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LA 총기난사 사건 발생, 테러우려 총기 공포 확산
미국 캘리포니아 주(州) 로스앤젤레스(LA) 동부 샌버나디노 시의 발달장애인 복지·재활시설 '인랜드 리저널 센터'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사회는 2일 또다시 대형 총기난사 사건이 터져 큰 충격에 휩싸였다. 특히 이번 사건은 사상 최악의 프랑스 파리테러 이후 미 당국이 본토 내 테러 가능성을 우려해 경계를 극도로 강화한 상태에서 발생한 것이어서 미국인들이 느끼는 심리적 공포는 더욱 크다.
지금까지 나온 수사당국의 발표와 언론 보도들에 의하면, 사건은 이날 오전 11시께 군복 차림의 무장한 복면 백인3명이 샌버나디노의 장애인 재활시설인 '인랜드 리저널 센터'에 난입해 성탄절 파티를 즐기던 이들에게 소총을 난사하면서 시작됐다. '인랜드 리저널 센터'는 샌버나디노와 리버사이드 카운티에 거주하는 발달장애인들의 재활을 위해 44년 전에 설립된 비영리 의료기관이다. 직원은 670명이고 지적장애, 뇌성마비, 자폐, 뇌전증 등으로 불편을 겪는 이들이 센터를 이용하고 있다. 인랜드 리저널 센터의 대표인 매리페스 필드는 총기난사가 회의장과 도서관에서 발생했다고 밝혔다.
샌버나디노 카운티 경찰은 용의자들의 복장이나 도주 사실 등에 주목하며 이번 습격이 계획적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제러드 버건 경찰국장은 기자회견에서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고 목적을 갖고 온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버건 국장은 "전통적인 의미의 (조직적 테러단체에 의한) 테러리즘인지 확인할 정보가 없지만 최소한 지금 상황이 국내에서 발생한 (통상적인 의미의) 테러인 것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용의자들이 군복에 스키 마스크를 착용한 백인 3명으로 연사가 가능한 돌격소총인 AK-47을 난사했다고 보도했다.
샌버나디노 경찰에 따르면 이들의 총기난사로 최소 14명이 숨졌고 17명이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사건 발생 때 근처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현장 취재에 투입된 NBC방송 카메라맨 알렉스 바스케스는 피해자들의 처참한 모습에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바스케스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도망치는 사람들을 봤는데 등, 팔, 다리, 가슴 등에 총을 맞았다"며 "심하게 다쳐 바닥에 누워있는 여성 한 명이 숨을 거두는 순간을 봤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의 신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바스케스는 "이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 멀쩡하게 일하러 갔다가 최악의 악몽을 겪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사건이 발생한 회의장은 외부 단체가 빌려쓸 수 있는 방이다. 센터 직원인 브랜든 헌트는 CNN방송 인터뷰에서 이날도 한 외부단체가 회의장을 대관해 성탄절 파티를 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필드 센터장은 영국 가디언 인터뷰에서 사건이 일어난 시간에 회의장을 빌린 단체가 샌버나디노 카운티의 공중보건과였다고 나중에 밝혔다. 그는 사건 때 현장에 없어 파티를 하고 있었는지는 모른다고 덧붙였다. 용의자들은 총기난사 후 검은색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을 타고 달아나려 했지만 경찰은 이들 중 2명을 추격해 사살했다. 사건 직후 인랜드 리저널 센터에는 샌버나디노 경찰, 기동타격대, 폭발물처리반,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 응급구조대 등이 출동해 북새통을 이뤘다.
폭탄이 설치됐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폭발물처리반의 로봇 수색 결과 특이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고 센터 안에 일부가 인질로 잡혀 있다는 보도도 있었으나 경찰은 나중에 인질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망자와 부상자는 바퀴가 달린 들것에 실려 이송됐고 화를 면한 이들은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줄지어 건물을 빠져나오는 모습이 TV 카메라에 잡혔다. 센터 밖에서는 생존자들과 가족들이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는 풍경이 종종 목격됐다. 참사를 목격하거나 총성을 들은 생존자들은 건물에 숨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문자메시지로 가족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AP통신에 따르면 주민 테리 퍼티트는 이날 센터를 방문한 딸에게서 "사람들이 총에 맞았다. 사무실에서 경찰을 기다리고 있다. 기도해달라. 사무실에 갇혀있다"는 문자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번 총기난사는 2002년 12월 코네티컷 주 샌디훅의 초등학교에서 발생해 어린이 20명을 포함한 26명을 숨지게 한 사건 이후 최악인 것으로 거론되고 있다. 총격범 중 1명도 경찰에 의해 사살됐다.
이번 총기난사 사태는 희생자 숫자로만 보면 2012년 12월 미 코네티컷주 뉴타운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사건 이후 최대 규모다. 당시 샌디훅 초등학교에선 무장괴한이 학교에 난입해 마구잡이로 총격을 가하면서 어린이 20명을 비롯해 총 28명(총격범 및 총격범 모친 포함)이 숨졌다. 이번과 비슷한 규모로는 2013년 9월 워싱턴D.C. 해군기지 총기 난사(13명 사망), 2012년 7월 콜로라도 주 오로라 극장 총기 난사(12명 사망), 2009년 11월 텍사스 주 포트 후드 미 육군시설 총기 난사(13명 사망), 2009년 4월 뉴욕 주 이민국 총기 난사(14명 사망) 사건 등이 있다. 이보다 앞선 2007년 4월에는 버지니아 주 블랙스버그의 버지니아텍에서 한인 학생 조승희가 32명을 사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 발생했다.
이번 사건 규모에는 못 미치지만 지난 6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의 흑인 교회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9명 사망)부터 불과 사흘 전인 지난달 28일 콜로라도 주 스프링스의 낙태 옹호단체 '가족계획연맹'(Planned Parenthood) 진료소에서 벌어진 총격(3명 사망) 사건에 이르기까지 올해 들어서만도 크고 작은 총기 사건이 이미 여러 건 발생했다. 이들 사건의 상당수는 무슬림 극단주의자나 백인 우월주의자 등 '외로운 늑대', 즉 글로벌 테러 조직에 속하지 않은 자생적 테러리스트에 의해 자행된 것이다. 이번 사건은 3명으로 추정되는 총격범들 중 1명은 사살되고 2명은 도주 중인 상태라 정확한 총격 배경을 알 수는 없지만, 이 같은 범주의 일환이 가능성이 크다.
다만, 총격범들이 권총이 아닌 소총을 난사했다는 점에서 테러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더욱이 미 조지워싱턴 대학의 '극단주의 프로그램' 연구진이 전날 펴낸 보고서에서 미국 내에서 현재 파리 테러범 '이슬람국가'(IS)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사람이 최소 300명 이상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터라 미 당국은 이번 사건에 더욱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만에 하나 테러 조직과 조금이라도 연계된 것으로 밝혀질 경우 사건 자체의 파장과 더불어 미국 사회의 불안감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이번 총기 난사 사건을 계기로 미 정치권의 총기 규제 공방은 한층 가열될 전망이다. 당장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물론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까지 즉각 강력한 총기규제를 촉구하고 나서 미 대선의 핵심 쟁점으로도 부상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CBS 인터뷰 도중 "이런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렇게 빈번하게 일어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이제는 법을 바꿔야 한다"면서 비행기탑승금지 명단에 오른 이른바 '요주의 인물'들이 총기를 아예 구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클린턴 전 장관 역시 트위터에서 "이런 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면서 "이제는 총기폭력 근절을 위해 조치를 취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공화당과 공화당 대선 주자들은 아직 이렇다 할 견해를 밝히지 않고 있다.
스포츠닷컴 국제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