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극에서 역사극까지…연극계, 정치극 바람 불다

posted Oct 0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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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구름'(사진제공:국립극단)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 최근 연극계에 정치극 바람이 거세다.

 

우화로 사회를 비판하는 알레고리극, 정치권력의 불합리를 조소하는 풍자극, 근현대사를 조명하는 역사극 등 갈래도 다양하다.

 

전문가들은 "정치극은 국내 연극사에서 중요한 한 축을 이루며 맥을 이어왔다"며 "최근 정치현안에 대한 연극인의 문제의식이 다양한 극을 통해 표출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과거에 유행한 풍자극이나 알레고리극을 넘어 사안을 다층적으로 접근하는 극 형식이 시선을 끈다"며 "성숙한 담론 생산의 장으로서 연극의 역할을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돌아온 알레고리극·풍자극 = 가장 눈에 띄는 흐름은 1970-1980년대 연극계를 풍미한 풍자극과 알레고리극이 잇따라 무대에 오른다는 점이다. 독재정권을 비판하고 시민의 저항을 촉구하기 위해 주로 사용된 방식이다.

 

최근 국립극단(예술감독 손진책)에서 기획해 무대에 올린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개구리'(9월3-15일, 박근형 연출)·'구름'(9월24일-10월5일, 남인우 연출)을 비롯해 대학로 무대에 오른 '천안함 랩소디'(9월20일-10월13일, 오태영 작·김태수 연출), '아이리스 피씨방'(10월3-12일, 양동탁 연출) 등이 이러한 특징을 지닌 작품이다.

 

'개구리'는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신부와 동자승이 저승을 찾아가 '그분'과 '풍운'을 만난다는 우화를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했고, '구름'은 윤창중 성추행 의혹사건을 비롯해 종북·일베 논란 등을 극에 녹였다.

 

천안함 폭침을 둘러싼 의혹을 다룬 '천안함 랩소디'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을 소재로 한 '아이리스 피씨방'도 현실 정치에 대한 풍자를 담았다.

 

◇근현대사가 무대 위에…역사극도 '풍성' = 정파에 따라 해석이 분분한 일제 강점기, 미군정기, 1-5공화국 등 한국 근현대사의 장면을 무대 위에 옮긴 연극도 속속 무대에 올랐다.

 

연극 '알리바이 연대기'(사진제공:국립극단)
 

국립극단과 극단 드림플레이가 공동제작한 연극 '알리바이 연대기'(9월3-15일, 김재엽 작·연출)와 두산아트센터 무대에 오른 '가모메'(10월1-26일, 성기웅 각색, 타다 준노스케 연출))가 대표적인 예.

 

'알리바이 연대기'는 6.25 전쟁, 4.19 혁명, 장준하 의문사, 1989년 전교조 사건, 1995년 한총련의 5.18 광주항쟁 책임자 처벌 투쟁 등을 연대기 순으로 다뤘다.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 희곡 '갈매기'를 각색한 '가모메'는 역사적 사건을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당대 조선인과 일본인간 복잡한 관계를 그려 일본문화와 서양문물에 대한 조선인의 동경, 일본 패권주의의 폭력성 등을 표현했다.

 

이 밖에 재개발 뉴타운 공사현장의 농성을 소재로 한 연극 '고공정원'(22-27일, 김상진 작·윤정환 연출),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이 직접 출연하는 연극 '구일만 햄릿'(7일,14일, 22-27일) 등도 대학로에서 개막했거나 개막을 앞두고 있다.

 

◇"선동과 설득·야유와 풍자는 종이 한 장 차이" = 정치극을 만들 때 연극인들이 맞닥뜨리는 질문 중 하나는 이념성과 예술성 간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에 대한 것이다.

 

최윤우 연극평론가는 "정치극은 (비판의) 주체와 대상을 뚜렷이 드러내기 때문에 주장은 강력해지지만 동의를 구하는 힘이 약해지기도 한다"며 "이런 경우 무대 바깥으로 담론을 확장하기 어려워진다"고 분석했다.

 

자칫 '우리 편' 관객에게만 봉사하는 반쪽 짜리 공연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연극 '천안함 랩소디'(사진제공:문화아이콘)
 

또 메시지의 효율적인 전달에 치중해 극의 논리적 완성도나 상징·은유 등 미학적인 요소가 약화할 경우 설득이 아닌 선동, 풍자가 아닌 야유에 지나지 않는 연극이 될 수도 있다.

 

최 평론가는 "정치극이 범하는 오류 중 하나는 극 중 캐릭터를 치밀하게 구축하는 데 공을 들이기보다는 (정치) 현상을 언급하는 데에만 머문다는 것"이라며 "논리적 개연성을 잃은 연극은 결국 허무한 느낌만 남기게 된다"고 지적했다.

 

◇"정치극, 생산적인 토론의 물꼬 터야" =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 같은 '정치극 열풍'을 환영했다. 관객에게 사회·정치현안을 '나의 문제'로 고민하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최 평론가는 "무대 위 이야기가 개개인의 '화두'로 확장되고 있다"며 "이는 분명히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김옥란 연극평론가는 요즘 관객이 원하는 건 '선동'이나 '야유'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대신 정파논리로 양분돼 대치하는 '논쟁의 교착상태'를 넘어선 다각적인 통찰을 요구한다고 분석했다.

 

김 평론가는 "도식적인 이분법이 아닌 사안에 대한 다층적인 사유를 가능하게 연극이 민주화 이후 세대의 감수성에 부합한다"며 "거친 직설어법에 의존하는 과거의 형식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극 '가모메'(사진제공:두산아트센터)
 

이어 "실제 김재엽, 성기웅 등 젊은 연극인이 다큐멘터리 포맷을 빌린 새로운 (정치)극 실험을 하고 있다"며 "이들은 합리적인 토론을 시작하는 장으로서 연극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hrseo@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0/08 06: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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