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은 남의 얘기" 적조·이상기온 피해 농어민 한숨

posted Sep 1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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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어민들 "복구 엄두 못내…추석 어떻게 날지 암담"

 

닭폐사, 과일 작황부진…"동생들 추석에 오지말라 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추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전통시장이 붐비고 선물을 나르는 택배업계는 눈코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등 명절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그러나 올해 최악의 적조나 이상기온으로 큰 피해를 본 어민과 농민들에게 '즐거운 명절'은 남의 얘기일 뿐 깊은 한숨만 쉬고 있다.

 

특히 적조가 덮친 지역의 어민들은 피해 규모가 워낙 엄청난 탓에 아직 복구할 엄두조차 못내고 있어 추석이 더욱 쓸쓸하게 느껴진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지난 7월 17일 처음 발견된 이후 51일 동안 남해와 동해안을 휩쓴 유해성 적조로 인한 피해가 집중된 경남 통영시에서는 들뜬 명절 분위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경남 해역에서는 이번 적조로 241개 어가에서 양식어류 2천505만마리가 죽어 217억원의 피해가 났다. 경남해역 양식 물고기 4마리 가운데 1마리꼴로 적조로 죽은 셈이다

 

통영·거제·고성·남해·하동에서 적조 피해가 발생했는데 통영의 피해규모가 전체의 80%에 가깝다.

 

가두리 양식장이 몰려있는 통영시 산양읍에는 "적조 피해 어민 여러분, 힘내세요"라는 문구를 담은 플래카드가 곳곳에 걸려있지만 엄청난 피해를 본 어민들로선 말처럼 쉽지 않다.

 

양식어민들은 매년 물고기를 출하한 후 받은 대금으로 은행 대출금을 갚고 명절 차례 준비하는 데 써왔다.

 

그러나 올해는 최악의 적조로 상당수 어민들이 돈 한 푼 만져보기가 어려운 처지다.

 

18년째 양식업을 하는 홍익표(57)씨는 "사람을 만나기도 싫고 집에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데 올해는 고향에도 못 갈 처지"라며 깊은 한숨을 내뱉았다.

 

어민들이 어려운 주민을 위해 써달라며 읍사무소에 내밀던 도움의 손길도 지난 설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김성한 통영시 산양읍장은 "추석은 다가오는데 하루하루가 힘든 어민들이 너무 많다"며 "적조가 소멸한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동안 적조피해가 거의 없던 경북 동해안 어민들도 시름이 깊다.

 

경북 포항에서만 20곳이 넘는 양식장의 넙치, 강도다리, 참돔 등 어류 140만여 마리가 폐사해 48억원의 피해가 났다.

 

포항지역 전체 양식 어류의 10%가 넘는 양이다.

 

또 마을 어장에서 기르던 전복 34만마리, 소라 70만마리, 말똥성게 700만마리 가운데 80%가 폐사해 피해액이 24억원을 넘었다.

 

어민 김상수(50)씨는 "마을어장이 이렇게 망가지기는 처음"이라며 "복구나 수확은 아예 포기했고 추석을 어떻게 날지 난감하다"고 하소연했다.

 

최만달 포항시 수산진흥과장은 "고가품인 전복과 소라 등 패류 피해가 심각해 어민들에 대한 지원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충남 서산시 천수만 일대 어민들에게도 추석은 반갑지 않다.

 

충남도는 천수만에서 지난 7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고수온이 지속돼 우럭과 숭어 734만 마리가 폐사, 74억원 가량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창리 어촌계 김남진(42)씨는 "추석이 썰렁한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이라며 "수온이 낮아졌지만 키울 고기가 없어 그물망 정리만 한다"고 허탈해했다.

 

전북지역 양계농가들은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 탓에 더위에 약한 닭이 대량 폐사해 울상을 짓고 있다.

 

전북 지역은 올해 22일간 폭염특보가 지속하고 열대야 발생일 수 29일을 기록하는 등 최악의 폭염이 덮쳤다.

 

전북농협이 올해 집계한 가축재해보험 피해 건수는 모두 240건인데 닭과 오리농가 피해가 217건으로 약 90%에 달했다.

 

올여름 전북지역에서 폐사한 닭과 오리는 모두 46만8천여마리로 정읍에서만 12만9천여마리가 폐사했다. 피해액만 15억여원에 달한다.

 

양계농가는 닭과 오리 소비가 가장 많은 삼복(三伏)더위 기간에도 출하량이 줄어 큰 피해를 봤다.

 

김제에서 양계장을 운영하는 김모(42)씨는 "흥이 나야 할 명절인데도 흥이 나지 않는다"며 "아직도 뒷수습을 못 해 동생들에게 추석을 쇠러 오지 말라고 했다"고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전국 최고급 복숭아 산지인 충북 음성지역의 올해 복숭아 출하량은 지난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봄 한파로 전체 복숭아 재배면적의 40%인 462㏊가 동사한데다 과실이 알이 차는 시기인 지난 7월부터 한 달여간 비가 자주 내려 열매가 제대로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도 주산지인 옥천과 영동의 농가도 속을 태우기는 마찬가지다.

 

한 달 넘게 이어진 폭염 탓에 포도가 생장을 멈춰 수확이 늦어졌고, 겨우 수확한 포도는 알이 작고 당도도 낮아 상품성이 떨어졌다.

 

지난달 뉴질랜드로 포도 10t을 수출할 예정이던 이 지역 포도작목반은 선적 일정을 나흘 늦추기도 했다.

 

대표적인 제수용품인 대추 작황도 극히 부진하다.

 

보은에서는 1천200여 농가가 한해 1천t이 넘는 대추를 수확하는데 개화기에 궂은 날씨가 이어졌고 해충까지 번져 올해 수확량이 지난해 60~70% 선에 그칠 전망이다.

 

작황 부진은 가격 급등으로 이어져 추석을 앞둔 소비자들에게는 부담이 된다.

 

최근 영동 포도의 도매시장 경락가격은 5㎏ 기준 2만원선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해 이맘때보다 5천원 비싸다.

 

음성 복숭아 역시 14개가 들어가는 특품(4.5㎏ 기준)의 도매가격이 4만원 안팎에서 형성되고 있다. 지난해보다 20% 오른 시세다.

 

충북 청주에 사는 주부 한모(44)씨는 "최근 만기가 된 전세 값을 올려달라는 집주인 요구에 목돈을 장만해야 하는데 제수용 과일 가격까지 급등해 부담이 크다"며 "올 추석은 그 어느 때보다 우울한 명절이 될 것 같다"고 걱정했다.

 

(임상현 박종국 유의주 김진방 김재홍)

 

pitbull@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9/11 09:02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