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식 감독 "영화 '러시안소설'은 내 창작의 살풀이"

posted Sep 1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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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식 감독.

 

3천만원으로 제작해 국내외 영화제 초청…"저예산 영화 만들기는 내가 최고"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상업영화로 만든 작품들이 잘 안 돼서 영화 만들기를 포기하려던 순간도 있었어요. 하지만 역시 저는 창작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렇다면 최악의 상황에서라도 만들 수 있는 영화를 실험해보자고 마음먹었죠."

 

신연식 감독(37)은 단돈 3천만 원으로 영화 '러시안 소설'을 만들었다. 2시간20분 분량의 이 영화는 지난해 수많은 상업영화를 물리치고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내 영화감독들이 뽑은 한국영화감독조합상 감독상을 받았다. 또 로테르담국제영화제와 예테보리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됐다.

 

'러시안 소설'은 적은 제작비가 믿기지 않을 만큼 빼어난 영상미와 배우들의 충실한 연기로 영화계 전문가들을 놀라게 했다.

19일 개봉을 앞두고 만난 신연식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기까지 창작자로서 힘든 시간을 거쳤다고 털어놨다. 그의 전작 '페어러브'(2009)를 만들때도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고 영화 개봉 뒤에는 안성기·이하나 주연의 중년 멜로로 화제를 모았지만 흥행에서는 쓴맛을 봤다.

 

"'페어러브'의 흥행 실패로 억대의 빚이 생기며 힘든 시기를 겪었죠. 이후 상업영화 감독을 하다가 몇 번 잘리기도 하면서 한국에서 상업영화를 한다는 게 나한테는 안 맞는 일인가 싶기도 해서 인생을 반추하게 됐어요. 영화를 그만둘까 생각하면서 살풀이 목적으로 만든 게 이 영화예요."

 

힘들어도 영화를 그만둘 수 없는 것은 그가 창작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기질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창작을 끊임없이 해왔던 사람들은 그게 저주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저는 누군가의 불행한 가정사를 들으면 어느새 그걸로 영화를 구상하는 저 자신을 발견해요. 병적인 거죠, 사실."

 

영화 '러시안 소설' 스틸컷.

어떻게든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그가 돌파구로 모색한 것은 초저예산 제작 방식이었다.

 

"한국영화의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얘길 하지만, 다양한 이야기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니거든요. 예산 규모에 맞는 이야기, 그 이야기에 맞는 제작 방식이 필요한 건데, 지금은 100억 원 규모 영화든, 30억 원 규모 영화든, 3억 원 규모 영화든 다 비슷하게 만들어지는 게 문제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한 번 '극악무도한' 극단적 실험을 해본 거죠. 단관 극장에서 하루 개봉하고 부가판권 수익까지 합해 최악의 상황에서 회수할 수 있는 제작비 액수가 2천만 원이더라고요. 그걸 가까운 친구들한테 투자를 받았고 스태프를 단 3명으로 꾸렸어요. 전에 함께한 스태프 중 도와주겠다는 이들도 있었지만, 절대 오지 못하게 했어요. 나중에 제작비가 조금 추가돼서 3천만 원이 됐죠."

 

마침 그가 연기를 지도하고 있던 신인 배우들이 있었고, 이 배우들로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 '러시안 소설'이 탄생했다.

 

배움이 짧지만 불타는 창작열로 소설가를 꿈꾸는 청년 '신효'(강신효 분)가 유명 소설가의 아들인 성환(경성환 분)을 따라 문학계 언저리를 기웃거리며 소설을 쓰다가 어느 날 긴 잠에 빠지고 27년 뒤에 깨어나 보니 '전설적인 소설가' 대접을 받게 되는 이야기다. 영화의 후반부는 신효가 그 소설 뒤에 가려진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창작자의 고통을 담은 이 영화 '러시안 소설'의 두 주인공은 신연식 감독이 스스로 갖고 있지 못하다고 느끼는 부분을 투영한 것이라고 했다.

 

영화 '러시안 소설' 스틸컷.

 

 

"'성환'과 '신효'는 양면에서 제 콤플렉스를 반영한 인물들이에요. 영화를 20년 가까이 했는데 잘 안 풀리니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예 인정을 못 받았으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고…. 내가 애매한 사람이어서 힘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김기덕 감독님처럼 삶을 완전히 예술로 불태우는 스타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엘리트로 아카데믹한 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아니고 양쪽 다 아니어서 어려운 게 아닌가. 신효가 성환에게 콤플렉스를 느끼고 성환은 신효에게 그런 걸 느끼듯 저는 양쪽에 다 느껴요. 그래서 둘이 만나는 지점을 그린 거죠."

 

재미있는 것은 그 역시 정반대로 꼽는 김기덕 감독과 이번에 새 영화 '배우는 배우다'로 만나 인연을 맺은 것이다.

 

저예산 제작 방식으로는 김기덕 감독과 동질감을 느끼지만 창작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고.

 

"저예산으로 하는 것은 제가 대한민국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원체 '없이' 해버릇 해서요. 그래서 김기덕 감독님과 대화가 편해요(웃음). 감독님이 저를 처음에 보시고 신뢰가 간다며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맡기셨죠. 그런데 역시 김 감독님과 저는 쓰는 어휘 자체가 다르더라고요. 또 감독님이 인물과 상징을 주된 바탕으로 한다면 저는 서사를 바탕으로 하죠. 베이스 자체가 다르다는 점에서 감독님의 시나리오를 내가 영화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 하고 스스로 궁금한 것도 있었어요. 결론적으로 워낙 서로 달라서 쉽지는 않은 작업이었어요."

 

아이돌 그룹 엠블랙 멤버인 이준 주연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배우는 배우다'는 오는 10월 개봉 예정이다. 이 영화 역시 국내 상업영화 평균 제작비에 비하면 아주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졌다.

 

영화 '러시안 소설' 스틸컷.

 

 

신 감독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저예산 영화, 다양성 영화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저예산영화로는 현재 돈을 벌 수 없는 구조지만 굳이 이걸 하려는 이유는 한국영화 산업이 건강해지길 바라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다양한 영화를 만들려면 다양한 이야기와 다양한 배우들이 있어야 하죠. 야구팀 고양원더스(국내 최초 독립야구단)처럼 신인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을 발굴한다는 데에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다양한 재료가 있으면 다양한 음식이 나올 수 있듯, '러시안 소설'의 배우들처럼 신선한 배우들과 함께 뻔하지 않은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어요."

 

 

 

mina@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9/18 08:03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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