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와 트럼프, 누가 대한민국 국익에 도움되나?
미국 대선 본선에서 맞대결을 벌일 가능성이 커진 미국 민주당 대선주자 힐러리 클린턴과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의 대(對) 한반도 정책구상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두 주자 모두 공약을 완성한 단계는 아니지만 연설과 성명,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집권시 어떤 방향으로 한·미관계와 북한 문제를 다뤄나갈지에 대한 '의중'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27일(이하 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첫 외교정책연설을 하는 자리에서 한·미동맹과 북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보여주었다. 국무장관 출신인 힐러리는 지난해 4월 대선출마 선언 이후 다양한 계기에 한반도 현안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
1953년 상호방위조약체결을 이후 63년간 유지돼온 한·미동맹의 가치와 역할을 놓고 두 후보의 시각은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미 국무장관 출신으로 한·미관계와 북한 문제를 직접 다뤘던 힐러리는 동맹 간의 긴밀한 공조와 단합을 중시하고 있다. 북한이라는 공통의 위협에 대처하고 역내 질서를 유지해나가는 데서 한·미 간의 '파트너십'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힐러리는 지난해 8월 23일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북한 포격도발 사건을 거론하며 "이번 사건은 미국이 동맹국 방어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가져야할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인 지난 1월 6일 성명에서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조약동맹인 한국과 일본을 방어하기 위한 필요한 어떤 조치라도 북한을 상대로 취해야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트럼프는 동맹을 제대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채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안보를 의존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는 "동맹국들은 재정적·정치적·인적비용과 관련해 적정한 비용분담을 해야 한다"며 "동맹국들이 적정한 몫을 부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들 국가가 스스로를 보호하도록 해야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 주한미군을 철수하거나 '핵우산' 제공을 거둬들일 수도 있다는 엄포다. 이는 앞으로 각 동맹과의 방위비 분담협상 과정에서 동맹국의 부담을 높이려는 전략적 압박의 의미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동맹관계를 일종의 '거래관계'로 인식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해 대선 출마 직후부터 삼성이나 LG전자의 TV를 거론하며 한국이 산업적으로 부유한 나라임에도 방위비는 '푼돈'만 내고 있다는 식으로 '안보무임승차론'을 제시해왔다. 이는 신(新) 고립주의를 보이는 트럼프와 제한적이나마 개입주의를 지지하는 클린턴 간의 외교노선상 차이를 보여주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문제를 놓고는 두 후보 모두 '중국 역할론'을 제시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 "북한은 통제 불능"이라며 "우리는 경제적 수단을 동원해 중국이 북한을 통제하도록 압력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중국과 맺고 있는 경제협정을 이용하면 중국을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다는 논리다. 국무장관으로 있으면서 북한을 직접 상대해봤던 힐러리도 마찬가지로 중국의 역할을 중시하고 있다. 힐러리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인 지난 1월6일 선거유세 중에 "북한의 불법적인 핵활동을 종결하기 위해 중국이 북한과 김정은을 압박해야 하며 이를 위해 미국은 중국과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같은 날 내놓은 성명에서 "중국은 북한의 가장 가까운 동맹이며 중국이 나서서 북한이 국제적 합의를 지키도록 압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힐러리는 지난 2월6일 제5차 민주당 대선 토론회에서 "역내 지역국가들과 함께 북한을 고립시키고 차단하는 모든 조치를 강구해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중국 역할론에 공감하는 두 후보이지만 북한을 바라보는 근본적 시각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설명이다. 힐러리는 현재 진행 중인 대북 제재와 압박이 북한을 대화와 협상 테이블로 나오도록 유도하는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 힐러리는 지난해 6월 펴낸 회고록 『힘든 선택'에서 "북한이 검증가능한 방법으로 완전히 핵무기를 제거하는 경우 관계정상화와 경제적·인도적 지원을 제공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 고립이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현재 박근혜 대통령이 생각하는 대북인식과 같다. 힐러리는 지난해 6월 3일 대선후보 출마후 첫 정책연설에서 북한을 이란, 러시와 함께 '전통적 위협'(traditional threat)으로 꼽았다.
특히 힐러리는 집권 직후부터 북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뤄나가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힐러리는 지난 1월 6일 성명에서 "데이 원(집권 첫날)부터 위험한 북한을 다룰 수 있는 경험과 판단을 지닌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북한이 대화의 장에 나올 수 있도록 '채찍'과 '당근'을 사용한 투트랙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북한 핵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북한 김정은 정권을 '상종'할 대상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게 소식통들의 평가다. 중국 역할론을 제기하는 것도 북한 문제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을 '미치광이'(maniac)에 비유해온 트럼프는 지난 2월 폭스비즈니스 방송에 나와 "중국만이 김정은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자유무역협정을 놓고도 두 후보의 시각이 뚜렷이 엇갈린다. 힐러리는 기본적으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지지한다. 양국 산업의 활성화와 시장의 확대, 일자리 창출 면에서 윈-윈 효과를 가져오는 자유무역협정은 미국 경제에 어떤 식으로든 유익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한·미 FTA를 거론하지 않았지만, NAFTA를 지칭하며 "미국의 완벽하고 총체적인 재앙"이라며 "미국의 제조업 지대를 공동화하고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만 두 후보 모두 오바마 행정부가 드라이브를 걸어온 다자자유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는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미국 중서부의 '러스트 벨트'(쇠락한 제조업 지대)를 중심으로 반(反) 무역 정서가 의외로 강하게 번져있는 탓이다. 당초 TPP에 대한 입장표명에 소극적이었던 힐러리는 지난 2월 23일 포틀랜드 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모든 새로운 무역협정에 대해 높은 빗장을 세워야 한다"며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임금을 상승시키며 국내 안보를 증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TPP가 이 같은 기준에 미달했기 때문에 반대했다"며 "앞으로도 새로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모든 협정에 반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