蹄未涉蹶途中 (상제미섭궐도중)
그 지친 말발굽 결국은 쓰러져
涓人買骨遺其耳 (연인매골유기이)
연인은 뼈를 사가고 그 귀만 남기니
化作雙峰屹半空 (화작쌍봉흘반공)
두 봉우리로 변하여 허공 가르며 우뚝 서 있네
하산길, 주차장을 빠져나오는 길목에서 차창 밖으로 마이산을 바라보니 “빨리 왔어야지, 일단 저기를 가보고 다시 내게 오게나” 하는 이갑룡 도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두(話頭) 하나가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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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빈,김은영,이보미 기자 smi544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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