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각당 집토끼들 반란, 산토끼들 냉담, 바뀌는 정치 패러다임
4·13 총선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집토끼(지지층)’의 반란과 ‘산토끼(부동층)’의 냉담이 고착화되고 있다. 전통적 지지층이 다시 결집에 나서느냐, 부동층이 얼마나 투표장에 나오느냐가 막판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여야는 너나할 것 없이 ‘사과’ ‘사죄’라는 표현을 쓰면서 지지층 복원과 부동층 붙잡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여론은 냉담한 분위기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7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4일~6일 실시)를 보면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텃밭에서 ‘비상등’이 켜졌다. 새누리당은 대구·경북(TK)에서 지지율이 46.0%를 기록, 지난주(53.1%)에 비해 7% 포인트나 빠졌다. 더민주도 같은 기간 호남(광주·전라)에서 지지율이 32.6%에서 21.2%로 11% 포인트 이상 추락했다.
반면 국민의당은 호남에서 과반이 넘는 50.8%의 지지를 얻어 지난주(40.5%)에 비해 10% 포인트 이상 급등했다. 2012년 총선 당시 새누리당이 대구에서 66.5%, 민주통합당(현 더민주)이 광주에서 68.9%의 정당 지지율을 얻은 것에 비하면 ‘상전벽해’라고 할 만한 격변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대구와 광주에서는 ‘반란 투표’ 조짐이 뚜렷하다. 대구에서는 새누리당을 탈당한 무소속 유승민(동을) 후보가 당선에 거의 근접했다. 류성걸(동갑) 주호영(수성을) 후보도 선전 중이다. 더민주 김부겸 후보(수성갑)는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고, 같은 당 출신 무소속 홍의락(북을) 후보도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더민주는 광주에서 8석 전석을 내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국민의당은 연일 호남에서만 20석 이상을 차지하겠다며 기세를 올리는 중이다. 이에 새누리당은 “피눈물 나게 반성한다”며 읍소·사죄 퍼포먼스를 이어가고 있고,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는 8~9일 광주를 찾아 ‘위로’와 ‘사과’를 하기로 했다. 지지층은 이탈하는 한편 ‘바람’을 일으켜야 할 부동층은 팔짱을 끼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일 발표한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 표준오차 ±3.1%포인트)에서 ‘20대 국회의원선거에서 투표할 지역구 후보의 소속 정당’을 물은 결과 응답자의 27%가 지지하는 정당이 없거나 의견을 유보했다.
특히 19~29세는 부동층이 47%에 달했다. 통상적으로 선거가 다가올수록 부동층이 줄어들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아직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 부동층의 관망세에 수도권 판세도 오리무중이다. 전문가들은 여야의 막판 읍소 전략이 집토끼의 반란과 산토끼의 무관심을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무(無)이슈, 무(無)인물로 투표에 대한 전반적 관심과 투표 적극성이 떨어졌다”며 “전통적 지지층에 습관적 호소와 엄살 전략을 쓰고 있지만, 무상급식, 뉴타운 등 대형 이슈가 없어 동기 부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중앙 중심이 아닌 ‘제3의 물결 시대’ 선거 패러다임은?
이제 과거 민주화시대를 청년시대로 보낸 3,86 세대는 대게 40대, 50대 초반에 들어섰다. 이들은 대학시절을 민주화 데모로 보냈으며 또 최초의 컴퓨터, 인터넷 IT세대이기도 하다. 앞선 세대들이 산업화의 공로가 있다면 지금의 386들은 그런 고생을 보고 자라면서도 전 세대와 거리가 좀 있는 첫세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 우리사회의 가장 힘이 센 허리중추를 책임지고 있다.
이들에게 가장 인생을 살면서 힘든 것이 무엇인가? 라고 물으면 열심히만 하면 이룰 수 있었던 앞의 세대들과 달리,하나같이 “현재 열심만해서 잘안되는 내집마련, 아이들 교육문제”다. 이세대의 일부는 좋은 직장을 가지고도 앞 세대들의 지나가고 있는 마지막 아파트 생활문화를 힘겹게 살고 있기도 하며 집값문제, 교육문제로 밤새 고민하며 허리가 휘고 질좋은 문화,경제생활을 위해 집값문제 때문에 열심히 일하는 것에 더하여 최초로 머리도 잘굴려야 하고 중앙과 서울을 과감히 벗어난 전원으로 이사하고 있는 첫세대다.
당연히 선거 패러다임도 점점 바뀌고 있다. 이 세대는 지금 서울, 중앙 중심의 생활 패러다임과 불합리에는 염증을 느끼는 세대다. 이런 세대가 선호하는 지역은 삶의 질을 추구하는 웰빙, 전원생활을 추구하기도 하는데 이런 지역은 대게 도시 중심보다 정치, 문화의식이 좀 떨어지는 농촌 원주민들과 도심보다 교육도 생활의식 수준도 월등히 낳은 4,50대 전원 족들이 섞여있다. 이런 세대들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선거구는 어디일까? 사례로 경기도 고양갑으로 가 보자!
지난 6일 낮 경기 고양 어울림누리공원 대극장에는 경기도교통연수원 주최 운수종사자 교육이 열려 천명이 넘는 택시, 버스기사들이 모였다. 총선을 앞둔 후보들이 이런 자리를 놓칠 리 없다. 고양 갑·을·병·정 4개 지역구의 후보들은 이 자리에 총출동했다. 대극장 로비는 참석 접수를 하러 기다리는 기사들과 각각 빨강, 파랑, 노랑, 녹색의 원색 옷을 입은 선거 운동원이 한 데 뒤섞여 수라장을 이뤘다. 최아무개(68·운수업)씨는 “4년마다 저러지. 말로만 국민, 실은 자기 사욕 채우려는 거면서”라고 퉁명스레 말했다.
대극장 로비를 가장 열심히 누비는 후보들은 이 지역이 속한 고양갑 후보들이었다. 이 지역은 현역 의원인 심상정 후보(57·정의당 대표)와 손범규 새누리당 후보가 3번째 접전을 펼치는 곳이다. 역대 전적은 일 대 일이다. 손 후보가 18대, 심 후보가 19대 의석을 차지했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여성 진보 정치인인 심 후보는 특유의 호탕한 목소리로 기사들에게 악수를 청하며 다녔다.
“변함 없이 노동자와 함께 해온 심상정입니다.” 심 후보 남편 이승배씨도 나와 함께 지지를 호소했다. 8년째 이곳을 다져온 심 후보를 알아보고 반가이 맞는 이들은 적지 않았다. 김원진(65)씨는 “심 의원이 공약을 다 지키진 못했어도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당 대표로서 지도력도 있고 괜찮다고 본다”고 말했다. 심 후보는 자신의 성과로 꼽는 고양동 군부대의 차질 없는 이전과 복합문화센터 건립, 마을교육 공동체 구축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다른 쪽에선 손범규(49) 새누리당 후보가 웃음을 띄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교육을 받으러온 택시기사 박아무개(48)씨는 손 후보의 손을 잡고 “걱정하지마. 박준(더민주 후보)이 도와주고 있잖아. 이번엔 꼭 될 거야”라고 격려했다. 지난 19대 선거에서 손 후보는 야권 단일화로 나온 심 후보에게 170표 차이로 졌는데 이는 전국 최소 표차다. 손 후보가 내세우는 것은 집권 여당의 후보라는 점이다. 그의 선거 명함에는 ‘중앙 정부를 움직이는 힘!’이 대표 문구로 달려 있다.
손 후보는 농촌 지역인 관산동으로 이동해 유세차에 타서 “관산동에 지하철이 들어오면 땅값이 오르지 말래도 오른다. 이를 위해 중앙정부의 정책적 결단과 막대한 국비가 지원돼야 한다. 말 잘하고 텔레비전에 많이 나오는 후보 보단 집권여당의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택시기사 최아무개(52·고양 20년 거주)씨는 “당이 커야 추진력이 있지, 정의당처럼 작아선 어렵죠. 18대 때 중부대학교 고양캠퍼스도 유치해서 신뢰가 갑니다”라고 말했다. 손 후보는 신분당선 연장과 2층버스 도입, 우수교사 초빙제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원주민들 뿐만 아니라 도심에 직장을 두고 있는 이지역 전원족들에게는 꿀같은 공약이다.
이 지역 덕양구는 농촌과 도시가 함께 있는 도농복합지역이다. 1980년대 후반 고양·일산신도시로 개발되기 전에는 관산동 같은 농촌 지역이 대부분으로 여당 강세를 보여왔다. 지금은 서울로 출퇴근하는 인구가 거주하는 거대 베드타운(직장과 집이 떨어져 있는 이들의 거주를 담당하는 동네)이 됐다. 신도시 개발로 젊은 인구가 대거 유입되자, 2000년대 들어서 고양갑 선거구에선 지금 더민주 계열 정당 국회의원이 배출됐다.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이 16~17대 내리 당선됐다. 18대 때는 심 후보와 한평석 통합민주당으로 야권 표가 나뉜 사이 새누리당의 손 후보가 의석을 되찾아 왔다.
야권 연대를 이뤘던 19대와 달리 이번 선거에선 다시 야권이 나뉘었다. 큰 변수다. 박준(47)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대극장 중앙문 쪽에 자리잡은 심 후보와 멀리 옆문 쪽에 선거운동원들과 자리를 잡고 들어가고 나가는 이들을 공략했다. 박 후보는 심 후보와 정의당에 대해 쌓인 앙금이 깊었다. 그는 “지난 총선에서 우리의 양보와 협조가 없었다면 심 후보가 당선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아무런 도움을 받지 않았다니요”라고 말했다.
박 후보 쪽은 지난 총선에서 자신이 물러난 만큼 이번에는 심 후보 쪽 양보를 바랐다. 하지만 심 후보 쪽은 “박 후보 요구에 따라 경선을 치러 후보를 결정한 만큼 양보라는 말은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박 후보는 “연대는 결코 없다. 8년 동안 지역위원장을 맡으면서 믿고 지지해준 이들을 위해서 끝까지 완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거구를 원당권, 고양권, 화정권, 식사동권 4곳으로 나누고 지역별 맞춤 공약을 내세우고, 단기간에 3파전 구도로 만들겠다는 전략을 밝혔다.
이곳 여론조사는 하루 차이를 두고도 선두 후보가 뒤바뀌는 종잡기 힘든 결과를 내놓고 있어 결과를 가늠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에스비에스>가 티앤에스(TNS)코리아에 의뢰해 2~5일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손 후보가 42.2%의 지지율을 기록해 심 후보(36.4%)를 5.8%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3%p, 응답률 6.5%). 오차 범위 안이지만 손 후보의 우세다. 반면 <문화방송>(MBC)이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1~2일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는 정반대였다. 심 후보가 43.4% 지지율을 기록해 27.7%에 그친 손 후보를 오차 범위 밖으로 크게 따돌렸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4%p, 응답률 8.3%). 박 후보는 7.9%에서 9.5%로 상승세를 보였다.
이날 극장에서 어떤 60대 유권자는 “각 후보는 이 지역에 오랫동안 알려져 있는 정치인들이기 때문에 적은 표차의 승부가 날 것이라고 본다. 젊은 층이 얼마나 찍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층의 투표는 보통 야권에 유리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야권이 나뉜 상황에서 어느 쪽으로 흐를 지는 미지수다. 이 지역 한 대학생 유권자는 “집권당 정책은 청년을 위한 게 없다는 생각은 있는데, 누굴 뽑을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모든 지역이 경기 고양갑과 사정이 같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국민들은 자리보장, 계파패권 싸움에 물들었던 기존의 여야 각당에 이만저만 식상해 있는 것이 아니다. 중앙중심의 정치 패러다임은 이제 저물고 있다. 실효성 있는 정책공약 부재, "읍소전략", "기업과 사전 약속도 없었던 빌공자 공약", "아무 준비없는 급조 신패러다임 말들" 같은 이미지 쇼 정치만으로 이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을까? 총선은 바람몰이 큰 선거인 대선이 아님은 분명하다. 각 선거구에 맞는 실효성있는 정책공약, 참신하고 유능한 인물들만이 선택받을 것 같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