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 괴담 같은 영화 만들고 싶었죠"

posted Aug 0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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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 감독

 

'숨바꼭질'로 상업영화 데뷔한 허정 감독 인터뷰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괴담엔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사람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불안이나 공포가 반영된 거겠죠. '숨바꼭질'이란 영화를 하나의 괴담 같은 느낌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영화 '숨바꼭질'은 항간에 흘러다니는 '도시 괴담'을 소재로 했다. '누군가 우리 집에 들어온 흔적이 있다, 누가 우리 집 문 옆에 이상한 표식을 해놓고 갔다'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누군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들은 인터넷상의 구전을 통해 점점 살이 붙고 괴담으로 확산된다.

 

'숨바꼭질'은 현실에 존재하는 이런 괴담의 불안과 공포를 기승전결의 잘 짜인 이야기 구조로 펼쳐낸 스릴러 영화다. 소재 자체의 현실성으로 누리꾼들의 호기심을 자아내면서 영화 예고편 조회수만 벌써 134만 건을 넘는 등 화제가 되고 있다.

 

상업영화 데뷔작으로 주목받고 있는 허정(32) 감독을 영화 개봉(14일)을 앞두고 최근 삼청동에서 만났다.

"도시 괴담의 정서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괴담이라는 게 어떤 분명한 근거가 있거나 딱 떨어지는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단지 그 공기나 분위기로 반영되는 느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공기와 분위기를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두자고 했죠."

 

영화는 고급 아파트에 사는 한 남자가 형의 실종 소식을 듣고 형이 살던 재개발 예정지 아파트에 찾아갔다가 현관문 옆에서 이상한 표식을 발견하고 자신의 집에서도 똑같은 걸 발견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후 누군가 자신의 집에 침입하려 한다는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실제로 다가온 어떤 위협에 맞서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다.

 

그가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건 3년 전.

 

"원래 스릴러에 관심이 많고 인터넷상에 흘러다니는 이야기들을 보는 걸 좋아했어요. 소문이나 괴담 같은 거요. 그런데 그 당시 한참 '누가 집에 들어왔다'거나 '침대 밑에서 누가 지켜보고 있더라' '웹캠을 설치했는데, 거기에 나보다 먼저 누가 들어온 게 찍혔더라' '정체 모를 누군가가 자꾸 문을 두드린다' 같은 얘기들이 많았어요. 그런 걸 보면서 사람들이 비슷한 지점에서 무서워하는 부분이 있구나, 그런 게 보이는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영화 '숨바꼭질' 한 장면.

 

그는 괴담의 바탕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무의식에 주목했다.

 

"괴담은 무의식적인 불안이나 욕망에서 나온 것들이 떠도는 거잖아요. 이 영화의 주인공 역시 사라진 형이 다시 나타날 거란 불안뿐만 아니라 거리의 노숙자를 보면서도 비슷한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런 불안감은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게 갖고 있는 거라고 봅니다."

 

사람들의 그런 불안과 공포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사람들이 예전보다 자기 집에 대해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혼자 사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주변 환경이 계속 바뀌는 것도 있고. 무언가가 집에 침범해 들어올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또 누구나 더 나은 곳에서 살고 싶은 욕망을 지니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그런 욕망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누군가 자기 자리를 차지할 것 같은 느낌의 불안감이 있어요. 자기가 서 있는 기반 자체도 불안정한 느낌이 있고요. 그래서 자기 것을 지키고 싶어하는 마음과 더 나아지고 싶은 욕망이 공존하는 것 같아요."

 

그가 1년 동안 쓴 시나리오를 영화 관계자들에게 보여주니 즉각 좋은 반응이 왔다. 지난해 초부터 영화 제작 얘기가 오갔고 손현주, 문정희, 전미선 등 오랜 경력의 안정감 있는 배우들을 캐스팅해 지난 1월 중순부터 3월까지 영화를 찍었다.

 

 

 

영화 속에 그린 두 인물 '성수'(손현주)와 '주희'(문정희)는 사는 환경은 아주 다르지만, 비슷한 불안과 욕망을 지닌 인물이다.

 

그걸 시각적으로 분명히 보여주려면 이들이 사는 집과 동네를 대비시키는 공간의 표현이 중요했다. 고급 아파트는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파트지만, 낡은 아파트를 찾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아파트 내부 장면을 찍은 촬영지는 일명 '연예인아파트'라고 불리는 동대문 인근의 한 아파트다. 주민이 사는 아파트여서 집집마다 일일이 양해를 구하며 어렵게 촬영을 했다.

 

"'ㅁ'자 구조의 복도식 아파트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미술감독님이 시나리오를 보고 추천해주신 게 이 아파트였죠. 저희가 촬영하느라 주민 분들께 큰 불편을 드려서 아직도 죄송한 마음입니다."

 

아파트의 외관 전경은 인천의 부두 연안인 송월동에 있는 오래된 상가와 낡은 아파트 건물을 따로 찍어 주상복합 건물로 보이도록 합성한 것이다.

 

일반 대학을 2년간 다니다 그만두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입학해 영화 연출을 공부한 그는 졸업 후 장편영화를 준비하며 한국영화아카데미를 1년간 다녔다.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만든 단편 '주희'로 최근 제12회 미쟝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순해 보이는 얼굴과는 달리 영화에 대한 집념은 누구 못지않게 집요하다는 게 제작진과 배우들의 평이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물었다.

 

"비슷한 장르에선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의 불안감을 표현하거나 특정한 정서를 보여주는 것에 관심이 있어요. 하지만 앞으로 어떤 영화를 찍을지는 더 많이 고민하게 될 것 같아요."

 

mina@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8/05 06:5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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