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삶 돌아보게 하는 '세상의 끝까지 21일'

posted Aug 1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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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혜성이 다가온다. 지구와 충돌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기껏해야 3주. 삶을 잘 마무리하려면 스무하루 동안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까.

 

'세상의 끝까지 21'은 종말을 소재로 한 또 한 편의 영화다. 디스토피아적인 우울함보다는 유쾌함과 삶의 온기가 영화를 감싼다. 심각하지 않은 선에서 삶을 성찰하게 하는 적절한 온도의 코미디로, 일반 관객들도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세상이 끝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집을 뛰쳐나간 아내를 못 잊는 도지(스티븐 카렐). 아파트에서 아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중 이웃집 처녀 페니(키이라 나이틀리)가 불쑥 도지의 집을 찾는다.

 

남자친구와 다툰 페니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친분을 쌓은 도지는 폭동이 발생하자, 페니와 함께 무작정 길을 나선다.

 

영화는 종말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스피노자처럼 한 그루의 나무를 심듯 자기 할 일을 마치려는 사람이 있고, 쾌락에 탐닉하는 이들도 있다. 거리는 폭도로 뒤덮이고, 사회 질서는 종잇조각처럼 구겨진다. 오로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건 부부싸움을 여전히 멈추지 않는 부부들뿐이다.

 

전복된 질서 속에서 쾌재를 부르는 '찌질한' 남자들도 있다. 못생긴 남자들은 마음껏 예쁜 여자들을 만날 수 있어 콧노래를 부른다. 그간 숨겨왔던 감정을 표출하며 이혼을 결심하는 수많은 부부도 있다. 영화 첫머리에 영화의 내용과 상반되는 비치 보이스의 '좋지 아니한가'(Wouldn't it be nice)가 흐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영화는 이처럼 영어 학원에 가면 지겹게 듣는 질문인 "곧 세상이 망한다면 넌 뭐하고 싶니?"라는 화두로 1시간 40분가량을 끌고 가다 보니 뒤로 갈수록 이야기의 동력이 떨어진다. 후반부 도지와 페니의 운명을 가르는 설정이나 절망 속에서야말로 진실한 사랑을 이룬다는 결론도 작위적이다.

 

단점이 꽤 있는 영화지만 우리 삶을 환기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객 입장에선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 같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잔잔하게 올드 팝송을 들으며 짧은 에세이 한 편을 읽은 듯하다.

 

시나리오 작가 출신 로렌 스카파리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코미디 드라마와 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스티븐 카렐과 영국 출신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의 연기호흡도 좋다.

 

8월1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01분.

 

buff27@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8/10 09:43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