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옌볜 '퉁소마을'에서 온 뮤지션 최민 씨

posted Sep 1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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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북한에서는 이미 퉁소라는 악기가 사라져버렸고, 한국에서는 북청사자놀음 공연 때만 반주악기로 등장하는 정도입니다. 조선족이 한국에 와서 퉁소의 명맥을 잇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뭔가 아쉽고 좀 서글프기도 하고…"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내 훈춘시 미쟝(密江)향(일명 '퉁소마을')에서 온 최 민(33) 씨는 10일 "나를 이곳에 있게 해 준 고 백대웅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초대원장님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어떤 의무감이 느껴진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원래 퉁소는 조선의 고유 악기였고 훈춘시 미쟝향이 '퉁소마을'로 불리게 된 것도 조선시대 함경도 지방에서 이주해 온 이들이 즐겨 불던 퉁소가 대대로 전해진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1997년 옌볜조선족자치주 정부가 미쟝향을 '퉁소지향'(퉁소의 고향)으로 지정하면서 이 마을 남녀노소 약 150명이 퉁소를 합주하는 장관을 연출할 때 최 씨는 이들 중 최연소 연주자였다.

 

중국 정부는 2008년 '퉁소지향'을 추인하면서 '비물질문화유산'(무형문화재)으로 인정했다.

 

미쟝향은 두만강과 접해 있어 강만 넘으면 북한 땅으로 중국과 북한이 두만강을 경계로 국경을 정하기 전까지는 양쪽에서 자유롭게 오가던 곳이었다.

 

이곳에 정착한 이들 가운데 퉁소를 잘 부는 한 씨 할아버지가 있었고 그에게서 아버지 세대가 퉁소 부는 법을 배우고 다시 최 씨와 같은 손자 세대에게 주법이 전해져 오늘날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퉁소를 잘 불어 어른들로부터 칭찬을 많이 듣던 최 씨는 옌볜예술고등학교에 이어 옌볜예술대학에서 퉁소와 북한의 개량 대금을 배웠다.

 

그에게 퉁소를 가르친 이는 김철호(64) 훈춘시립예술단 지휘자 겸 옌볜퉁소연구회 회장이고, 대금은 옌볜예술대학교 교수를 지낸 김동설 선생에게서 배웠다.

대학을 졸업할 때쯤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옌볜예술대에서 안식년을 보내던 고 백 원장이 졸업음악회에 참석해 북한 대금과 퉁소를 연주하던 최 씨를 눈여겨본 것이다.

 

백 전 원장은 그에게 한예종 유학을 추천, 정부로부터 장학금과 생활비까지 받는 조건으로 한국에 왔다.

 

백 전 원장은 최 씨를 위해 18분짜리 퉁소협주곡 '만파식적의 노래'를 직접 작곡했고, 최 씨는 국립극장에서 이 곡을 처음 연주한 2007년 11월29일의 감격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 곡은 지금도 그가 즐겨 연주하는 몇 안 되는 곡 중 하나이다.

 

한예종에서 최 씨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의 OST '천년학'을 연주한 박용호 교수 밑에서 공부했고, 또 옌볜에 있을 때 말로만 듣던 '퉁소 명인' 신용철 선생도 만나 많은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신 씨는 이미 한-중 수교 직후에 한국에 들어와 국악계 인사들과 교류하며 한국의 전통 악기 개량과 제작 및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었다.

 

대가들을 만나며 최 씨는 한국에서 전통악기의 맥을 이어보려는 뜻을 품었지만 2011년 그는 스승이자 은인인 백 전 원장을 잃는 슬픔을 겪었다.

 

최 씨는 "한국 국악계에서는 퉁소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후진을 양성하려는 이들이 거의 없는 실정"이라며 "일본 퉁소인 '사쿠하치'(尺八)나 중국 퉁소인 '샤오' 등 다른 나라의 악기에 대한 연구를 계속할 수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최 씨는 현재 그동안 쌓은 인맥으로 '프리랜서 퉁소 연주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퉁소의 희소성 덕분에 그를 부르는 곳이 적지 않다.

 

KBS 국악관현악단이나 서울시 등 각 시립국악관현악단 및 국립국악관현악단 등과 수시로 협연하고 있다.

 

13일에는 경기도 분당의 상업단지 '가든파이브' 야외무대에서 한국 특전사사령부 및 미8군 합동 윈드오케스트라(관악앙상블)와 협연할 예정이고, 16일에는 모 호텔에서 재즈밴드와 협연이 예정돼 있다.

 

그는 "대금 전공자들이 부전공으로라도 퉁소를 배울 수 있도록 하고, 국립국악관현악단 등에 퉁소 연주자 자리를 하나라도 두면 배우는 이들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퉁소와 대금의 차이에 대해 그는 "퉁소는 괄괄한 남성의 톤으로 직설적이고 웅장한 고구려풍이라면, 대금은 비교적 여성의 톤이면서 섬세하고 부드러운 신라의 품격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kjw@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9/10 14:39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