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헌 비롯 한국인 195명 조세회피처 역외탈세 의혹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51)씨를 비롯해 195명의 한국인이 조세회피처에서 역외탈세를 벌였다는 의혹이 지난 4일 제기되면서 파문이 점점 커지고 있다. 국세청이 본격 조사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은닉재산의 국고 환수가 얼만큼 이뤄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뉴스타파에 따르면 재헌 씨는 지난 2012년 5월18일 조세회피처인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3개의 유령회사를 설립해 스스로 주주 겸 이사로 취임한 것으로 밝혀졌다.
ICIJ는 “페이퍼컴퍼니가 모두 불법적인 목적을 지녔다는 증거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조세 회피처를 활용해 탈세나 범죄, 편법 증여 등에 이용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았다. 재헌 씨 측은 이번 의혹과 관련해 “중국 관련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 회사를 만들었지만, 초기에 사업이 무산돼 계좌개설도 하지 않았고 조세 회피와는 일체 무관한 사안”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국세청은 지난 2013년 180여명의 조세회피처 명단이 공개됐을 당시에도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나선 바 있다. 이번에도 ICIJ가 밝힌 195명의 명단이 확보되는대로 역외탈세 여부 등에 대한 전면조사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는 한ㆍ미 간의 금융정보자동교환협정(FATCA)이 시행될 예정에 있고, 내년부터는 영국ㆍ독일ㆍ케이만제도 등 전세계 53개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금융정보자동교환협정을 통해 대량의 해외계좌 정보를 직접 받아서 조사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해외은닉자산 환수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의 시민단체 조세정의네트워크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1970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인이 해외 조세피난처로 빼돌린 자산은 총 7790억 달러(약 900조원)로, 중국ㆍ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31일까지 미신고 역외소득에 대한 자진신고제를 시행했지만 이 가운데 어느 정도가 외부로 드러났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범죄수익에 대한 국고환수 역시 여전히 더딘 상황이다. 서기호 정의당 의원의 법무부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지난해 6월말까지 추징대상 금액인 25조6259억원 가운데 99.72%인 25조5538억원이 환수되지 않은 채 여전히 미제로 남은 상황이다. 이처럼 환수 작업이 더딘 이유로는 해외에 산재해 있는 차명 계좌에 대한 추적이 쉽지 않고, 범죄자가 사망하거나 범죄자가 해외로 도주한 뒤 공소시효가 완료된 경우에는 ‘부가성의 원칙’에 따라 몰수형에서 벗어나는 점 등이 꼽히고 있다.
한 과학수사학 전문가는 “유엔(UN)의 부패방지협약을 비준하지 않거나 외국으로부터 요청받은 재산환수에 관한 법률적 조치가 규정돼 있지 않는 국가의 경우에는 빼돌려진 부패자산 회복이 매우 어려울 수 있다”며 “해외은닉재산을 실효적으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불법재산이 숨겨져 있다고 추정되는 국가와 적극적인 협력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