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특징은 중·일과 비교해야 보입니다"

posted Oct 1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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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의 대가' 마르티나 도이힐러 교수 인터뷰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유럽 한국학의 선구자인 마르티나 도이힐러(78) 런던대 명예교수는 "한국 사회의 특징은 중국, 일본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다"며 한국사 연구에서 비교사적 접근을 강조했다.

 

'한국의 유교화 과정' 개정판 출간에 맞춰 방한한 도이힐러 교수는 최근 이 책의 출판사인 '너머북스'에서 가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사회에 한정된 시선으로는 한국 사회의 특징은 제대로 발견하기 어렵다. 조금 먼 입장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조선을 건국한 주역들이 적극적으로 도입한 신유학(성리학)이 조선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밝힌 이 책은 실제로도 비교사적 시야와 사회인류학 방법론이 돋보이는 저작이다.

도이힐러 교수는 이 책에서 우리가 흔히 '전통'이라고 부르는 부계 중시, 종손의 가계계승, 장자우대상속, 제사의 관행들이 사실은 조선을 창건한 엘리트 집단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조준과 정도전을 비롯한 조선 건국의 주역들은 성리학을 공부한 학자계층으로서 고대 중국에 있었다고 믿어지는 이상적인 사회를 당시 조선에 재건하려고 하는 강한 비전을 갖고 있었다. 한국의 유교화는 바로 그 비전의 결과였다는 것이 그녀의 결론이다.

 

그러나 중국의 종법제도를 수용해 유교화를 이뤘으나 한국과 중국 사회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했다. 유교화 이전인 고려 사회의 친족 구조 특징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엘리트의 신분이 조선시대에도 계속 양계적인 조건으로 결정됐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출계는 부계에 따라 결정되지만 신분, 즉 사회 지위의 정통성은 부계뿐만 아니라 모계를 통해서도 좌우됐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중국과 달리 고려사회의 특징이었던 양계적인 개념이 그대로 지속됐으며 그 결과 적서(嫡庶)의 구분이 중국보다 더 엄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이처럼 그녀는 한국의 유교화 과정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중국, 일본 사회와 시종일관 비교한다. 그 속에서 신유학이 조선 사회를 어떻게 바꿔나갔는지가 명확하게 설명된다.

 

비교사적 접근을 강조하는 도이힐러 교수는 "한국 사회에는 고려면 고려, 조선이면 조선 이렇게 한 시대에만 천착하는 연구자들이 대부분이다. 한국 사회의 변동을 파악하려면 시대를 넘나드는 안목과 지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책은 도이힐러 교수가 장장 20여 년에 걸쳐 펴낸 역작이다. 150여 종이나 되는 사료와 290여 편의 각종 저작을 섭렵하며 사회인류학 방법론과 사회사, 사상사, 비교사를 통해 조선사회를 폭넓게 조망한다.

 

그녀는 1992년 미국 하버드대 출판부를 통해 출간한 이 책으로 이듬해 위암 장지연상을, 2001년에는 용재학술상을 받으면서 브루스 커밍스, 제임스 팔레, 에드워드 와그너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서구 한국학의 대가로 인정받았다.

 

이 책은 2003년에 나온 한글 번역본의 초판이 절판된 이후 '너머북스'에서 하버드대 출판부에서 판권을 사들여 이번에 개정판을 냈다. 역자는 이훈상 동아대 인문학부 사학전공 교수로 같다.

 

서구 한국학계의 다른 연구자들처럼 도이힐러 교수 역시 고려와 조선의 통치계급 사이에 급격한 단절이 없었다고 본다.

 

그녀는 "한국 사회의 유교화를 추진한 조선의 엘리트의 뿌리는 고려시대 귀족에 있었다"면서 "중국에서는 어떠한 사람이라도 과거를 통해 관리가 될 수 있었지만 조선에서는 이름난 가문의 자제들만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도이힐러 교수는 이 자리에서 새로운 저서에 대한 계획도 밝혔다. 그녀는 "4∼5세기 신라시대부터 한말까지 한국 사회의 기본 단위였던 고유한 씨족 형성과 발전을 구명한 '조상의 눈 아래에서(Under the Ancestors' Eyes)'를 내년에 하버드대 아시아센터에서 출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1935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난 그녀는 네덜란드 라이덴대 동아시아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 동아시아 언어문명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7∼1969년, 1973∼1975년 서울대 규장각에서 연구했고 1972년 옥스퍼드대 인류학과 특별연구원이 됐다.

 

1975년부터 1988년까지 취리히대 교수를, 1988년부터 2000년까지 런던대의 아시아·아프리카 대학 교수를 지냈다. 현재는 런던대 명예교수다.

 

changyong@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0/15 16:02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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